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열방을 심판하실 권능이 있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이 그들만의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권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어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
오늘 본문 이사야 14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권능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메시지를 통해 세상 나라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바벨론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는 회복의 메시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선택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을 믿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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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14:1-5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어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5.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 이사야 10 1.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3.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4.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8.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11.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 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14.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 소멸되며 18.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감 같을 것이라 19.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24.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25.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26.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28. 앗수르 왕이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29.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30.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31. 맛메나 사람은 피난하며 게빔 거민은 도망하도다 32.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33.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34.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 이사야 14:1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 이사야 14:6 6.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심판 소식을 듣고 세상의 나라가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수르와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그들의 교만과 악행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멸망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심판은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은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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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전반부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나요?
이사야서의 전반부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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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심판 소식을 듣고 어떤 교훈을 받았나요?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과 아수르 같은 초강대국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모든 나라는 영원하지 않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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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심판을 통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심판을 통해 구원의 희망과 안식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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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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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회복되었을 때 어떤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나요?
이스라엘은 바벨론 왕이 무너졌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자, 오늘 그 본문 이사야서를 보게 되는데, 이사야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이사야가 1장부터 66장까지 이렇게 있는데, 그 전반부는 1장부터 12장까지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13장부터 23장까지는 모든 세상 열방을 향한, 이방 땅의 하나님의 심판을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는 것이에요. 예, 모든 나라들을 향해서 심판이 있다. 이렇게 경고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14장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향해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본문이겠죠. 예. 오늘의 심판은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심판이 있다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지금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을 향해서 심판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그 이야기를 바벨론 사람이 지금 듣고 있을까요? 