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절인데요.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지난 수요일에 우리 한목사님께서 수요일 예배 때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말씀해 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기독교 교리 중에 가장 어려운 교리가 삼위일체론이다. 맞아요. 가장 어려운 교리가 삼위일체론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서 이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왜 이 어려운 교리를 요한복음 1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얘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제자들을 택하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택하시는 것과 삼위일체론이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뭐가 이렇게 중요해서 삼위일체론을 이야기하며 제자들을 택하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까요? 그 이유는 우리 성부 하나님은 천지 창조하실 때 혼자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천지 창조뿐만 아니라 모든 사역을 하실 때 우리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은, 성령님께서는 혼자 사역을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얘기를 하시려고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도다." 여기 말씀 육신이 되신 분,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렇죠?
삼위일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 이유가 뭐냐? 바로 우리 성자, 성령님께서 혼자 사역을 안 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들도, 제자들도 그것을 본받아서 혼자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이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것을 이야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심을 보여주세요. 그런데 왜 제자들을 택하셨을까요?
마가복음 3장 14절에 보면 "이에 열두를 세우셨으니" 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제일 앞에 나오죠. "이는 자기와 함께하고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이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예요.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는 함께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삼으실 때 부려먹기 위해서 제자로 삼으신 거라고 착각하실지 모르지만 아니에요. 가장 큰 이유는 함께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교제하기 위해서. 함께 놀기 위해서. 함께 말씀 보고 기도하고 함께 교제하기 위해서. 바로 거기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삼으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물론 그 다음에도 나와요. 또 보내서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물론 여러분들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아, 그럼 그렇지. 뭐 이런 게 뒤에 써있지 꼭." 아니에요. 함께하고 싶으시고, 함께해야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맞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택하실 때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떤 제자들은 함께 하시면서 특별히 그들을 사용하시는 제자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오늘은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함께하길 원하시는 제자들. 특별히 쓰임받는 제자들.
바로 그것이 또한 우리들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기쁨이 되고, 함께 하는 것이 우리 안에 뉴스가 되어 있어서 함께 하는 그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는데, 그것 외에도 특별히 이제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쓰임받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로 거기에 대해서 오늘 요한복음 1장을 통해서 보기를 원해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특별히 함께하길 원하시는 제자들'이 보여지죠?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죠? 그런데 특별히 함께하길 원하는 그 제자들의 특징이 뭐냐. 첫째로 질문을 해야 하는 제자들입니다. 여기 나온 제자들은 질문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제대로 섬기는 성도의 모습이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세상 사람들도 질문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늘 1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내가 누구냐?" 물을 때 여기서 질문하죠. 세상 사람들도 질문해요.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대답을 해줍니다. 세상 사람들도 질문하길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세상 사람들에게 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도 늘 질문을 제대로 할 때 우리의 신앙은 늘어나는 겁니다. 여러분들,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것. 신앙생활에서 엄청 중요합니다. 요즘에 많은 분들이 AI를 쓰면서 질문을 제대로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뭐냐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된 질문을 할 때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서게 된다는 거예요. 오늘 말씀 35절에 보면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라고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해요. "야, 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야. 너희들이 나를 쫓는 게 아니라 저분을 쫓았어야 돼."라고 대답을 해주는 거예요. 그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바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세상 말로 얘기하면 의리도 없고 멀도 없어요. 그렇죠? 바로 그냥 세례 요한을 떨쳐버리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이 영의 문제에 있어서는 의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질문이에요. 질문이에요.
