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5장 5절부터 6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내가 낳고자 하느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한복음 5장입니다. 그죠? 그런데 사도 요한은 매번 기적의 말씀을 쓸 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쓰고 있지 않아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잖아요. 그죠? 그런데 사도 요한은 특별한 기적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많은 기적을 쓰고 있지 않아요. 그 기적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본 기적은 뭐죠? 요한복음의 앞부분에 나온 첫 기적이 뭐예요? 포도주를 물로 만든 기적이죠. 그죠? 예. 그런데 그 기적의 의미는 모자람이에요. 혼인 잔치가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하는데 포도주가 없어요. 뭔가가 모자라요.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바로 그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삶 속에 신앙생활하는데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기적을 베푸셔서라도 채워 주신다는 것이 요한복음 2장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첫째 기적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제 두 번째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도 요한은 두 번째 기적은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뭔가를 해야 되는데 할 힘이 없어요. 할 수가 없어요. 바로 코앞에 베데스다 못이 있어요.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무기력해요. 자기 입을 할 수가 없어요. 앉은 병이에요. 바로 옆인데도 갈 수가 없어요. 이게 육적인 무기력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어요. 바로 옆인데 갈 수가 없어요. 이게 영적으로는 영적인 무기력을 얘기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야, 뭐뭐 해. 이거 네가 땅히 해야 되는 거 아니니?” 하는데 우리는 할 수가 없어요. 그 무기력.
여러분들, 제가 지금 겪고 있는 게 바로 그 육적인 무기력과 다를 바가 없어요. 예. 화장실도 혼자 힘으로 못 가요. 화장실도 혼자 힘으로 못 가요. 우리 아내가 옆에 있어도 못 가요. 제 몸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두 명이 붙어야 돼요. 두 명이. 여러분들, 그 무기력 이해가 되세요? 화장실 바로 옆에 있어요. 그런데 그 무기력을 화장실뿐만 아니라 침대에서도 혼자 못 내려와요. 침대에 눕혀 놓으면 그냥 24시간 그 포지션으로 있는 거예요. 육적인 무기력, 이게 영적인 무기력을 바라볼 때 비슷한 게 많아요. 비슷한 게 많아요. 예. 참 답답하죠.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참아야 돼요.
그런데 많은 분들은 육적인 무기력은 내가 몸속에서 경험하니까 그런가 보다 해요. 내가 체험하면. 그런데 영적인 무기력은 잘 몰라요. 여러분,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예요. 내 힘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어요. 한 치도 이룰 수가 없어요. 주님의 은혜 아니면. 예. 주님의 뜻도 마찬가지예요. 주님의 뜻도 내 힘으로는 할 수가 없어요. 십자가 아니면 매 순간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어요.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무기력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걸 깨달으라고 얘기해요. 너는 모를지 모르지만 너는 영적인 무기력 속에 있다. 이게 바로 요한복음 5장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너는 영적인 무기력 속에 있는데 너는 아느냐? 내가 너에게 이런 것을 이렇게 살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너는 순종하고 행하고 있느냐? 하나님 미루고 제대로 행할 줄도 모르면서 의지하지도 않고, 그리고 내가 영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냐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부분이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이에요.
교회는 무기력 속에 빠져 있으면 안 돼요.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예수님 역사해 주세요. 이 고백이 우리에게 필요해요. 여러분들, 물론 저처럼 영육적인 무기력 속에 빠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러기 전에 우리는 내가 영적인 무기력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찾는 우리가 돼야 돼요.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무기력에서 능력 있는 교회로 바뀌게 된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 어떤 면에서 이번 주 설교가 마지막 설교예요.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제가 선택한 본문은 아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이러기를 원해요. 우리 교회가 무기력 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교회. 아멘. 성도들이 아, 내가 무기력 속에 있는 영적인 무기력 속에 있는 것을 깨달아서 이제는 이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그런 교회이길 원해요.
