야키마 소망교회

2026년 10월 11일 주일 예배 임 정욱 목사

정욱 목사 · 2026-10-12
설교큐티 — 주일 설교로 하는 6일 QT
🎁 처음 오신 분께 이 설교는 6일 QT·설교 전문·퀴즈를 모두 보여드려요
본문
시편 55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6.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

설교자
정욱 목사
날짜
2026-10-12
설교 길이
39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이 초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할 때, 예수님께 나아가 그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의무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임을 기억하며, 기쁘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야키마 소망교회 설교를 매주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매주 월요일 아침, 이번 주 설교와 6일 QT를 메일로 보내드려요. 무료이며 언제든 수신거부할 수 있습니다.

메일 하단의 수신거부 링크로 언제든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하셨다면 메일 속 링크로 여시면 바로 열립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1
예수님의 초청
모두를 향한 초청의 사랑
마태복음 11:28
2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는 주님
마태복음 11:28
3
율법의 무거운 짐
율법의 억압에서의 해방
마태복음 11:30
4
주님의 멍예
예수님의 멍예는 가볍고 쉬움
마태복음 11:30
◆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진정한 쉼을 누리십시오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 말씀마태복음 11장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
월요일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기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1장 28절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시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초청에 응답하여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주님의 초청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하루 주님께 기도하며 나의 짐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보자.
기도주님, 저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당신의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2
화요일
수고와 짐의 의미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1장 28절

우리가 삶에서 겪는 수고와 짐은 종종 우리의 한계와 고통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짐을 함께 지고 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의 짐을 맡길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지고 있는 짐은 무엇인가?
오늘 실천오늘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주님께 기도하며 맡겨보자.
기도주님, 저의 짐을 당신께 맡깁니다. 저를 도와주소서.
3
수요일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1장 30절

예수님은 자신의 멍예가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우리가 짊어질 수 있는 짐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스스로에게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자.
기도주님,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저를 열어주소서.
4
목요일
교회의 역할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1장 29절

교회는 우리가 예수님의 멍예를 배우고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짐을 나누고 기도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교회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교회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보자.
기도주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할 수 있게 하소서.
5
금요일
진정한 쉼의 의미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1장 28절

진정한 쉼은 단순히 육체적인 휴식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영적인 회복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그분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십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진정한 쉼을 누리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주님과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자.
기도주님, 저의 영혼을 새롭게 해주시고 진정한 쉼을 주시옵소서.
6
토요일
새로운 시작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1장 30절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시며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가며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새로운 결단을 위해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자.
기도주님, 저에게 새로운 시작의 힘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 다음 주 야키마 소망교회 설교도 받아보세요

이 설교는 처음 오신 분께 전문을 모두 보여드렸어요. 이메일만 남기시면 매주 월요일 설교 요약과 6일 QT를 보내드리고, 2주 동안 모든 설교의 QT·설교 전문·퀴즈를 무료로 보실 수 있어요.

메일 하단의 수신거부 링크로 언제든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하셨다면 메일 속 링크로 여시면 바로 열립니다.

말씀 확인 퀴즈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1. 설교에서 예수님이 초청하시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2. 설교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멍예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3. 설교에서 언급된 예수님의 초청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4. 설교에서 언급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요?
  5. 설교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쉼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나요?
전체 스크립트