그 얘기를 듣고 38절에 이들이 질문을 합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곳으로 물어 이르시되 '야, 너희가 뭘 구하느냐?'"라고 예수님도 그들에게 질문을 하죠. "야, 뭐 원하니?"라고 했을 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이 질문을 던집니다. "랍비요? 어디 계시오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요. 이 질문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아직까지 이들이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는구나라는 것이 이 질문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랍비,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이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선생님을 원하는 거예요. 자기들을 제대로 인도하실 선생님을 원하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랍비, 어디 계시노니까?" 그러면서 이들이 랍비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들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라는 그것이 이 안에 다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이 뭡니까?"라고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랍비, 어디 계시니 오닐까?" 엄청 엄청난 큰 질문이에요.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 질문을 통해서 결국에는 이들은 예수님을 쫓게 되어집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예배할 분을 제대로 찾게 되어집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이들은 어린 양 예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게 되어진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36절에 보면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도다."라는 그런 답을 얻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했지만,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답변을 받잖아요. 이거는 엄청나게 큰 대답이에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여러분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그러면 여러분들 그 답을 얻었을 때 바로 뭐를 해야 되는 것을 깨닫습니까? 많은 성도들은 그 답변도 엄청나기 때문에 "어, 그러면 어딨냐?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을 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그렇죠?
그래서 요한복음 1장을 읽어보면 이 답변이 또 다른 데서 또 얘기해요. 또 얘기해요. 36절에도 이야기하지만, 이 19절에도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찍어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또 답변을 얻게 되죠. 그러니까 어떤 질문은 그 대답을 들었을 때 한 번으로 소화하기가 힘든 그러한 질문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질문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양? 어떻게 섬기지? 어떻게 예배하지? 구약에는 어떻게 써있지? 이 어린 양이 어디서부터 나왔지?" 이런 답변들을 해나가면서 제대로 신앙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질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제대로 질문을 하잖아요. 제대로 된 질문을 하면 바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이들에게 답변을 이렇게 해주세요. 요한복음 1장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이게 답변이었어요. "와서 봐." 야, 너희가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이 질문 자체가 굉장히 답변하기 힘들고 무겁고 너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질문이지만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건 뭐냐면 "와서 봐라. 와서 나랑 함께 하면서 나의 사역을 봐라."라고 주님이 답을 해주시는 거죠. "Come and see"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쩔 때는 주님이 주시는 답변이 굉장히 의외로 심플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귀를 열고 우리가 그 답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거예요. 우리가 질문을 했잖아요. 질문을 했다면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어야 돼요. 나의 삶에 대해서. 예? 질문을 해놓고 답을 주셨는데 안 해. 와서 보라는데 안 와봐요. "저 시간 없어요."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중요한 것은 질문을 했다면 우리의 중심은 뭐냐 하면 나의 지금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 있어서 주님이 답을 주시는데 여러분들은 그냥 답변이 내 생활과 동떨어졌다라고 여러분들 스스로가 착각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질문만 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보셔야 돼요. "제대로 된 질문" 그리고 답을 얻었을 때 "제대로 된 삶의 적용" 이것이 결국에는 특별한 제자가 되는 과정이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쩔 때는 여러분들이 질문을 할 때 보면 적나라한 질문을 할 때도 있어요. 적나라한 질문이라는 건 뭐냐면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한테 "저렇게까지 질문을 해."라는 질문을 던져도 돼요. 왜냐하면 진리를 알려고 그런 질문도 돼요. 누가 적나라한 질문을 오늘 본문에 던졌냐면 요한복음 2장 46절에 나다나엘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나다나엘이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러니까 남이 들으면 예수님이 욕하는 것 같아요. 나사렛 예수를 와서 보라고 했는데 "야, 나사렛에선 선한 걸 알 수 없어. 저 사람 선할 수가 없어."라고 지레짐작으로 결론을 내려버릴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러한 질문도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엉뚱한 데 서지 않고 진리 가운데 설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얼마 전에 저는 솔직히 정치 이야기를 설교 때 하는 거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뭐 매강과 마강과 뭐 해가지고 누구 편을 들고 뭐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저는 그래도 트럼프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트럼프가 개인 문제나 뭐 이런 거를 보수 쪽에 서서 정치적으로 결정을 잘 내려주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까 "아, 트럼프가 보수 진영의 기독교인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그 유튜브인가 뭐 이름을 봤는데 그 물론 여러분들은 "한국산 가상 뉴스에요"라고 저한테 보면 저는 할 말이 없어요. 뭐 저는 가짜 뉴스를 분별할 능력은 아직까지는 안 돼요. 그런데 트럼프가 가장 영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자 목사님인데, 그분의 이름이 'Polly White Cane'이라는 분이에요. 이 분이 트럼프가 얼마나 영적으로 신뢰하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냐면 백악관에 신앙 종교 사목이라는 것이 있어요. 거기서 그 그룹을 이끄는 총괄 인물이에요. 다시 말해서 미국에 어떤 종교에 대한 결정을 내리려면 트럼프가 이 사람이랑 상의를 해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바로 이 여인이에요. 그리고 저희는 이 여인도 이 여인이라고 표현을 하나? 말이 좀 이상한데 하여튼 이 여자예요. 예?
