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의 행동과 말을 결정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오늘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증인, 자라나다"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은 생각과 감정이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 15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 마태복음 15:11 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고린도전서 3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잠언 4:23 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17:22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고린도전서 1:24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고린도전서 3:1-2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잠언 4 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2.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3.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5.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10.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11. 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12.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14.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15.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16.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17.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 잠언 17 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2.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으리라 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4. 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7. 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8.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 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0.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11.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 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13.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14.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15.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라 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18. 지혜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19.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 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23.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24.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6.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 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 입에서 나오는 것의 중요성
- 영적 전쟁과 마음의 다스림
- 하나님의 말씀의 필요성
- 상처와 아픔의 처리
- 증인의 삶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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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신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주장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시며, 이는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증인, 자라나다." "증인, 자라나다." 이것은 "증인"이라는 주제로 하는 네 번째 마지막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아니하고,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아멘.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17절부터 20절까지 이 말씀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셨습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배에 들어가서 뒤로 나가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거,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러나 씻지 아니한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멘. 여러분, 내용은 매우 간단합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입니다. 우리는 이 음식을 소화하여 우리 몸의 영양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버립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매우 명확합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육체의 연약함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셨고, 그 음식은 우리의 몸을 세우고, 남은 것은 버려지는 폐기물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말씀하시며, 입에서 나오는 것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규정하십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마음에 담겨 있고, 결국 그것은 몸을 통해 드러나야 하며, 그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생각이나 감정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남아 있으며, 결국 이 마음에 자리 잡은 생각과 감정은 반드시 몸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과 말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시고, 그들에게 단 하나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땅과 세상을 정복하고, 살아 있는 생물들을 다스리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음식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과 생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곧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몸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결국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예로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거, 비방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며, 궁극적으로 이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제 잠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비록 그들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즉시 그것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알까요? 그 미운 감정이 우리의 마음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미움과 미운 생각으로 인해 우리의 행동, 눈빛, 목소리의 톤이 불가피하게 상대방에게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은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 반드시 몸 밖으로 드러나야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들도 즉시 알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목소리 톤, 눈빛,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 모두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애정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아, 맞습니다. 정말로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마음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약 우리가 마음속에서 영적 전쟁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모든 일상은 승리로 가득 차고 기쁨으로 넘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에서 지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도 결국 패배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과 말은 결국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그곳에 있을 때, 우리는 이 말씀으로 다스리고 정복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을 해결할 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때,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 어떤 종류의 영적 전쟁이 우리의 마음을 공격할지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는 악한 영들이 어떻게 우리를 속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우는 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믿음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너의 마음을 지키라." 네. 너의 생명과 마음을 지키라. 이것이 성경이 끊임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순서는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주장하거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성경을 거꾸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 저는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밭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서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증언하고 성령의 인도를 증언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제, 지난 주의 메시지를 기억하십니까? 지난 주에는 등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네. 빛이 비추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증인, 빛을 비추라"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며, 우리의 구세주로서 믿는 자들의 삶에 분명히 비추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의 죄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육체적 연약함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거짓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죽을 운명이었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더욱이, 남은 날 동안 우리가 이 빛을 받고 예수님을 환영하며 그분을 구세주로 믿고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예수님의 제자의 권세,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빛은 이미 믿는 자들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이 계속해서 빛나야 하며, 내가 있는 곳과 내가 거하는 곳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태양이라면, 예수님은 등불로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비추셨습니다. 이제 그 등불을 우리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고, 우리의 삶을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거하는 방의 한 구석에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방의 중앙에 두어야 할까요? 