설교자: 정욱 목사

날짜: 2026-10-12

2년 전에 뱅크 우리 교회가 기마교회에 와서 수를 아주 잘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어린아이들도 그 교회 다시 가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니 이 금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 교회 한 번 온다면 또 오고 싶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목을 가다듬음] 우리가 이웃 살아가면서 이웃을 우리 집으로 초청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초청 받아서 자기도 하잖아요. 내가 존경하는 사람, 마음 자유신는 사람 또는 어른 그런 사람이 나를 테니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제가 한국 부여에서 경신을 해서 목회를 할 때 80년도 좀 그런데 노태우 저기 목사 아니면 대통령이 카드를 하나 보냈잖아요. 이 무슨 카드냐면 새해 인사로 카드를 보셨어요. 그 이름도 없이 조그만한 교회에 어떻게 보냈을까 했더니, 내가 알아봤더니 내가 그 청와대에다가 탄원서를 한번 보낸 적이 있어요. 그 분리익을 당해서 그때는 500만 원 이하짜리면 인사 소송도 잘 해서 올렸더니 거기에서 바로 답장이 왔고 이 사람한테도 갔어요. 그러니까 바로 해결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랬나 그런데 하여튼 그래도 뭐 나는 노태우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이 참 좋더라, 우리 하나님이. 그런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예수님이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들으셨기에 지금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서 지금 마음이 설레고 기쁘고 감사함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멘. 혹시 아니요 할 리가 뭔가 깜짝 놀랐어요.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감사도 기쁨도 설레임도 없다면 나는 정말 예수님 부름을 받았을까? 예수님이 나를 측정했을까? 한 번쯤 다시 되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해봅니다. 다 내게로 오라. 누구든지 다 오라. 그러니까 어떤 차별도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그 초청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다. 그런 어떤 인간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다 오라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오라 하시는 것을 보면서 특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첫째는 그 수고한 사람이 자기 스스로 좋아서 기뻐서 그렇게 일을 하다가 부딪친 어려움, 시기를 받는데 또는 미움을 받는다든가 어떤 그런 부딪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무거운 짐은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또는 어떤 조건이나 여건에 의해서 내 삶에 지워진 수동적인 짐 이런 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주어진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서 고통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그 당시 팔레스타인에도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 사복음서를 믿어보시면 정말 여러 가지로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 생활할 때 그들의 인격이 고상하거나 그렇지 않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막 그냥 성격도 급하고, 뭐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서 모세도 때리려 하고, 금송아지도 만들고 막 그랬잖아요. 그들의 생명을 살리려니까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이 율법으로 살아라. 그 한 200만 명이 되는 사람들이 그냥 서로 엉켜 가지고 살면서 그 홍해가 갈라진 거 보고도 물이 없다고 욕하고, 우리를 왜 군에 놔두면 잘 먹고 살다 여기 끌어내다가 광야에다 매장시키려 하느냐고 그러고 모세에게 돈 들었잖아요. 그런데 자기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주신 그 율법이 시대가 흘러가면서 바리새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거예요. 저 이거 해라. 이거 지켜라. 지키면 또 다른 거 지켜라. 이렇게 해 가지고 엄청난 율법에 더 어려운 해석들이 많이 붙어 있었죠. 유대교는 인간을 자유케 하는 종교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람은 억압하고 끊임없이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그런 종교로 바뀌어 가고 있을 때 그 시대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나는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가 증거하는 이 말씀은 너희를 무겁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의 짐을 벗겨 주는 것이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야. 벌 주는 하나님이 아니야.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가르치고 그 돌보시는 하나님을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그 땅에 오셨을 때 그때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참 많이 있었고, 특별히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잖아요.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 따라다닌 사람들 중에서 질병이 엄청 많았어요. 배가 고파서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습니다. 그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린 사람들, 더군다나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하고 또 유대 동족이긴 하지만 세리들이 로마 세금을 다스릴 때 그 나라 사람들을 세리로 세워 가지고 세금을 거두게 했어요. 그게 거두어서 거의 자기 노릇 로마에 요구하는 것만 주고 세 배, 네 배에서 자기 주머니에 착복을 한 거예요. 유대인들이 세리를 굉장히 싫어하잖아요. 예수님 제자도 있었지만 그런 속에 반대 속에서는 가능하도록 엄청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마 심령이 가난한 자를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며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어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신 것이잖아요. 그런가 하면 병든 사람들 치료를 엄청 많이 하셨어요. 죽은 자까지도 살리시면서 육체적인 억압, 이것을 자유케 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죠. 그래서 오늘 첫 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초청하시는 거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그 짐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그 짐을 친히 벗겨 버리신 거예요. 그게 저 말씀이거든요.