그런데 이 사람이 이 2015년 8월에 어떤 일을 향했는지를 보게 됐어요. 이 2015년 8월에 이 사람이 뭘 했냐면 통일교에서 개최하는 이 2015년 세계 종교 지도자 콘퍼런스에 문선명 거기다가. 여러분들 문선명은 죽은 건 알죠? 아시죠? 그래서 죽고 문선명의 아내가 그 그룹을 이단을 takeover 했거든요. 그래서 모든 행사를 주관을 해요. 그런데 그 여자한테 이 폴라 와잇이 그 여자를 뭐라고 불렀냐면, 문선명의 그 사람을 "Holy Mother Han"이라고 그 여자를 불렀어요. Holy Mother Han.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그 여자를 그 문선명, 그 종교를 인정해주는 거고, 그리고 약간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사상도 따르는 것을 보게 돼요.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문선명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리서치를 해보시면 실제로 이것을 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이 사람이 그런 삶을, 그런 결정을 내리는 백그라운드에 보면 이 사람은 우리말로 하면 옛날에 말하면 뉴에이지 사람이에요. 다시 말해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뭐 문서명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뉴에이지 운동 있잖아요. 뉴에이지 운동. 그리고 연합 운동. 이런 거에 동참하는 사람이 바로 'Polly White Cane'이라는 거죠.
이 사람을 영적인 지도자로 삼고 이 사람을 조언을 들으면서 결정을 내린다라고 한다면 "아, 트럼프는 제대로 된 크리스천이 될 수가 없구나."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죠. 그렇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질문할 필요가 있어요. 이 사람은 어디서 온 사람이냐. 이 사람의 백그라운드는 뭐냐. 예? 이 사람들은 어떤 거를 인정하는 사람이냐. 이 질문이 우리가 이단에 빠지지 않고 진리 가운데 서도록 만들게 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쩔 때는 좀 심하지만 이런 질문들이 필요해요. 필요해요.
그리고 예수님도 그런 질문하는 사람을 인정해주고 칭찬까지 해줘요. 보세요. 요한복음 1장 47절에 예수님이 그의 것을 다 아시고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예요? 순수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도 하는 거예요. 순수하기 때문에. 그렇죠? 네. 그리고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니까?" 예수께 대답하고 계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무화과 나무 안에 있을 때 보았노라."라고 얘기하니까 또 순수하니까 예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을 탁탁 알아채고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을 보게 되죠. 그렇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진리 가운데 서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랬을 때 제대로 된 제자로 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 선택, 그 앞에 끝날까지 변화,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제대로 된 제자다. 예언이 뭔 소리인지 모르겠죠. 그렇죠? 설명을 해드리지 말아요. 예수님이 특별히 선택을 하세요. 그리고 너는 뭐가 될 거야라고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끝까지 "그래, 예수님은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선택하셨어. 나는 이런 사람으로 끝까지 살 거야."라고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제자다라는 얘기예요. 이렇게 설명했는지도 모를 수 있어요.