이제, 우리는 그것을 등불대 위에 두어야 할지, 아니면 등불대 아래에 두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가 빛을 중앙에 두어야 하며, 우리가 빛을 높이 들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며 모든 것의 중심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그것을 등불대 아래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단지 반쯤만 비추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높은 곳에 두라는 메시지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들을 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고, 다시 들을 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부담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빛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무시하고, 빛에서 등을 돌린다면, 그럼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그들이 어둠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때때로 다양한 상황과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조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변명을 하려고 할 수 있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들이 어둠에 남아 있기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은 어둠을 사랑하는 자로 인도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유와 변명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도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안에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빛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어둠에 거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저는 이것을 다시 한 번 선언합니다. 여러분이 부름받았고 주님을 믿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빛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그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 그 빛을 따르고 등불로 행동하는 구체적인 예를 생각해 보았을 때, 저는 우리의 선교사들, 선교사 윤태와 선교사 김정현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비행기 때문에 일찍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의 사례는 완벽한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완벽한 시기에 보내주셨다고 느낍니다. 저는 선교사들과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오랫동안 사역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온갖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의 정직함과 성실함 때문에 때때로 그들은 이용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거짓으로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어둠에 남아 있고 싶었던 유혹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냥 지나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들은 그런 유혹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하거나 타협하고 싶었던 매 순간마다, 그들은 그들의 가슴에 등불을 높이 들고 그 자리에서 서 있었습니다. 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은 그 기준을 높이 세웠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쫓겨나고, 거짓 소문에 둘러싸이고, 그 마을에서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저는 그들이 금요일에 올 때 이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금요일 영상을 보면 그들은 그들의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높은 등불을 들고 예수님을 따르고 높은 기준을 세운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자신의 불만이나 불만족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들이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내가 높은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서 불평할 것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려움이 포함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이 부르신 대로 등불을 들고 물 위를 걷는 여정을 걸었습니다.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들이 심은 믿음의 열매와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의 많은 아이들이 기도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울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기도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기도할 파트너를 보내주기를 3년 넘게 기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들은 달라스 중앙 감리교회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기도한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우리는 일자리가 없다." "우리 가족이 힘들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 요청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기도할 파트너를 보내주세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정확한 순간에 우리는 우연히 만났고,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 보내주셔서 여기저기서 빛을 비추고 증인이 되는 역할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빛을 비추고 높은 등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교사와 함께, 우리도 이 등불을 높이 들고 우리의 삶에서, 달라스 중앙 감리교회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다양한 선교지에서 그들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네. 오늘은 우리의 증인 시리즈의 마지막 세션입니다. 저는 고린도전서 3장을 바탕으로 "증인이 되라"라는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를 나누기 전에, 오늘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자 합니다. 음.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제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대학 입시를 두 번째, 세 번째 준비하면서 "나는 인생의 실패자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저는 낭비된 시간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전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의 대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미친 듯이 놀고 싶어 하며, 이전에 놀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놀아댑니다. 매주 소개팅을 하고, 매주 수련회를 가고... 여러분이 저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네. 그들은 매주 소개팅을 하고, 그룹 데이트를 하고, 학과 outings을 하며 계속 놀고 있습니다. 남학생들은 1년 내내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 그냥 놀고 있습니다. 네. 그들은 제대하고 나서야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무엇을 했냐고요? 저는 이미 성장한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이 노는 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는 신입생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제 학업에 전념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떻게 했냐고요? 저는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네. 교수님이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받을 때, 저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두세 개의 질문을 만들어서 교수님의 호의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저에게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또한 중고등학교 때 하지 않았던 예습과 복습을 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 성적은 좋았습니다. 네, 네. 네. 예습과 복습을 했기 때문에 수업 중에 대답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왜 제가 고등학교 때 그걸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저는 또한 마지막 질문을 하고 수업 중에 활발한 토론을 즐겼습니다. 저는 원래 매우 소극적인 A형이었지만, 그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논쟁을 좋아했고, 심지어 제 논리로 다른 사람에게 도전하는 것도 즐겼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너무 흥미로웠고, 저는 정말 많은 책을 읽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여러분, 이 삶이 계속되면서 제 성적만 향상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네. 겸손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만함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오만함이 자라면서, 저는 그것이 오만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 학업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의 틀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완벽하게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 오만함을 깨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지식의 한계를 보게 하셨습니다. 제 경험의 한계를 보게 하셨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세계관과 철학이 그저 쓸모없는 헛소리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바울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제가 한때 소중히 여겼던 모든 가치를 쓰레기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하셨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여전히 대화를 즐기며 저는 찰스턴의 한국 교회에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민자 교회를 섬기는 것은 이민자 성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민자 교회에서는, 특히 우리가 자체 건물이 없을 때, 우리는 미국 교회에서 공간을 빌려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소망은 따뜻한 집에서 만든 한국 점심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네. 그들은 냄새가 난다고 하여 주방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결국 그들은 숨겨서 먹거나 그냥 굶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세대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겪었던 일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미국인들과 대면하며, 심지어 갈등이 생겨도 언어 장벽 때문에 그들의 불만이나 불공정한 대우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해도 반응할 수 없었고, 그래서 교회에 와서 상처받은 마음으로 무엇을 합니까? 싸웁니다. 네. 그러나 저는 그들을 이해합니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모국어로 모든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화가 나면, 그들은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교회에서 한국어로 싸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과 이야기하면서, 저는 그들이 얼마나 억압받고 상처받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민자 교회 성도들의 아픔과 상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제 사역이라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제 대학 시절을 통해 제가 대화와 논쟁을 즐기도록 하셨지만, 저는 그 에너지를 성도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로 돌렸습니다. 