저나 여러분이 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모하겠습니까? 저는 장로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지금 수십 년이 돼가는데 이때까지 그래도 내가 머물 곳은 교회밖에 없더라고요. 캐나다 한 30년 전에 추운 지방 유니택이라는 대로 왔어요. 뭐 초청해서 온 건 아니고요. 초청한 교회는 오히려 내가 워콤이 받았을 때 깨져 버리고 없어지고 그래 갖고 그 유니택이라는 곳에 갔는데 한 한네 다섯 명, 한 세 가정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목사가 개척했다. 힘드니까 그냥 교인 나누고 그냥 가 버렸어요. 그런데 나 아는 목사님이 거기에 한 세 가정 있는데 가서 한 2주, 3주 좀 흩어지지 않게 돌봐 주라 그래서 거기 갔다가 거기 아주 나이가 좀 드신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나를 꼭 잡는 거예요. 나는 지금 큰 교회에서 이제 다시 들어가기 저 설교도 하고 지금 결정하게 기다리고 그 가만히 기도해 봤어요. 그래서 나를 캐나다로 보내시는 분 아닐까? 큰 교회는 뭐 한국 교회에 있을 때도 큰 교회가 많이 있어 봐서 그래서 아, 여기다 여기 나를 필요하 있잖아. 그리고 이제 거기 안 됐어요. 집사람은 토론토에 이제 있는데 그래서 그 이사, 우리가 이민 가방에 가져왔는데 그거 풀지 말고 보통 통째로 들어가세요.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까 정말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민 와가지고 나는 이민이 다 그냥 고유하고 다 좋은 줄 생각했었는데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하더라고요. 거기도 추워요. 겨울 되면 영하 3도, 만해요. 낮에도 영하 23도 이상 올라가지 않고 한 달 이상만 수익가 되고요. 겨울 내내 10월부터 눈 오면 그다음 4월까지 싸야 돼요. 알라스카로 더 추워요. 그런 속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거기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고 이러는 그분들은 정말 어떤 사명감 없이는 못 하겠구나. 그걸 느낀 거예요. 난 그분들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 초청을 받아서 이 무거운 짐을 어디에다가 놓을 것인가를 알지 못하는 인생이 되어 버려요. 이미 나서 한번 헤매기 시작하면요. 완전히 방황하는 길이름 고화가 되는 거죠.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우리도 오늘 찬양했지만 찬양을 하는 게 아니라 찬양이 내 속에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나가는 거예요. 이 찬양이 나를 기쁘게 하고 나에게 힘이 되고 이 찬양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까 교회만 오면 눈물이 뜨거워져요. 자기들의 삶을 돌아보면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워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삶에는 내 죄와 내 죄에 대한 죄책감이 끊임없이 나를 옥죄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를 못 다니는 거예요. 그 처음 거기 와서 있으면서 목회가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까 아, 이걸 내가 접어야 되나 보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 없나 보다.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접으려고 생각도 했어요. 할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내가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내가 운전은 잘하니까 운전하면서 합수가 있을까? 그때 영어가 안 되잖아요. 그런 줄 알면서도 계속 그걸 내려놓지 않고 목사의 짐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지고 왔어요. 기쁨도 있었지만 그 무게에 머물린 나를 본 거죠. 사랑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그런 것들이 나를 엄청 괴롭혔습니다. 그것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조금 있을 거예요. 여러분 아마 여기는 없는 것 저쪽 동면이 있는데 이웃을 배려하기보다는 배려받으려고만 하는 그 마음, 그런 자세. 어떨 때는요. 부모된 것으로 인해서 자녀로 인하여 생기는 괴로움. 자녀는요, 다 성장하고 나면 아빠, 엄마가 짐이래요. 여기 부모님 오시고 사는 자녀분, 장로님, 저 사위하고 따님만 있나요? 그 짐이 굉장히 무겁다. 그래요. 제가 원로 목사가 돼서 그 교회를 나가고 있어요. 그 대척에서 했던 근데 통상적인 이야기로는 원로 목사되면 50마일 바깥으로 나가라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러려고 그랬죠. 이제 우리 식구가 다 나가면 새로운 목사가 너무 힘들어져요. 그러니까 그 목사님 와서 그 목사님이 내 유니때 우리게 전도사님이 와 계시는 거거든요. 