바벨론 사람들은 사실은 역사적으로 볼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라입니다. 조금 더 있다가 지금은 아수르의 지배를 받는 그런 상황인데, 앞으로 바벨론이 심판을 받는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약소국에 불과한 이스라엘의 조그만한 나라에게 한 종교 지도자가 그 초강대국을 향해서 심판이 있다. 너희들은 망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예. 요즘 뭐 미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이런 강대국을 향해서 아프리카의 어떤 종교 지도자 한 목사님이 러시아, 중국 망했어. 미국 끝난 거야. 이렇게 막 큰 소리를 치면 그 강대국에 있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야라고 코웃음을 치지 않겠습니까? 예. 직접 듣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차, 장소의 간격 때문에 직접 듣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코웃음을 쳤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심판의 메시지는 누가 들으라고 하는 메시지입니까?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가 앞으로 열방이 다 심판받는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열방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그 얘기를 듣고 어떤 교훈을 받게 되었겠습니까? 첫 번째로는 세상에 열방이, 특별히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초강대국이라고 하는 엄청난 파워를 가진 나라인데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심판하셔서 망하게 하시겠다. 이런 얘기를 했을 때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설마 그럴 리가라는 얘기를 했다가 생각했다가도 아수르도 망한다. 그리고 바벨론도 망한다. 블레셋도 망한다. 다메색도 망한다. 모압도 망한다. 애굽도 망한다. 에돔도 망한다. 구수도 망한다. 두로도 망한다. 음악 심판의 메시지가 계속 나라마다 계속 나오니까, 진짠가 이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우리는 그냥 하나님이라는 여호와라는 분이 우리 민족을 지켜주는 수호신 개념 정도로 아니면 이스라엘의 한 민족신 정도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 우리가 믿는 이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 열방을 다 심판하실 수 있는 그런 권능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그 엄청 충격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정말 그럴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니라 온 세상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절대 왕권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아수르나 바벨론 같은 초강대국이 영원할 것 같은 그 나라가 심판을 받아서 망한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 나라는 이 땅에는 세상 나라는 영원하지가 않구나. 모든 나라도 망하는 거구나. 영원한 나라는 없구나. 우리가 신뢰할 대상은 아수르나 바벨론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되겠구나. 이런 믿음이 조금씩 싹트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이 영원하지 않은 세상 나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 그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세워 가시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구해야 될 것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세상 나라에 마음을 두어서 안 되겠구나. 그들을 의지해서는 안 되겠구나. 망하는구나. 이 나라들은 유한한 존재들이구나. 하나님이 영원하신 당신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에 와, 내가 이런 특권을 가졌단 말이야. 이런 깨달음이 조금씩 생기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나 이런 나라들을 보면서 우리가 거기 마음을 많이 뺏겨 있죠. 야, 이 나라들이 자지우지하는구나. 이 세상 역사는 우리의 생명과 안정과 미래는 저 나라에 줄서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초강대국의 그 아주 스트롱맨, 강한 리더십을 가진 그 지도자들이 이 세상 역사를 자지우지하고 경제 주가도 마음대로 석유값도 마음대로 정치의 어떤 분위기도 자지우지하고 무슨 단체 협박이든 하루 아침에 깨뜨리면서 자기 갈 길을 가고, 그리고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나 전쟁하는 걸 보면 와, 무슨 무슨 전쟁이 뭐 로버트를 동원하고 드론을 동원하고, 아, 무슨 이게 무슨 게임하는 것처럼 장난을 하는 것처럼 거기다가 북한까지 군인들을 데리고 와서 수만 명이 살상을 당하는데 그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국익을 위해서 자기의 권력의 기반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람들을 임명을 살상하고 수많은 이런 무기들을 수조원을 쏟아부으면서 이렇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꼴을 보면서 우리가 과연 그 지도자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각종 나라의 지도자들이 자기의 그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가운데 소용돌이 속에 살면서 내가 이 왕들을, 이 지도자들을, 이 세상 나라들을 과연 신뢰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열왕들이 유한하고 열왕의 그 모든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혜와 능력이 영원하지 못하고 공의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사익을 추구하고 자기 국익만 추구하는 저런 나라들의 틈바구린 속에서 우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다. 하나님의 의만이 정의롭고 공의롭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야. 여러분, 이런 생각을, 이런 믿음을 우리가 회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떠밀려 가시겠습니까?