그들의 모든 쓴맛이 쏟아질 때까지 듣는 것이 이민자 사역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그 경험을 사역에 사용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성도들 간의 분쟁과 논쟁을 중재하게 되었습니다. 논쟁이 아니더라도, 저는 그들이 설득이 필요한 상황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민자 교회에서 전형적인 긴 회의는 제가 부담 없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부분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후, 제 병이 발견되고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더 이상 논쟁을 즐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사역 철학의 핵심 부분은 이렇습니다. 저는 주변 성도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포용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이전 교회에서부터 지금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저는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목사가 제공해야 할 사역이라고 믿었습니다. 몇 달 전,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그때 교회에 없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과 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한 달이 지났고, 지난 한 달 동안 교회 일을 따라잡고 성도들과 교회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제 몸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몸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찬양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때,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 시간, 네 시간, 심지어 열 시간 동안 지속되더라도 전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전처럼 했던 일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역과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난을 듣고 나누는 것은 제 몸에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제 등은 아프고 뻣뻣해졌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언가가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상처와 아픔은 누구의 몸에도 오래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목사로서 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끌어내어 기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 달과 지난 한 달 동안 느낀 것은 달랐습니다. 상처와 아픔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라도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거나 다른 사람에게 쏟아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 상처와 아픔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로 드려져야 하며, 그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여러분의 상처를 제 몸에 저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몸에 제 상처를 저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 상처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끌어내어 기도로 태워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몸에 저장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저는 이것이 목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잠언 4장 23절 "무엇보다도 너의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기 때문이다." 마음은 생명을 저장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너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저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 심지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생명이 저장되어야 할 곳에 두면, 당신의 생명은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생명의 그릇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하며, 다른 모든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태워드려야 합니다. 잠언 17장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약과 같고, 상한 심령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히브리어로 마음은 '레브'라고 하며, 이는 내면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내면의 사람이 바로 마음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우리의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가입니다. 내면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영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루아흐'로, 이는 숨, 바람, 공기를 의미하며, 우리는 주로 성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잠언 17장 22절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만약 한 사람의 마음, 즉 내면의 존재가 기쁘다면, 그것은 몸에 좋습니다. 만약 내면의 존재의 숨이 끊어진다면, 즉 성령의 인도가 끊어진다면, 몸의 뼈, 즉 힘이 쇠퇴할 것입니다. 과거에,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통해 단순히 제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지 나쁜 의도를 품지 않거나 불경건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 저는 진정한 육체적 힘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몸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은 내 마음 속의 영혼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내면의 존재의 숨이 끊어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걱정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또는 세속적이거나 인간적인 것들을 내면에 저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그는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고 다른 것들을 그 안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사람이 걱정 없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쉽게 걱정을 떨쳐낼 수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전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 "하나님이 주신 슬픔은 회개에 이르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며, 후회할 것이 없으나, 세상의 슬픔은 죽음에 이르게 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슬픔과 세상의 슬픔을 구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슬픔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걱정하고, 그 걱정이 회개로 이어집니다. "왜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왜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걱정하면서, "아, 내가 주님께 고백해야 할 것이 있구나."라고 깨닫고 구원의 길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왜 그는 그렇게 행동할까?" 우리는 이런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것들로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숨을 멈추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질병을 깨닫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바꾸게 됩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그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적 고통, 고난, 시련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영적 치유의 과정을 주신다면, 우리의 생활 방식과 식습관도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체적 질병이 있는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죄인임을 알면서도 종종 자신의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우 느리게 변화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마음에 기쁨을 가져와야 하지만, 그들은 이를 잘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뼈를 마르게 하는 영혼의 슬픔과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 슬픔을 구별하는 데 서툴고, 이 분별에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는 데 부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럴까요? 맞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그것을 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10년, 20년 동안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살다가 급하게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이제 영적 유아입니다. 여러분은 갑자기 깨달았다고 해서 성숙한 신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유아로서 성장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혜"라는 단어가 고린도전서에서 26번 등장하며, 그 중 대부분이 1장, 2장, 3장에 나타납니다. 이제 바울이 말하는 "지혜"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그 삶을 우리 안에 구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는 이를 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 자체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지도 않으며, 단순히 입술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과 논쟁하셨습니까? 그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때때로 율법주의자들을 공개적으로 책망하셨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그것을 설명하시면서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비록 그가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그는 그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그들이 깨닫도록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아픔을 아셨습니다. 그는 병자의 상황과 형편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형편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들에게 선포한 말씀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일어나 걸어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나를 따르라." 그것이 전부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상황을 아셨지만, 그는 결코 "나는 너를 이해한다." "힘들지?" "속상하지?" "내가 해결해 줄게." "내가 그들을 혼내줄게." "내가 그들에게 보복해 줄게."