그런데 큰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동성애 그게 그 교단에서 결정되는 바람에 탈퇴한 나와서 무조건 나를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 그럼 좋다. 한번 기도해 보고서 시라. 그래서 이제 기도해 보고 한 달 만에 와서 목회를 하시는데 그 우리 큰 딸이 한번은 그래요. 아빠, 엄마 때문에 자기는 짐이 무겁고 더 슬프다. 그래서 왜 그러냐? 그 아빠 성격을 아니까 교회에서 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아빠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즐겁고 기뻐서 봉사하는데 왜 너만 자꾸 그렇게 봉사하냐? 그런 거죠. 내가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 내가 그랬나? 그런데 팔은 안 오르고 먹는다고요? 내 자식들이 거기서 열심히 하니까 아, 그게 나한테는 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면 안 돼요. 여러분도 저때 그러지 마세요. 그래서 이제 그것 때문에 내가 아, 다시 한번 마음을 붙여놓고 나는 그 목사님에 대해서 전혀 한 마디 말도 안 해요. 목회에 대해서도 뭐지? 아무것도 안 하고 나는 예배 교인입니다. 너무 좋더라고요. 은퇴하고 교회 가는데 그렇게 홀가분하고요. 집이 가벼워. 진짜 가니깐 뒤에 서서 찬양 부를 때 괜히 눈물이 줄려고 그때 내가 했어요. 내가 가지고 왔던 무거운 짐을 은퇴하고 나니까 하나님, 여러분 지금 무거워요? 교회 예배 드리는 게 의무예요? 교회 오신 게 의무적으로 왔어요? 오고 싶어서 오신 거죠? 어떤 직분 때문에 억지로 오면 무슨 예배가 기쁘고 거기에 감사가 있겠어요? 그렇게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상가 되겠어요? 아니죠. 기쁘고 감사해. 난 그거를 은퇴하고야 알았어요. 평생을 교회를 다녔는데 진짜 이렇게 홀가분하구나. 이렇게 기쁘고 이렇게 감사하고 찬양 하나 하는데 막 가슴이 막 설레고 뛰어. 내가 설교하고 그러는데 우리 교인들이 기뻤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 되게 많이 했어요. 은퇴하고 은퇴하고 처리들은 것 같아요. 결혼에서는 남편 때문에 아유 저놈 화상 아이고 저거 이런 생각지죠. 여기는 저쪽에 늘 그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가지는 무거운 짐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직장이 없어서 직장을 잃어버려서 직장에서 열심히 하는데 생존 경쟁 때문에 지워지는 짐들이 있어요. 목회도 마찬가지예요. 목회가 그냥이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고 이 교회가 있는데 자꾸 숫자가 생각하잖아요. 인들이 그걸 목사한테 짝감만 비치면 짐이 돼요. 제가 개척해 가지고 뭐 한 5, 60명 모이는데 서울에서 뭐 이제 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제 자녀들 보러 오면 꼭 나갈 때 한 마디 하고 가. 아, 목사님 이렇게 해서 부흥이 되겠습니까? 아, 나 진짜 화가 되게 나더라고요. 이민 생활에서 50명이면요. 500명이에요. 제가 한 100명 정도 되니까 노예일을 다 하더라고요. 우리 목사님은 뭐 여기 오자마자 노예 시작해갖고 지금까지도 열심히 하시는데 정말 훌륭하시죠. 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게 정말 맞나?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도 내 속에 계속 있어. 이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짐을 지고 있어요. 그러면 이 짐을 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여러분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볍게 이 짐을 주고 할 수 있을까? 이거는 우리가 이렇게 고백해요. 예수님, 지금 예수님을 믿는 내 안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내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끊임없이 세상의 가치관이 내 속에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 출세, 명예 이런 것들이 내 안에 아직도 가득합니다. 내가 과거에 잘 살았던 일이라든가 또는 내가 과거에 열심히 봉사해서 했던 일들이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내 안에 내 스스로 고통을 받습니다. 또는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죄악이 내 영혼을 옮깁니다. 이러한 것들을 주님 앞에 내놓고 여러분 교회 나가서 답답할 때 그러한 마음이 있나 없나 살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것을 놓고 주님 앞에 고백할 때 그때서 비로소 나는 자유케 되고요. 그때서 비로소 찬양이 나오고요. 그때서 비로소 정말 할렐루야가 나옵니다. 습관적인 교인들은 난 그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눈으로 오는 것도 아주 중요해요. 그렇지만 진정한 기쁨을 못 누리고 하는 것은 예수 믿는 것은 정말로 정말 여러분 생각해 봐요.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 그러는데 한번 돌려대 봤어요? 