두 번째로, 열왕이 열국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뭐 이랬다 저랬다 하시냐? 처음에는 바벨론, 아수르를 막 일으켜 가지고 우리를 치게 하시더니 이제는 그 바벨론, 아수르를 막 다시 친다고. 그거 왜 이렇게 하시는 거야?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시나? 하나님은 전쟁광이시다. 하나님은 호전적인 분이시다. 아니 구약의 하나님 보니까 맨날 싸움박질하고 맨날 파괴하고 맨날 심판하고 신약의 하나님은 은혜롭고 사랑이 많으시고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다른 하나님인가 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세상에 구약의 이 하나님께서 왜 들어서 사용했던 아수르와 바벨론과 열왕들을 또 이번에는 치고 계시는 이런 변덕스러운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가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10장 같은 데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수르 사람 같은 경우에 그들이 너희를 쳤는데 사실은 아수르 사람도 벌을 받을 거다. 화를 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했다. 내가 그를, 그들을 막대기로 써서 너희를 쳤다. 경건치 않은 나라를 내가 야단쳤다. 그런데 그 아수르 사람들이 그 의도를 모르고 내 의도를 모르고 자기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의 뜻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고 멸절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여러분, 한 나라를 쳐라 그랬는데 허다한 나라를 치고 자기 제국을 형성하고 그리고 야단을 치하고 그랬는데 오히려 힘을 오남용해서 멸절시키고 파괴시키는 데까지 그들이 함부로 자기의 힘을 썼구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을 다 행한 다음에 그 아수르의 교만한 마음과 그의 교만하고 자랑하는 그 얘기들을 내가 다 듣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아수르 사람들이 나는 내 힘과 내 지혜로 모든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열국의 경계선을 그어치웠고 한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다 정복해서 내가 제국의 건설의 야욕을 채우고 온 세계를 마치 내버린 나를 줍듯이 쉽게 내 나라로 한 나라로 다 통합시켰다. 이렇게 자랑하고 있는 그들을 내가 반드시 벌겠다. 그들이 세상에 도끼를 지어줬는데 도끼를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면서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고 하는 나무 아닌 사람들을 들려함과 같토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막대기로 쓰셨는데 이 막대기가 막대기를 드신 분의 뜻대로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막대기를 드신 분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자랑을 하고 있다. 힘을 오남용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이 바벨론도 아수르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그 경고를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강력하게 너희들 망한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익여분의 재산과 힘과 전투력과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가지고 써야 될 그것들을 오히려 그 힘을 가지고 남을 정복하고 더 죽이고 네 것을 더 챙기고 너의 디자이어를 만족시키는 그런 일에 그 힘을 썼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될 일이다. 절제와 겸손과 하나님이 하신 그 사명에 입각해서 네가 해야 될 일들을 그 선을 넘었다. 너는 교만했다. 너는 내가 없어도 되는 거구나라고 책망하시면서 아수르와 바벨론이거든. 그 부분을 반드시 벌하시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하나님은 전쟁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말 공의로우신 분이죠. 하나님은 랜덤하게 아무렇게나 막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나라를 망하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디테일하신 분이죠. 섬세하신 분이시죠. 모든 걸 보고 알고 계시는 분이시죠. 여러분, 혹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셨습니까? 우리는 약속으로 살면서 너무 억울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힘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이 너무 안스럽다. 이렇게 스스로 초라해하고 아파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물론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책망하신 거 알겠다. 근데 이게 너무 오래되었다. 너무 아프다. 너무 심한 고통을 당했다. 나를 치는 저 막대기가 나를 너무 심하게 오랫동안 나를 죽이려고까지 들었다. 내 질병이 너무 오래되었다. 내 가난이 너무 오래되었다. 내가 잘못된 건 알겠지만 하나님이 그건 너무 많이 고통을 당한 거 같아서 마음의 상처가 된다. 이럴 수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억울함이 있으십니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거든. 다 공의롭게 처리해 주실 거. 그들의 갑질을 아시고 난대없이 큰 소리 치면서 야단 맞을 때 이유도 모르게 눈물 흘렸던 그 모든 순간들을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다 아십니다. 제앙반은 대화가 안 돼. 큰 소리만 치고 내가 그런 모욕과 그런 잔소리와 그런 억울한 일들을 들어야 될 만큼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자존심을 깐그리 뭉겼던 그들의 공격에 대해서 마음에 많이 상처가 되었던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다 안다 이렇게 얘기하시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우리가 가진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어디에 쓸 건가? 우리가 가진 여러분 은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공부했을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외모가 출중할 수도 있겠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여유가 있는 경제적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여러분이 건강이 좋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여러분이 가진 그 건강, 그것들이 외모, 그것들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시간적인 여유나 모든 것들이 자랑거리가 된다. 남들을 하대하고 내가 우울감을 갈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 여유와 그 여유분의 시간과 마음과 물질과 모든 그것들을 주신 것은 내가 스스로 그것을 얻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그 여유분을 주셨는데 그것을 움켜지고 나를 위해서 내 새끼들을 위해서 그걸 내 가지고 앉아고 잊기만 한다고 한다면 하나님 그 다 뺏어버리신다.