그렇기 위해서 첫째로 기적이 필요 없이 사는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을 우리가 바라볼 수 있어야 돼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들, 무신론자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많은 책들이 무신론자들이, 특히 리처드 다킨스라는 사람이 무신론자예요. 그리고 책도 냈어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고 신이 없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랬더니 그 시대에 같이 살았던 일리스트 맥크레스라는 사람이 그 책에 반박을 해요. “도끼세 명 망상”이라는 그 책을 내면서 이런 얘기를 해요. “그 사람과 나는 어떻게 똑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어떻게 완전히 반대되는 해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단지 하나님을 믿었을 뿐인데 내 삶에는 온갖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으로 가득 차고 나는 하나님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사는 거예요. 뭐가 문제인가? 뭐가 다른 것인가?” 예. 나는 믿었을 뿐인데라고 얘기를 하면서 이 믿음이라는 것은 바이러스 같아서 믿으면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얘기를 해요.
여러분들, 무신론자라는 건 뭐냐면 반대로 얘기하면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에요. 왜요? 자기 삶 속에 하나님이 경험되어지지 않는다라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었던 거예요. 많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해서 경험하고 싶었는데 경험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요? 믿음 없이 하나님을 막연히 경험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현대 사회도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누가 필요하냐면 하나님이 필요해요. 이 시대는 기적을 목말라하는 시대예요. 왜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래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어요. 저처럼 건강의 문제 속에서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요. 그렇죠?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어요. 누군가가 기적을 베푸셔야만 하는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그게 우리 살고 있는 시대예요. 그런데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오늘 말씀에 보면 베데스다 못이 등장합니다. 이 베데스다 못 주변에는 여덟 개의 양의 문이 있어요. 여덟 개 양의 문이 있다는 것은 뭐냐면 여덟 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해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에요. 그 문 안에는 베데스다 못이 있어요. 왜요? 양을 가져와서 거기에서 양을 씻고 씻은 후에 거기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며 하나님께 재물을 바치는 거예요. 여덟 개의 문이라는 것은 많은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 안은뱅이 이 사람은 갖다 놓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왜냐? 물이 일어날 때 자기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못 하는 영적인 무력함 속에서 하나님은 기대해요. 하나님의 기적은 기대해요. 그러나 기적은 체험할 수 없어요. 그럼 이런 사람들은 뭐라고 고백해요? 신은 없다라고 고백하죠. 왜요? 신을 기대했는데 없는 거예요. 경험이 안 되는 거예요. 경험이 안 돼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오늘 본문은 그런 베데스다 못이 신이 없다라고 점점 생각하려고 하는 그런 시대 속에서, 그러한 순간 속에서 우리 주님은 어떤 주님이신가를 나타내 보고 있어요. 그건 뭐냐면 첫째로 우리 예수님은 병들고 고통당하고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주님이라는 거예요. 오늘 말씀 5절에 보면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곳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내가 낳고자 하느냐?” 물론 병이 너무너무 오래됐어요. 38년이나 됐어요. 예. 38년이나 됐어요. 이제는 정말 하나님이 안 계시다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자리예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찾아오시는 분이에요. 그런데 이게 세상의 종교랑 다른 부분이에요. 세상의 종교는 우리가 찾아가야 돼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 예수님,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에요. 바로 그 주님을 경험하기 원해요. 그 주님을.