고소하잖아요. 저 사람이 나 때렸어요. 오른빵 치면 고소한다고.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가 오른면 왼을 돌려대라고 할 줄 알고 이야기했겠어요? 못할 줄 아시지만 이야기했겠어요? 그죠? 못할 줄 알고도 그런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나는 그 이유가 네가 천국 가서 살고 싶냐? 그럼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천국은 다 그렇다라는 거죠. 얘 맨날 오른 치고 왼반 피고 주는 게 아닌지 몰라. 친구들, 자, 여러분 주님 앞에 내 그 억누르는 것들을 딱 내놓고 고백하는 그 순간 우리가 참심을 얻는 시작은 여기서부터 시작. 내가 정말 쉬고 싶은 쉬리라고 하신 그 쉬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도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과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답할 줄 아는 거예요. 이상하잖아요. 같이 사는데도 부부가 같이 사는데도 한 사람은 응답 초청한 데 응답하고 교회 가고 한 사람은 아무리 가자 그래도 안 가는 거죠. 차이가 뭐가 있어요? 별반 없어요. 세상 그 고민을 지고 그냥 끙끙대면서 가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뭐가 나와요? 술이 나오죠. 오락이 나오고 나약을 하고 그래서 모든 진과 상관없이 거기서 좀 헤어나고 싶어서 술도 마시고 오락도 해보고 도박도 하고 마약도 하고 그런 거죠.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약효가 떨어지면 더 큰 절망과 더 큰 아픔과 더 큰 고통이 찌르고 있는 자기를 이게 예수님을 예수님의 추종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생활 태도예요. 여러분 그런 사람들 불쌍히 여겨야 돼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에요? 우리는 예수님께 초청받는 예수님으로부터 초청받은 저희들이죠. 여러분 예배가 의무가 돼서 안 돼요. 교회에 가야만 해서 오면 안 됩니다. 가고 싶어서. 그리고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예요. 초청받은 사람의 권리.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의 권리. 그리고 그건 특권이잖아요. 여러분 그 특권을 누리셔야 돼요. 네,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 좀 주세요. 그러는데 그게 의무로 달라 그러겠어요? 권리로 달라 그러겠어요? 특권으로 달라겠어요? 그건 특권이잖아요. 자식이 잘 사는데도 아버지는 더 주고 싶잖아. 엄마는 자기네끼 잘 해먹고 김치도 담궈 주고 뭐 사이가 오이 잘 먹다 오이도 갖다 주고 우리 집사람 이야기해요. 네, 둘이 잘 사는데. 아, 그래서 고백을 하고 참여를 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흐름의 약속을 주셔. 그걸 받은 거예요. 저는 그걸 받은 때를 기억하고 어렵고 힘들 때 그때를 기억한다는 게 뭐냐면 죄 회개를 엄청했어요. 한 4일 반 정도를 처리하면서 회개했어요. 내가 얼마나 죄가 많아요. 태어나서 발로 걸을 때부터 교회 다니는 놈이 고등학교 때 어떻게 그렇게 죄가 많이 나오냐고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죄가 넘죠. 그가 이런 조그만 예배당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데 너무너무 그냥 그 죄 때문에 고통하니까 막 어 뒹굴고 뒹굴고 그러니까 성령께서 불쌍히 여기셨는지 죄를 토해내 모르던 죄를 막 토해내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자리가 슬픔으로 꽉 차 있어. 막 눈물 바닥이야. 그런데 그날 새벽에 성령께서 나를 터치하셨는 기쁨, 감격, 환희 막 이런 것들이 엄청. 그리고 새벽에 내가 교회 문을 열고 나올 때는 길가 진들꽃들 뭐 동맹이 하나 이런 것들이 아, 저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거구나. 악소서 주체할 수 없 미친 저는 그때 그 간격과 그 기쁨을 가지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그것이 나를 붙들어 주는 예. 그래서 나는 쉬게 한다라는 그 말씀은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죄에 대한 용서, 그게 쉬이죠. 또한 우리 상처에 대한 치유, 그것이 쉬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가운데 뭐가 있어요? 상처가 치유되고 죄가 용서받은 확신이 가지면 내 안에 뭐가 있어요? 기쁨과 평안과 감사가 넘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기쁨과 감사는요. 죄로부터 해방이고 죄로부터 자유예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뒤로 목사가 되고도요. 좋은 교회를 찾을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좀 힘들고 어려운 교회, 최선을 선택하지 않고 차선을 선택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하는데 거기는 나보다 좋은 사람이 가고 아니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가는 사람이 가고 나는 차선이죠. 