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그런 부분에서 바벨론이 일어나서 또 우리를 친다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 우리가 당했던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는 거구나라고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바벨론이 망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휴, 이제야 구원이구나. 이제야 우리에게 안식이 찾아오는 거구나. 여러분, 한 사람의 심판은 한 사람의 구원일 수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의 날은 동일한 날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망한다. 그 얘기는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시는 거구나. 이제는 풀려나는 거구나. 그런 우리에 대한 회복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제가 세 가지 말씀드렸죠. 예. 오늘 세 번째 그 회복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4장 1절에서 2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회복해 주셔서 심판에서부터 놓임을 받고 이제 본토에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신다. 근데 그저 돌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이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재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 완전한 반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대역전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냥 돌아오기만 해도 아, 이제 좀 살만하다. 이제 조금 회복이 되었다. 아, 이 안정감을 가졌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새로운 인생을 힘 있게 살아갈 수가 있고 이전에 벌벌 떨던 그들을 향해서 오히려 우리가 큰 소리를 치면서 그들을 정복하고 당당한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재하던 자들을 이제는 주관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러분? 이 일이 언제 이루어지겠습니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사로잡혀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막 두리번 떨고 있던 자들인데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죄의 종사리에서 신음하던 우리들이 이제 의롭게 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승리의 삶을 우리가 의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사로잡았던 그들이 더 이상 우리를 사로잡지 않고 이제 우리가 그들을 사로잡아 우리가 참된 자유를 누리고 살게 되었다. 여러분, 인생은 죽음 굉장히 두렵습니다. 죽을까 봐 두려워하고 떨고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우리가 두려워하던 그 죽음을 정복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는 죽음으로 그분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사건,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주셨습니다. 아, 이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승리를 우리가 얻게 되었구나. 여러분이 믿음은 다시 회복하실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네. 그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다시 택하여 주셨다. 14장 1절 2절에 보시면 우리를 다시 택하여 주셨다. 여러분이 다시 택하여 주셨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다시 택하여 주셨다. 아니 누군가를 선택했습니다. 근데 선택을 취소하고 다른 사람을 다시 택하여 주셨다는 그런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되겠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불쌍히 여겨 주심으로 그 선택을 재확인해 주신 거죠. 아니 하나님이 누군가를 선택하고 용도 폐기하고 더 이상 이 사람은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사람을 또 선택한 게 아니라 다시 선택했다는 얘기는 내가 너를 선택했다는 것을 다시 재확인한다 그 얘기 아닙니까? 다른 사람을 또 택한다는 게 아니라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한번 택하셨는데 또 다른 사람을 택하는 게 아니라 한번 택하신 것은 영원히 유효하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를 불쌍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머저리 같은 삶을 산다 하더라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긍휼로 여기셔서 그분께서 우리를 다시 선택을 재확인해 주시겠다는 거 아닙니까? 다시 선택해 주시겠다. 그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게 아니라 나는 영원히 그분의 손 안에 붙잡혀 있구나. 이게 그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은 끝이 없다. 인자와 자비와 긍휼이 영원함이로다. 그 찬송이 우리 안에 회복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상대방이 나에게 어느 정도 사랑하느냐, 얼마나 지속적으로 영원하게 변함없이 사랑하느냐 이 느낌을 좀 가지시면 나도 그분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천박한 신앙생활 하는지, 내가 얕띠 얕은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분의 사랑을 절절히 깊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를 다시 선택하셨다. 너의 선택을 재확인한다.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것을 이렇게 서시는구나. 나의 못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다시 선택했다고 내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거구나. 나를 버리시는 게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는 거구나. 여러분, 그 절절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전유라고 감동하면 우리가 그 하나님 앞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조금 더 신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환경과 상황에 관계 없는 끝없는 그분에 대한 커미먼트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분께서 이런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주셨는데 그랬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회복돼야 될 게 뭐냐? 