그리고 찾아오셔서 어떻게 합니까? 6절에 “내가 낳고자 하느냐?” 우리에게 우리의 소원을 물어 주시는 분이에요. “내가 낳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분이에요. 세 번째는 5장 7절에 병자가 대답해요. “주여,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모세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그 사람이 자기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랬을 때 사정을 얘기했을 때 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이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 주님은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주님이시라는 거예요. 우리 주님은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분. 예. 우리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베데스다라는 뜻은 긍휼의 집이에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 맞습니다. 저는 이곳 우리 영락교회가 베데스다의 자리이기를 원해요. 아멘. 바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주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소원을 물어보시고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를 원해요. 왜요? 바로 이것이 세상의 기적을 막물하는 사람들의 장소이기 때문에 그래요. 예. 그래서 우리가 오래 기다렸지만 신이 없다라고 내린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역시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예. 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기적을 베푸시는 자리가 되기를 원하고 우리의 간증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두 번째로 저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놓지 못하게 하시는 기적의 소망이에요. 벌써 오랜 시간이 저는 암에 투병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처음 암에 걸렸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말씀이 있죠. 여러분도 다 아시잖아요. 제가 얘기를 하니까 아시죠? 그렇죠? 사무엘상 20장 2절이에요.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내가 죽지 아니하리라.” 처음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제가 정확히 이 날짜를 기억하는 게 3월이에요. 왜냐하면 그때 제가 어디에 있었냐면 노예를 하고 있을 때예요. 노예를 하려고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저희 닥터가 저한테 암 선고를 했어요. “목사님, MRI를 찍었는데 암입니다.” 그런데 고칠 수 없는 암이라는 어떤 그런 의미로 저에게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제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늘 하듯이 저는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제가 이런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하필 그날 그 생명의 말씀이 저에게 딱 꽂히면서 하신 말씀은 뭐냐면 “결단코 아니라 내가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가지고 지금도 붙잡고 있어요. 예. 그런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럼 죽지 않았잖아요. 아직도. 그죠? 그러면 이런 뜻일까?라고 제가 생각을 해요. 이런 뜻일까? 그런데 이런 뜻은 아닌 것 같아요. 죽지 않고 질질 끌 거라고 주시는 말씀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을 바라볼 때 하필 복음서의 말씀을 읽기 때문에 수많은 치유에 대한 말씀이 그 안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탁탁 와닿는 말씀들이 있잖아요. 예. 그중에 하나가 2025년 특별 집회 때 마지막 설교 때 하신 말씀이에요. 그 강사 목사님이 마지막 설교 때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시편 118편 17절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아멘. 아멘.
저에 대한 병에 걸렸다는 얘기는 들으셨지만 우리 교회 전체 집회 때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이 저에게 꽂혔어요. 2025년도죠. 그런데 저는 설교 때마다 이런 설교를 하는 게 참 그랬어요. 왜냐하면 목사가 죽지 않고 애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말씀은 그렇게 얘기하세요. “너 죽지 않고 살 거예요. 죽지 않고 살 거예요.” 예. 물론 하나님께서는 저 천국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솔직히 제 마음은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이 시간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혼자 오랜 시간 그 둔어 있는 그 시간이 천국 가니까 가서 사는 게 훨씬 좋아요. 훨씬 좋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꾸 산대요. 죽지 않는데요. 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설교를 영학교에서 이제는 마지막 설교를 하는데 계속해서 이런 방향으로 말씀을 주세요. 얼마 전에는 성경을 읽어야 했는데 성경이 멀리 있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저 아내한테 “여보, 오늘 제가 생명의 말씀 읽어야 되는데 좀 갖고 오라고.” 갑자기 읽고 싶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 구절을 다 펴서 읽는데 고린도전서 6장 20절이었어요. 그 구절이 그거예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러분들, 세 가정관 하신 분은 알겠지만 저는 목사 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를 부르시고 이 말씀 주신 거예요. “야, 너는 내 피값으로 산 사람이야. 네 인생, 네 마음대로 못 해.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몸이라는 게 저는 그 당시에 자비였어요. 사망이 사명이었어요. 어떻게 들렸냐면 “너 목사 돼야 돼. 목사라서 사명 감당해.” 그런데 이 말씀을 또 주시잖아요. 또 주시니까 어떻게 느끼냐면 “너는 이제 제2의 목사로서의 다산 삶을 시작해야 돼. 준비해. 너는 목사로서 다시 내가 처음 목사로서 너를 부른 것처럼 이제 다시 너를 그 사명자로 부르니까 이제는 너 감당해.”라는 말씀으로 이 구절이 저에게 와닿았어요.