그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한 사람의 예를 들어볼게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베드로예요. 베드로. 요한복음 1장 42절에 보면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바위라는 뜻이거든요. 게바, 바위라는 뜻이고 베드로도 바위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원래 이름은, 이 사람의 이름은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몬이라는 사람인데 예수님이 처음 만날 때 "야, 너는 바위야. 너희 이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정해 주신 거예요. 자기도 스스로 생각할 때 바위라고 생각 안 했을 거예요. 예? 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정해주시니까 머릿속에 "나는 바위야, 나는 바위야." 그리고 결국 바위처럼 살다가 바위처럼 순교하는 베드로의 모습. 이것이 바로 제대로 예수님의 선택, 그 앞에 끝날까지 변화,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자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예수님이 선택해서 부르시는 것이 즉흥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니에요. 예수님은 다 보고 계시고 그리고 그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 될 거야."라는 것은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주님께서 이루실 거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면 믿고, 그 말씀대로 서고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 베드로는 바위 같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자기 형제와 베드로가 같이 예수님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자기 형제는 전해요. 사람들에게 "야, 예수님 와서 봐. 이분이 예수님이야."라고 자기 형제는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는데 베드로는 싹 빠져 없어져버렸어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어요. 여러분들 왜 베드로가 사라졌을까요? 아니, 예수를 알고 만났는데 삶이 자기보다 못해. 자기는 배라도 있는데 예수님을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식구도 없고 너무 가난하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베드로한테 가서 "너는 베드로야."라고 이야기하시니까 베드로는 "네 사람 뭐야." 그리고 예수님을 떠나요. 떠나요. 그런데 나중에 또 예수님을 만나게 돼요.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물고기를 잡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물고기를 잡을 땐데 배가 없어도 돼. 예수님의 그 한마디면 돼요. 뭐예요? "깊은 곳에 가서 그 물을 던져라."라는 그 한마디. "깊은 곳에 가서 던져라."라는 그 한마디에 배가 그냥 만선이 돼버리죠. 그랬을 때 베드로가 거기서 이제 변화되기 시작해요. 뭐라고 얘기해요? "예수님,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역시 물고기 잡는 사람은 많이 잡혀야 그냥 변화되는 것 같아요. 하여튼 베드로가 이런 사람이에요. 솔직히. 물질에 악하고 그렇지만 변화되기 시작을 해요. 변화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점점 물론 나중에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기까지예요. 그러나 베드로가 바위처럼 되어 결국에는 순교의 길을 걷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변화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늘 말씀에 나다나엘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나다나엘. 예수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시죠. 47절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말씀을 하세요. 예수님이 사람을 꿰뚫어 보시면서 "너 간사하지 않, 넌 간사함이 없구나." 했을 때 나다나엘이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맞아. 우리 주님의 말씀이 맞아." 그리고 정말 감사함 없이 살아가고, 살아갑니다. 예? 인정해주시니까. 그리고 인정해주시는 대로 나다나엘이 변화돼요. 사도 바울도 여러분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그렇게 변해요. 주님의 말씀 앞에서 그대로 변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게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 그렇죠? 사도 바울이 주님이 그걸 인정해주고 그에게 직분을 맡기셨을 때 "아, 나를 충성되게 여기셔서 직분을 맡기셨구나."를 인정하고 결국에는 그 충성을 끝까지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사도 바울의 모습. 여러분들 봐도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셔서 우리에게 "야,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시면 그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변화해 나가는 그 모습. 그것이 제대로 된 특별한 제자의 모습이다라는 거예요. 예. 