나는 이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걸 잘못 생각하면요. 이 힘은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려 그래요. 교회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도망가잖아요. 교회가 건축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다 도망가. 난 그런 사람 너무 많이 봤어요, 여러분. 쉬어서 아, 좀 쉬어야겠어요. 그리고 외딴 곳에 들어가서 쉼을 우리는 게 아니에요. 심다 이런 것은 철저하게 세상 현실에 부딪혀서 이겨 나가는 거. 제가 서두에 이야기하잖아요. 나는 은퇴하고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간섭 안 하고 편안히 살 거야. 그리고 진짜 바깥에도 별로 잘 안 나가도 그저 운동이나 조금씩 하면서 한 3년, 4년 가까이 되니까 말이 안 나. 뭐 병이 생기세요? 그러니까 봐요. 내가 그래도 계속 성경을 읽고 기도도 하고 좀 더 이런 걸 했더라면 되는데 설교 안 하는 게 너무 좋은 거야. 너무 기쁜 거. 그런데요. 한 3년, 4년 지나니까 내가 현실로부터 내가 도망쳤구나. 그런데 이걸 알고 우리 방 목사님이 나한테 와서 설교를 그 전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목사님도 한국에 부모님이 계시니까 이전에 두 세 번씩 가서 한 3주씩 있다 와 목사님이 좀 해 주세요. 가이 와서는 목사님이어서 편하게 잘 갔다 왔습니다. 그들이 나를 꺼내 준 거예요. 사실은 도망가지 말라고 당당히 부딪히시라고.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 30절을 보면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예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예는 쉽고 가벼움이라. 그렇게 이야기하시잖아요. 예수님은 쉼을 약속하시면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살라고 이야기해요. 적극적인 인생에 살아라. 뭐라 그래요? 내 멍예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예수님의 멍예를 어디서 배울 수 있어요? 교회에서 배울 수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주는 힘은 달라요. 어떤 짐으로부터 도망해서 생기는 쉼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멍예를 매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예수님 말씀하시잖아요. 내 짐은 쉽고 가벼운 것이다라고 이야기. 예수님이 지어 주신 짐은 쉽고 가벼운 거예요. 나를 억압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라 나를 자유케 하고 내 죄 짐을 지고 고통하는 게 아니라 죄를 용서해 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내 멍예는 매고 나를 배워라. 내 멍예는 쉽고 가볍다. 여러분, 여러분 절대 힘을 얻고 잘 도망가서 안 돼요. 뭐죠? 산속에나면 바닷가에 별장 짓고 살겠다. 너 그건 죽으러 가는 무덤입니까?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아버지 짐을 지고 살아가는데 너무 짐이 무겁고 힘들다가 아버지 짐 벗겠어요? 어때요? 아, 여기 아무도 대답 없는데. 저쪽은 안 벗겠다 그러던데. 어머니도 짐을 엄청 지잖아요. 정말 진짜 나는 이민서 살면서 여자들이 정말 너무 잘하는 거. 그 한국에 무슨 남존여비 뭐 저거 있다 거는 다 거짓말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일도 똑같이 해야 되고 설거지도 같이 해야 되고 밥도 같이 해야 되고 얼마나 좋아요. 그래도 여성은 여전히 힘든 거야. 가게 일도 해야지. 집안에도 들어와야지. 손자, 손녀도 키워야지. 우리가 손자들을 키우는데 집사람이 온전 매달 나는 우울 줄더라고요. 여러분, 내가 아내하고 잘 맞지 않고 뭐 성격도 틀리고 막 이러고 내 짐이 너무 무겁다. 남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짐 벗어 버리겠어요? 아내는 짐이 어때요? 저는 가상 빨리 죽지도 않아. 응. 그러겠어요?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짐을 지고 가는 거예요. 그 짐을 지면 가정이 화평한 거예요. 누구? 누구 멍예를 맺기 때문에? 예수님의 멍예를 맺기 때문에. 중간 지대는 없어요. 내가 힘을 얻느냐? 그거지. 세상하고 뭐 쉼 얻는 분에 살려 그러면 안 되죠. 자, 우리는 나를 억압하는 멍예를 매고 세상 교훈을 따라서 살아가면 안 돼요. 세상의 성공의 기준이 달라야 돼요. 가치관이 달라져야 됩니다. 사람 보는 눈이 달라야 돼요. 저 사람도 굉장히 사랑스러워져야 돼. 그렇다고 아무 여자나 보고 나 당신을 죽도록 사랑 이러면 안 되고 그 사랑과 이 사랑은 조금 달라. 그렇지만 사랑은 하나예요. 하나님의 사랑 하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 어 뭐 무슨 아가페니 무슨 필레아니 뭐 이렇게 갈라나서 그렇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어. 