그리고는 이제 오늘 설교를 준비해야 될 때가 온 거예요. 오늘 설교를 준비할 때가.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는데 요한복음 5장 5절이 제가 설교 준비하는데 뜬 거예요.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38이에요. 저는 이 숫자가 나오면 조금 민감해요. 왜냐하면 그 숫자랑 연관되어서 제 삶이 되어질 때가 좀 많거든요. 38.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38은 광야에서 방황했던 고통의 광야의 시간이에요. 38년. 이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숫자가 나에게도 해당될까 해서 해석을 해 보기 시작을 해요. 뭐냐면 제가 영등학교 처음 왔을 때 제 택남가 YNC였어요. 영락 교회. 그리고 PO 88, 파월 88, 저희 아내 택은 PO77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하변에 제 택은 YNC, 영락 교회, 파월 팔, 능력이 팔팔하다. 해서 제 사역이 정말 그렇게 한 번도 그 문제 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주셨어요. 파워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숫자가 나오면 “어, 나랑 무슨 연관이 있나?” 오늘 마지막 설교인데 하면서 38.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의미가 있는 숫자인데 38. 그런데 내가 사역을 언제 시작했지? 예. 그러면서 2002년 3월에 시작했는데 아무런 연관이 없더라고요. 서파도 예, 이게 2023년이면 정확히 38이 나와요. 제가 사역한 지가 연은 아니고 38달이 나와요. 그때 2002년 사역을 시작했으니까 아무것도 아닌가 보다 하고 옆에다 제껴 놓고 있는데 저희 아내가 딱 오더니 “이게 무슨 얘기야? 왜 2022년은 뭐야?”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가 사역한 애가 2022년부터 사역을 했으니까.” 그랬더니 저 아빠 그랬더. “아니야. 영학교에서 사역한 게 2003년이야.” 그러더라고요. 그 뒤져 보니까 제가 2003년부터 시작을 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영락학교에서 사역한 게 38만을 근데 제가 38년 사역했으면 제가 이미 죽었겠죠. 그죠? 그런데 38년 만들을 영락께서 사역한 걸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 또 38년 광야의 사역을 아픔의 시작을 아픔의 사역을 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 지나는 떨리의 말씀이 시작부터가 저에 대한 스토리예요. 스토리예요. 안은뱅이 무력함, 정확하게 제가 겪고 있는 그걸로 겪고 있는 것이 본문인데 그 본문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저한테 하나님께서 떨리스라고 또 얘기를 해 주세요. 시설리의 말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저희 둘째 딸이 자기 집에 합필이면 수영을 하러 오라 그러더라고요. 수영을 또 옆에 수영장까지 있잖아요. 못까지 있잖아요. 뭐 베데스다 못처럼 수영장까지예요. 그런데 처음엔 느끼지 못했는데 수영장에 갔는데 저는 너무 무거워서 저희 사이랑 아들이 제대로 잡아 주지 않으면 다쳐요. 그냥 아무것도 못 하고 우엉하고 있는데 170파운드 자리를 예, 움직여서 물에 넣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까지 몰랐는데 수영장을 저 물을 넣었다가 좀 삐끗해 가지고 그냥 물에 확 그렇게 빠질 뻔했어요. 그때 제가 느낀 게 뭐냐면 “야, 이게 베데스다 못이구나.” 베데스다 못에 사람을 집어넣을 때 무력한 사람을 집어넣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하필이면 하필이면이 사건을 내가 베데스다 못을 설교하려고 하는 그때 하나님께서 경험하게 하시는 그 이유는 뭘까? “네가 바로 베데스다 못에 있는 거야. 예. 네가 그 기적의 현장에 있는 거야.”라고 나에게 알려 주시는 거라고 저는 믿게 된 거예요. 아니, 안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우연이 너무 많지 않아요, 여러분들? 우연이 너무 많지 않아요? 예. 그것뿐만 아니라 저희 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이런 기적의 역사가 이미 있어요. 그게 뭐냐면 제 둘째 동생이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았는데 나은 지 얼마 안 돼서 온몸에 혹이 납니다. 의사는 못 고칠 암이라고 이미 진단을 내렸어요. 이미 저처럼 못 고친 지병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수많은 치료를 해 봤지만 낫지 않았어요. 낫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힘으로는 못 났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애가 그 암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사라지. 우리 집안에 있는 실제 얘기예요. 우리 둘째, 아무도 걔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암이 다 없어지고 사라지고 사라졌다는 게 맞겠죠. 한 게 없으니까. 사라지고 지금은 건강하게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살고 있어요. 이 우리 집안의 얘기예요. 이 모든 것이 저의 삶 속에 경험되어지게 하시는 그 하나님은 우연이니까 그냥 지나가라고 하시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일 거예요.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일 거예요. 