그럴 때 우리는 길을 열어서 "주님, 저를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십니까?" 그런 질문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명을 받고 할 때, 사명을 받고 살아갈 때 결국에는 특별한 제자로서 쓰임을 받게 되어진다는 거죠. 그렇죠? 나다나엘도 가만 보면 마찬가지예요. 50절에 보면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라고. 나다나엘에게 미래에 대해서 "너는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너는 더 큰 사람이 될 거야."라고 얘기를 하시면서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하여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너를 통해서. 무슨 얘기예요? 하늘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 그 사닥다리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연결해주는 그 도구가 될 거야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거든요. 바로 "니가 이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예? 바로 우리에게도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심이 들리길 원해요.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용하길 원하시는구나. 끝까지 나는 이런 사람으로서 제대로 서야지."라는 그 사명대로 살아가는 바로 그 사람이 우리들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세 번째로는 제대로 쓰이는 제자가 많은가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봐야 돼요. 이솝우화에 보면 주인이 종에게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몇 명 몇 명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런데 종이 나오더니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주인이 신이 나서 "그래, 빨리 들어가야지." 해서 들어가는데 웬걸 사람이 우글우글거리는 거예요. 화가 나서 집에 와서 종에게 물었어요. "야, 한 명밖에 없다 그랬잖아. 야, 우글우글한데 뭘 얘기한 거야." 그랬더니 종이 하는 말이 "제가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다니는 복도에 돌멩이가 하나 놓였는데, 사람들이 걸리고 넘어져도 부딪혀도 어느 한 사람, 그 옮겨놓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딱 한 사람. 그 옮기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이 한 명이 있어서 제가 한 명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아무 대꾸도 못했대요.
여러분들, 우리 믿는 사람들 우리가 생각해봐야 돼요. 세상, 세상에 사람들이 정말로 많지만, 쓸 만한 사람 찾기 힘들어요. 바닷가에서 물이 없는 것처럼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 안에서 정말 제대로 된 크리스천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생각을 해요. 그냥 예수 믿고 천국 가면 되지라고 생각을 해서 내가 베스트 크리스천이 돼야지라는 생각을 아무도 안 해요. 우리 하나의 마음이 되게 아프실 것 같아요. 베스트 자녀라고 선택을 하셨는데, 베스트 제자라고 선택을 하셨는데 아무도 베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가는 그러한 제자로서만 살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안타까우실까"라는 생각을 우리가 해봐야 돼요.
그냥 "아, 제대로 된 크리스천 없어. 세상에 왜 이렇게 제대로 된 신붓감이 없어." 뭐 이렇게 컴플레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주님 앞에서 정말로 나는 주님 보시기에 최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보셔야 돼요. 생각해보셔야 돼요. 제가 처음에 영락교회를 왔을 때 처음에 담임을 맡으면서 제일 두려웠던 게 뭔지 아세요? 제일 두려웠던 게 뭐냐하면 하나님의 몸 된 교회잖아요.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면 안 되잖아요. 허투루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나를 볼 때 하나님께서 분명 저한테는 설교 은사는 주신 것 같아요. 설교 은사는 주신 것 같아서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행정에 대한 은사가 영광해요. 제가 볼 때에도. 왜냐하면 집에 무슨 전기로 내야 되잖아요. 만약에 내가 냈으면 계속 빵꾸 났을 거예요. 뭐 그런 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어요. 전혀 없어요. 행정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그런 사람이 교회 행정을 하면 어떻게 돼요? 큰일 나잖아요. 거기다가 제가 정적이지를 못해서 심방이나 뭐 이런 거에 대해서 되게 약해요. 되게 약해요. 함께 울어주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괴로워져야 되는데, 알면서도 못해요. 그러니까 두려운 거예요. 두려운 거예요. "야, 내가 이걸 못하는데 그냥 못한다고 두 손 두 번 다 들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부족함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목회일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어요. 진지하게.