그것이 우리의 노래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14장 3절에서 5절의 내용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공고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세 가지입니다. 슬픔, 그리고 곤고, 그리고 고역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놓아 주셔서 우리에게 뭘 주셨다고요? 안식을 주셨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을 얻은 우리에게 무슨 노래를 하라고요?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여러분 같이 읽습니다. 시작. 압재하던 자가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여러분이 노래의 내용이 뭡니까? 노래의 내용이 압재하던 자가 강포한 성이 바벨론 왕이 그렇게 잘 나갔는데 그렇게 무소부리의 권력을 휘두르고 그렇게 자기가 최고의 힘을 발휘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누가요? 여호와께서 그를 꺾으셨다. 예. 그들이 만능의 힘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 만든 위에 전능하신 분이 되셔 가지고 그들의 힘을 꺾어 놓으셨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전능자시구나. 이것이 우리의 노래의 내용이 되어야 된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릴게요. 우리는 어떤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슬픔 그랬습니다. 첫 번째는 뭐라고요? 슬픔. 슬픔은 우리의 감정의 상태인데 이것이 단순히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이런 외적인 모습이 슬픔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에서의 절망입니다. 슬픔. 사람이 슬프다는 얘기는 내 안에 절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 절망이 있다 보니 내 표정도 또 내 눈물도 이렇게 겉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죠. 예. 슬픔의 반대말은 뭐라고요? 기쁨이 아니고 소망. 그렇겠죠? 내게 소망이 생겼다. 두 번째는 곤고 그랬습니다. 곤고라는 말은 내가 공고하다. 정말 내가 내 삶이 공고하구나. 이 말은 흔들린다. 안정감이 없다. 두렵다. 곤고하다. 아, 정말 평안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예. 권고하다 하는 말은 막 요동하고 흔들리고 불편하고 이런 것이 계속되는 삶 가운데서도 내가 다시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평안을 회복하게 되었다. 예. 그리고 세 번째는 고역이라 그랬습니다. 피지컬리 내가 뭐 서비스를 많이 하고 하들 서비스 뭐 엄청난 힘든 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주일을 하고 가정 일을 하고 너무 이건 고역이다. 그런 신체적으로 힘든 상태가 고역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고역의 반대말은 뭘까요? 그 고역의 반대말은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근데 그것이 강제적으로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 힘든 일이 힘든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로부터 내가 놓임을 받은 것이 뭐라고요? 안식입니다. 안식. 안식은 그러니까 뭐를 회복하는 거예요? 슬픔 대신에 소망을. 그죠? 그리고 곤고함 대신에 평안을, 그리고 고역이다. 강제적으로 하는 고통스러운 일 대신에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 안식입니다. 여러분, 이런 안식이 회복될 때 내 안에 뭐가 있다고요? 노래가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공고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이 노래를 지어 불러야 된다. 첫 번째는 이 평화를, 이 자유를, 이 기쁨을 누가 회복시켜 주셨다고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세상에 그 바벨론 왕이 자지우지하던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의 규를 지팡이를 꺾어 놓으셨다. 왕권을 무너셨.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 여러분, 지금 노래에 대해서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노래는 몇 절까지 계속 될까요? 이 찬송가는 몇 절까지? 4절은 해야 되겠죠? 예. 찬송가에 6절도 있고 막 그러는데 오늘 4절까지. 예. 1절은 뭐였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만이 전능하시다.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열왕들의 힘을 꺾어 놓으실 수 있는 유일한 신뢰의 대상이다. 2절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14장 6절에서 8절에 보시면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노하여 열왕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여러분, 분내고 노하고 우리를 억압하고 해서 세상이 소동하고 시끄럽고, 야 정말 괴롭다. 저 인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정말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이랬는데 갑자기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병원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 뭐라고 노래하냐면 레바논의 백향목도 기뻐하여 네가 넘어져 있은즉 바벨론이 넘어졌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도끼를 들고 백향목을 베어 올 자가 없도다. [한숨] 그랬습니다. 우리를 베어버릴 자가 없도다. 이것이 대자연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2절의 가사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베어버릴 자가 없도다. [한숨] 그가 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내 평화를 아삭아갈 자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꼬꾸라졌기 때문이다. 그가 넘어져 있은 즉 우리를 베어버릴 자가 없도다.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갑자기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 박스 로마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가 하나님의 나라 안에 누리는 이 평화가 온 땅이 조용하고 병원하니 바벨론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그 평화를 우리가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이 평화를 노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왕들이 온 민족들이 분을 내고 모든 세상이 소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평화를 아삭할 자가 없도다. 이게 2절이었습니다. 