저는 제 인생에서 이 모든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순복음 기적을 그런 신비적인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무기력한 저에게 하필 오늘 본문을 주시면서 주시면서 예수님께서 “네가 낳고자 하느냐?”라고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저는 위원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아멘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천국 가고 싶지만 주님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아멘. 주님의 역사를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 번째로 저는 우리 교회가 바로 그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아멘. 저는 설교가 마지막 설교일지 모르지만 이제 저의 마지막이 말씀이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아멘할 때 우리 교회가 기적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왜요?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에. 아멘.
특별히 말씀이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조건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뭐냐면 첫 번째로 주님의 택하심이 있어야 돼요. 아멘. 주님의 택하심이 있다는 얘기는 오늘 6절에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오래된 줄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택하셔서 오셔서 물어보셨어요. “네가 낳고자 하느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이미 택하심이 있다는 얘기예요. 이미 기적은 시작됐다는 얘기죠. 그리고 성자 되신 예수님이 그곳에 찾아가심을 믿어야 돼요.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임을 믿어야 돼요. 아멘.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물어보세요. “네가 낳고자 하느냐?” 물어보시는 그 주님 앞에 우리가 대답하길 원합니다. “주님, 아멘.” 그리고 믿음을 보이길 원해요. 믿음을 보이세요. “주님, 아멘입니다.”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얘기고 우리 교회의 얘기입니다. 말씀 주셨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주님 아멘하고 믿습니다. 아멘.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더 이상 그냥 무력한 교회가 아니라 능력의 교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교회, 주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나는 교회,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교회로 직접 모든 것을 체험하는 교회, 간증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에게 말씀 주실 때, 우리는 무력한 설교가 되지 않게 하시고 그 말씀 앞에서 아멘하며 믿음으로 그 역사를 경험하며 체험하며 고백하며 간증하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부족한 저희지만 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 가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시고 주님이 뜻하신 말과 부족한 사람을 통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영광 나타내 보여 주시옵소서. 아멘. 말씀대로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하오며 기대하며 “네가 낳고자 하느냐?”는 그 앞에서 아멘하고 있사오니 주여 이제 부흥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우리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찬양 부르시기 원합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제 우리 이 땅에 무너진 기초를 다시 살 때 이 땅에 무너진 기초,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시고 성령의 불임하소서. 성령의 바람, 부의 불길이여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이 땅 새롭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이 땅 새롭게 하여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이 땅에 임하소서. 땅에 임하소서.
지금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님께서 성령님의 크고 놀라우신 역사하심을 믿는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이 모든 39라고 날짜까지 알려 주신 그 주님을 믿는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이제는 정확하게 체험하며 간증하기를 소원하는 우리 영락의 성도님들과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구주 영접한 모든 성도님들 머리 위에 우리 중 오시는 그날까지 영혼으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