그래서 제가 처음 왔을 때 우리 장로님들 오래되신 장로님들은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당 회장 안 한다고 그랬어요. 당 회장 안 한다고 그랬어요. 왜요? 아니, 빈자리가 너무 많은데, 빈 곳이 너무 많은데 내가 못하는데 어떻게 당 회장을 해요. 그래서 장로님들은 못하겠다고 하니까 장로님들이 저한테 오셔서 제발 부탁이니까 당 회장 해달라고 그러셨어요. 왜냐하면 서른 몇 살짜리를 목사로 데리고 왔는데 벌써 달랐을 소문이 났어요. 젊은 목사를 데려다가 나이 드신 장로님들이 지 멋대로 하려고 젊은 목사를 데려왔다라고 안 그래도 소문이 있는데 목사님마저 당 회장 안 하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당 회장만이라도 해주세요라고 저한테 부탁을 하셨어요. 그래서 장로님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장로님들, 제가요. 당 회장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는 행정이 정말 못합니다. 그리고 심방 같이 울어주고 이런 거 정말 못해요. 그 자리를 채워줘야만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무조건 것이 있으면 제대로 채워져야 되잖아요. 채워져야만 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안 그래도 팀 미니스를 제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장로님들이 그럼 해주세요라고 장로님들한테 맡겼어요. 행정이나 이런 걸. 그런데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중에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야, 목사님을 내보낸 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왜요? 목사가 다 잘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행정을 훨씬 잘하는 장로님들이 있는데, 행정을 못하는 목사님이 목사라고 해서 그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몸 댕기 위해서 불충이에요. 하나님이 그러라고 은사를 주신 거거든요. 하나님의 몸 댕기에는 은사로써 움직여야 해요. 은사를 움직일 때 하나님의 몸 댕기에는 제대로 서는 거예요. 그래서 은사를 주신 거예요. 은사로 움직이라고. 그런데 은사를 무시하는 것은 목사가 해야 될 일이 아니잖아요. 교회는 은사로 움직여야 해요. 은사로.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로 움직일 때 그 교회는 성장을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세요. 그런데 은사를 무시할 때는 그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니죠. 그렇죠?
제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렇게 보면 부드럽게 보일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저를 볼 때. "아, 저 명목사는 참 젠틀하고 무섭지 않고 매섭지 않고 그냥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좋게 보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되게 못됐어요. 못됐어요. 왜냐하면 우리 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느 부서에 부장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찾아오셔서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목사님, 이 목사님이 이 부서에서 계속 살까면 저는 이 부장을 못합니다." 이 부장을 못하겠대요. 그러면서 그분을 잘라달래요. 그분을 잘라달래요.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라고 이야기했더니 부장 집사님이 "목사님, 저분은 설교에 은사가 없으세요. 그리고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모두가 다 동의하고 선생님들한테 물어봐도 다 동의를 한대요. 그러면서 천하보다 귀한 아이들인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교를 시켜가지고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것은 부자로서 저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예? 그러면서 저한테 찾아오셔서 저한테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이고, 굉장히 어떻게 보면 결정을 해야 되는 그러한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을 만났어요.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하필이면 그 목사님의 전공이 설교학이었어요. P.H.D. 설교학을 전공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아니, 목사님 왜 P.H.D. 설교학을 전공을 하세요?" 그랬더니 "M.D.B였을 때 사람들이 그랬대요. 목사님은 설교에 은사가 없는 거 같다고. 그리고 본인도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한대요. 왜냐하면 설교를 너무 힘들어하세요." 그러면서 그래서 설교를 잘하려고 설교학을 전공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목사님, 이쪽 사역은 그만 두시죠."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왜냐하면요. 설교를 못하는 분이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 설교학을 한다고 해서 설교를 잘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건 뭐냐면 은사가 있어야 돼요. 설교에 대한 은사가 있어야 거기에다가 설교학을 배워야 이게 되는 거지, 성령님께서 설교에다 은사를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먼저, 성령님이 은사를 주셔야 돼요. 그래야 거기에다가 성령님을 의지해서 공부하고 할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덧붙여져서 이게 되는 거거든요. 여러분, 설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악기도 그렇고 다 그래요. 여러분들 찬양팀에 누가 악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해요. 그런데 한 번도 연주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와서 저한테 얘기해요. "목사님, 이제부터 제가 배워가지고 훌륭한 찬양 사회처가 되겠습니다." 그러게 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예? 아니, 무슨 교회가 연습장입니까? 천하도 귀한 영혼을 매껴서 연습하는 장소가 아니에요. 이미 그 사람은 웬만큼 준비가 되어져 있어야 돼요. 