여러분 3절은 뭐였나요? 14장 9절에서 보시면 아래의 스월이, 이 말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 세계 가운데, 이 지옥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온다고 한다. 그 잘난 척하든 바벨론 왕이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살던 그가 드디어 지하로 내려온다. 그가 죽어서 우리와 똑같이 되는 거구나. 우리가 영접하자. 세상에 있는 영웅 호걸들이 다 죽음 아래 들어갔다가 그 망령들이 이제 이 바벨론 왕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다 깨어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너 영화가 이 스월에 떨어졌음이여 구두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그렇게 화려한 침대에서 그렇게 멋진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은 이 지렁이와 구덩이가 너희들의 그 삶에 깔고 입고 듣고 자구하는 이 지옥에 나라가 떨어졌구나. 여러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 유한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에이 60세, 70세가 되면 외모가 평준화된다. 예. 세상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을 평준화시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영웅도, 권력자도 똑같이 우리와 같이 되었구나. 우리와 같이 되었구나. 우리가 다 같이 이렇게 죽어 지옥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연약한 인생들이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로 죽는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에이 죽어 버리지 마. 죽으면 끝이야. 한 많은 세상 안 보고 말지 그냥 죽으면 끝이니까 죽어 버려. 이 큰일 납니다, 여러분. 죽어도 산다. 예. 그리고 두 번째는 떠돌아다니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알아본다. 바벨론 왕이 온단다. 여러분, 그래서 이 죽어도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서로 알아보는 그 존재가 지속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죠. 여러분, 죽어도 뭐 한다? 부활한다. 예. 예수 믿는 사람도 부활하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부활한다. 근데 무엇을 위한 부활이냐가 다르다. 영원한 형벌을 받기 위한 구덩이와 구덩이가 있는 그 속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는 부활이냐? 살아 있다. 여전히 아, 죽고 끝나면 사차라리 나을 텐데 죽지 않고 영벌을 위한 부활이 있다. 여러분이 죽어도 산다.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죽음 이후에 삶이 달라진다라고 생각할 때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인생은 유한하다. 인생은 죽음이 모든 것을 평준화시킨다. 너무 잘난 척해서는 안 된다. 예. 4절은 뭘까요? 4절 마지막으로 14장 12절에서 17절에 이런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픈 자여 어찌 땅에 찍혔는고 그 바벨론 왕이 계속해서 비유적으로 하늘까지 스스로를 신격화해서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했던 그래서 바벨탑의 그 후회들처럼 끝까지 하늘 끝까지 높아지려고 했던 그 인생들이 드디어 가장 낮은 곳에 스월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지는 것을 네가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이 얘가 개냐? 세상에 그 잘난 척하든 땅을 진동시키고 열국을 놀라게 하고 사로잡힌 자를 붙들고 끝까지 놓아주지 않던 그 압제자가 바로 여기에 와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냐? 가장 추락한 인생이 되었구나. 여러분 4절의 내용은 뭐냐면 인간은 절대로 자기를 높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격화의 종말은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자꾸만 높아지려고 그럽니다. 박수를 치고 존경을 하고 잘 나가고 자기한테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고 이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우쭐해져 가지고 아부꾼도 생기고 아천분들이 주변에서 덜 끓으면서 그것을 즐기면서 기뻐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됩니다. 큰일 납니다, 여러분. 그렇게 갔다가는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높아지려고 애썼던 만큼 더 밑으로 더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안 됩니다. 자기를 높여서는 안 됩니다. 홀이라도 그런 마음이 들 때 정신 차리셔야 됩니다. 옆에서 누군가 아침하는 사람 있을 때 그들을 가까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4절을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만이 전능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을 찬양하셔야 됩니다. 2절은 뭐였습니까? 이 절은 내게 주시는 평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평화, 갑자기 찾아온 이 평화, 이 평화를 내가 누리도다. 하나님의 평화. 3절은 뭐였습니까, 여러분? 인간은 유한하다. 인간은 다 영웅도 지옥의 나라가서 영벌을 받는 어쩔 수 없는 불쌍한 인생이다. 인간은 유한하다. 4절은 뭐였습니까? 그 유한한 인생이 겸손해야 된다. 스스로 자기를 높여서는 안 된다. 스스로 신격화하려고 하는 그런 작은 몸짓도 조심해야 된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살아야 된다. 여러분의 노래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회복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핵심 정리
- 하나님은 모든 열방을 심판하실 권능을 가지신 절대자이시다.
- 세상 나라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
- 하나님의 긍휼로 우리는 다시 선택받아 회복의 기회를 얻는다.
- 우리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나눔 질문
- 하나님이 모든 열방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 세상 나라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선택하신다는 말씀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우리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세상의 권력과 강대국에 대한 의존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겠습니다.
기도 · 묵상
하나님, 저희가 세상의 유한함을 깨닫고 당신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에 회복과 안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