인간을 자유케 하고 생명을 주시고 온전한 기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멍예를 매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 짐은 가볍다. 내 짐은 쉽다. 내가 너 대신 그 짐을 다 졌다. 그 예수님이 지신 마지막 멍예가 뭔지 알죠? 십자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지. 그것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심이에요. 그런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가 힘을 얻으려고 할 때 모든 멍예를 벗어 버리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멍예로 바꿔 매고 나가는 거예요. 예, 과거에는 세상 멍예를 지고 정말 70년, 80년 살았지만 이제라도 예수님의 멍예를 지는 거예요. 세상 멍예를 지면 교회에도 다 멍예가 되지 않아요. 우리가 예수님의 멍예를 지게 될 때 진정한 심, 참 마음속으로 울어나오는 평안, 이런 꽃 한성이가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샘솟듯이 올라오게 돼 있어요. 예, 이제 우리는 죄의 멍예가 아니고 용서의 멍예를 매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돼. 용서의 멍예를 매면 오른을 치는 사람은 왼밤을 돌려줄 수 있어요. 오일 가자가면 힘일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가질 수가 있는 거예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염려, 근심 이런 멍예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가 늘 차고 넘쳐. 그러니까 얼굴에 뭐가 생겨요? 웃을 것이 남들이 보면 저거 교회 다니더니 미쳤네. 그 정도 돼야 돼요. 근데 난 눈도 찢어졌고 사무라이같이 생겨 가지고 조금 힘들긴 해. 웃어도 나는 웃는데 생긴 게 그래서 이것도 어디다 일단 약속의 멍예를 매고 예수님을 통한 멍예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그 복음의 증거를 보여야 하겠습니다. 그걸 못 배이면 안 돼. 예수님이 주신 해방과 자유의 멍예, 부활과 생명의 멍예를 간직합니다. 예수님 멍에 보고 죽었다 부활하셨잖아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잖아요. 그 예수님 몸이에요. 우리도 남에게 그런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돼야 되는 거죠. 나 보면 누구 본듯해? 예수님도 난 저 사람 보면 예수 믿고 싶어 그 정도 되면 성공한 거예요. 근데 나는 인상이 그래서 잘 안 들는데 분명한 건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신의 기쁨은 세상에 어떤 거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도 기쁜 거예요. 예, 난 정말 그거는 너무 감사해. 평안의 기쁨, 이건 그것에 내가 누리는 게 아니라 그 엄청난 심의 기쁨, 평안의 기쁨이 나를 붙잡고 있는 거야. 그래서 오는 거예요. 시편 55편 2절에 보면 내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이렇게 이야기해요. 또 시편 68편 19절에 보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얘기해요. 이 다윗의 그 치어 다인만큼 고생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명예를 다 하나님께 드치고 다 고백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몸에 지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쉼을 남은 생명을 다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스터디 가이드
필기용 PDF 내려받기

핵심 정리

  •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신다.
  • 우리의 짐은 예수님께 맡기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예수님의 멍예는 쉽고 가벼워서 진정한 쉼을 준다.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초청받은 자들이다.

나눔 질문

  1. 여러분은 현재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초청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나요?
  3. 주님의 멍예를 메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4.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예수님께서 주신 초청을 기억하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저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진정한 쉼을 찾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영상으로 보기
YouTube에서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