그래서 성령님께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는 와중에 하나님께서 더 크게 사용하길 원하셔서 훈련하고 배우고 해나갈 때 바로 거기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고 성령님께서 왜 은사를 주셨는지를 알게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요. 예수를 믿고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저 그런 제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최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맡기셨기에 그 영혼들이 사탄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그렇게 쓰임받기 위해서 목회자도 그렇고 교회를 봉사하는 사람도 바로 그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무시할 수가 없는 게 뭐냐면 은사예요. 은사예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기쁩니다. 기뻐요. 여러분들, 제가 우리 교회를 섬기면서 자랑하나 하자면 우리 교회 사역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면 오래 사역을 합니다. 한 번 사역을 하면 안 나가요. 십 년 이상 사역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왜요? 사례가 많아서? 아니에요. 사례가 많아서가 아니에요. 우리 교회 사역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뭐냐면 우리 교회를 그냥 섬기려고 오신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어떤 "아, 내가 이제부터 이 사약을 해야지."라고 하면서 온 분이 아니라 그냥 교회에 와서 봉사하러 오시는 거예요. 봉사하다 보니까 "어, 내가 이런 거 잘하네." 봉사하다 보니까 나에게 이런 은사가 있네. 그거를 발견하고 그 은사로 섬기다가 우리 교회에서 보니까 잘하거든요. 은사로 섬기니까 잘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분에게 우리가 사약을 맡기는 거예요. "이 사약을 자리가 비었는데 사약해주실래요?" 하면서 사역하는 분들은 오래 계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저도 신기해요. 저도 신기해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오래 사역을 하시는 분들은 처음부터 목사가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전도사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있다 보니까 신학교 가르치고, 있다 보니까 전도사가 되고 있다 보니까 목사가 되고 있다 보니까 우리 교회에서 사역을 하는데 그분들은 우리가 억지로 사역을 맡긴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하는 사역을 보면서 "아, 이분에게 이 은사가 있네."라는 것을 보면서 맡기니까 오래 사역을 하시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저는요. 우리 성도들이 그저 그런 제자가 되지 않기를 원해요.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은사를 최대한대로 활용함으로 말미암아 끝날까지 기쁨으로 주를 섬길 수 있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사역을 감당해 나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맡긴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교회가 바로 서서 "야, 나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대로 내가 주님을 섬기다 보니까 이게 최고였고,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거였고, 결국에는 사도 베드로가 순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기쁨으로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제자들이 되는 그렇게 에임 하이하는 제대로 된 제자로 쓰임받는 주의 몸된 교회,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세워가는 그러한 귀한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함께하기 위해 제자 삼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에게 욕심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특별한 제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저 그런 제자가 아니라 이제는 결국에는 베드로처럼 나다나처럼 어떻게 보면 순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만큼 우리가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우리들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님께 주신 은사가 뭔지를 정확히 알아 주님 앞에 충성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천하보다 귀한 영혼 하나님의 나라, 바로 이것이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게 하시고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 특별히 주님 앞에 쓰임받음으로 말미암아 "아, 주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은사를 주셨는지. 나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심에 감사밖에 없는 충성되 여겨 주시고 나에게 이 직분을 주셨음을 간증할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 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다 같이 일어나셔서 찬양하시겠습니다. 지금 오늘 주 예수 그리스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과 역사하심이 우리를 제자로 삼아 주셨는데, 우리가 특별한 제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저의 몸된 교회를 세우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아니하고, 정말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영혼 구원의 확장. 그래서 주님 앞에 특별하게 쓰임받는 그런 순교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하는 우리 영락의 성도님들과 또 예수로서 구주로 영접한 모든 성도님들 머리머리 위에 우리 주 오시는 그날까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