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는 너의 아픈 마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털어내고 그를 따르며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붙잡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눈에 집중하고, 그들의 평가를 걱정합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삶이 그렇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불리고 싶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들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비록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사람들의 걱정, 관심, 불만, 후회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많이 붙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했고, 이민자 사역에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가져가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도해야 했지만, 목사로서 제 기도 요청 외에는 모든 것을 제 안에 담고 혼자 고통받았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주님께 가져가고 온전히 그분께 맡기는 데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오, 나는 그 비밀을 들었으니, 그것을 내 마음에 간직하겠다." 네. 그러나 그 상처나 아픔이 있다면, 저도 그것을 제 안에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온전히 드리고, 오늘 묵상한 이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장부터 3장까지 나타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갈등입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나는 개바에게 속하였다." 이것은 무엇에 관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가 권위자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누가 더 마음에 드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권위 있는 인물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임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 상황을 다룹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말할 때, 너희가 영에 속한 자로 말할 수 없고, 세상에 속한 자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 말할 수밖에 없음을 내가 알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젖을 주고 단단한 음식을 주지 아니한 것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라. 지금도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도다." 요약하자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여전히 세속적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보십시오, 고린도 교회—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성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들을 보았을 때, 그는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현대 교회의 문제와 유사합니다. 첫째, 미성숙한 아이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매우 관여했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과거의 이민자 교회에서는—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집에 몇 개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어보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모르는지를 살펴보면—우리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과거에 힘든 시절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나누었지만, 이제 우리가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자 우리는 거리를 두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네, 우리는 적절한 거리에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이는 이민자 공동체가 지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지혜를 나누는 대화가 증가해야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으로 채워지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신앙의 유아적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따릅니다. "나는 바울을 따른다." "나는 아볼로를 따른다." "나는 개바를 따른다."—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네. 이는 내가 스스로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 또는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한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습관입니다. 다시 말해, 고린도 교회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만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나누고 선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교회 안에서 매우 만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삶으로 자신을 채우는 대신, 자신의 관심사로만 자신을 채우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 고린도 교회에 세 번째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이니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건물이라." 아멘.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밭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건물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가 드려지는 장소로 변화해야 합니다. 네. 우리는 모두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없으면, 그들은 단지 사람들의 생각, 감정, 말과 행동을 담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만약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즉시 해결하는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믿음을 얻은 후 우리가 직면하는 첫 번째 문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후, 우리가 직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우리가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것인가, 성장할 것인가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잠언 4장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17장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쁘게 해야 하며, 내면의 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내면의 숨을 끊어버릴 수 있는 걱정과 염려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5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마음에 저장된 것을 끊임없이 점검하여 우리의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린아이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관계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우선시하거나, 인간주의, 합리주의, 도덕주의, 윤리를 강조하여 사람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을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린아이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인간 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싶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경을 얻고 싶습니까? 여러분은 분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마무리하기 전에 여러분 앞에서 저의 다짐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도 예수님의 몸인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로서, 이제 저는 여러분 모두 앞에서 결단과 헌신을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를 듣겠습니다. 여러분의 걱정과 염려를 듣겠습니다.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듣겠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쏟겠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는 함께 그분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쏟아내고, 우리의 마음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여러분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분의 상처와 아픔을 듣겠지만, 제가 듣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모든 상처와 아픔을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붙잡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더 이상 그것을 붙잡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모임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 모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만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만 간결하게 나누고 전달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이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데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며, 제한된 발언과 의견 공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의견만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며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목사, 친절한 장로, 합리적인 리더로 불리는 것보다, 신실한 믿는 자, 순수하고 거룩한 사람, 그리고 믿음의 온전한 분량에 성장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위치에 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내년의 비전을 설정하면서, 우리는 모든 예배의 회복을 위한 말씀 사역과 기도 사역에 구체적으로 집중할 것입니다. 봉사 사역은 은혜를 나누는 장소로만 진행될 것입니다. 또한, 소그룹 모임에서는 가능하다면 불만, 불평, 아픔, 고통의 이야기를 기도로 태워드리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내면의 숨과 마음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내면에서 변화시키는 것을 막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부탁드립니다. 네. 만약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불만이나 불편함을 느낀다면, 차라리 이 제단에 오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예배의 장소에 와서, 주님 앞에 울고 불며 모든 것을 쏟아내고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는 이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셔서 잊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달라스 중앙 감리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등불이 되는 교회, 증인이 되는 교회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친 파도와 바람이 있더라도, 우리는 주님께서 세우신 성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찾고 따르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주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걸음을 내딛게 하신 것에 대해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빛을 받고 스스로 등불이 되게 하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등불을 통해 이웃과 자신을 비추라고 명령하십니다. 믿음의 유아에서 성숙한 믿음의 어른으로 성장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제 이 명령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점검하며, 우리가 품어서는 안 될 것들을 내려놓고, 모든 요청을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모시기 위해 선택된 성전으로서, 진실하고 고귀하며 바르고 순수한 것들로 교회와 우리의 몸을 가득 채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장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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