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쿠스 장로교회 Amicus Church

[2026.09.20] 주일예배 "돌 던질 만큼" 누가복음 22장 35-46절

아미쿠스 장로교회_Amicus Church · 2026-09-21
설교큐티 — 주일 설교로 하는 6일 QT
본문
누가복음 22:35-46

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설교자
아미쿠스 장로교회_Amicus Church
날짜
2026-09-21
설교 길이
122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오늘 예배에서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며, 어려운 순간에 기도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교회의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서로를 가족처럼 챙기고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때 회복과 은혜가 임할 것임을 믿고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유아 세례와 입교, 세례식에 대한 안내와 목회자를 위한 중보기도 사역에 참여할 것을 권장하며,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동역하는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기도는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이다

  1. 기도의 중요성
  2. 기도의 힘
  3. 기도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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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QT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 말씀누가복음 22장 46절 -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1
월요일
기도의 중요성
오늘의 본문누가복음 22장 35-36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기도는 우리의 힘이 되어줍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내가 기도하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하루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보자.
기도하나님, 기도의 힘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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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스크립트

할렐루야. >> 아멘. 아, 감사합니다. 오늘 특별히 하나님의 예배 가운데 나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또 축복합니다. 이 시간은 좀 자리에서 일어나서 좌우 합시로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음악] 오늘 이 시간 계신 자리에서 [음악] 오늘 드릴 예배를 위해 함께 좀 한 마음 모아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공간 가운데 우리가 더 거룩히 구분하여 거룩한 [음악] 시간 가운데 구분하여 나온 이 예배 속에 참 많은 공격들이 있습니다. 우리 예배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음악]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이 예배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나의 심령 가운데 옆에 있는 [음악] 우리 아미쿠스 지체의 심령 가운데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예배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통성으로 예배를 위해 기도하며 [음악]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구합니다. 저 예배 가운데 [음악] 성령 하나님의 이르심 가운데 선임자하여 주시옵소서. 성 [음악] 가운데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 주간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다시금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독대할 수 있는 이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그 매마른 땅과 같은 심령 가운데 담비와 같은 생명의 은혜를 허락하실 그 예배를 인도하실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 나아가고 그 성령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이 귀한 예배 [음악]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예배 시종을 주님 앞에 맡겨 드리오며 감사드리며의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찬양합시다. 빈들의 마른풀 빈들의 [노래] 마른풀이 시들은 나의 영혼 [노래] 주님의 [음악] 허락한 성령 [노래] 간절히 [음악] 기다리네. 반가운 빛소리 들려. 반가운 [음악] 빛소리 [노래] 들려 산천히 [노래] 춤을 [음악] 주네. 범리는 [노래] 성령 [음악] 내게도 [노래] 주옵소서. 아무로 [음악] 땅에 잠비를 [음악] 내리시 [노래] [음악] 성령의 담비를 부어 새 [음악][노래] 생명 주옵소서. 절따라 우로를 내리실 주님 절따라 우로를 [음악] [노래] 내려 천천히 송하니 [음악] 갈급한 내 심령 갈급한 [노래]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소서. 참되신 사랑이 참되신 [음악] 주 사랑의 [노래] 어 이길 수 있어오라. [음악] 오늘의 흡족한 오늘의 흡족한 [음악]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음악] [노래] 아무런 내 마른 [음악] 땅에 잠비를 내리시네. [음악] 성령의 잠비를 [노래] [음악] 세세도 피올려 가브라함의 마리 가의 [음악] 마을 주님이 시간 도어 주시옵소서 >> 성령의 단일 부어 새명주 주옵소서. [음악] 하늘소서. 하늘 [음악] 하소서. 주의 뜻 이루에 [음악] 성령님 보소서. 땅의여 주님 [음악] 하소서. 하늘여소서. 주의 [음악] 뜻 이루네 성령님서 [노래] [음악] 주님이 [음악] 시간 우리의함을 누르소서. 하늘 여소서 주의 [음악] 뜻 이루에 성령님 [음악] 보소서 이 땅의 영원히 [음악][노래] 여성서에 이름 성령이 [음악] 오소서 [음악] >> 우리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구하며 [음악] 하늘여소서 주의 이루게 성령이 오소서 [음악] 땅에 성령님 오소서 성령님 [음악][노래] 오소서의 [음악] 영원히 시간 우리를 인도하시고 일하실 성령 하나님께 모든 영광의 박수 올려 드립시다. [음악] 할렐루야. 아멘. 계신 자리에 함께 앉으셔서 계속해서 찬양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오늘이 예배가 우리의 그 작은 신음의 목소리까지 들으시고 은밀히 보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음악][노래] 나아가는 예배 시간 되기 소망합니다. [음악] 너 예수께 [노래] 조용히 나가 [노래] 내 모든 집 [노래] 내려놓고 주 [음악][노래] 십자가 사랑을 믿어 [노래][음악] 죄사함을 [노래][음악] 너 받으라. 주 예수의 [음악] 은혜를 주 예수의 은혜를 [노래][음악] 임어 내 [노래] 슬픔이 [음악] 없어지리. [노래] >> [음악] >> 내 이웃을 늘 사랑하며 [음악] [노래] 너 받은 것 거져 [음악][노래] 주라. 주 예수께 나가. 주 [음악] 예수께 조용히 [노래] 나가 [음악] 내 [노래] 마음을 쏟아노라. [음악] [노래] >> [음악] >> 늘 미리 보시는 [음악][노래] 주님 [음악] 그 은혜를 베푸시리 [음악] [음악] 삼전의 고백으로 주의 예수님 [음악] 친구로 [음악][노래] 삼아 은혜 [음악] 옆에 오시어라. [노래] 그 영원한 생명 [음악] 그 영원한 생명 [음악][노래] 생에 [음악] 내 [노래] 마른도 주리여 [음악] 주님과 사귀어 살며 오 주님과 자기여 [음악] 살며 새 생명이 없리라. [음악] [음악] 주 예수를 찬리하네. [음악] 참이 [음악] 주님 [음악] 앞에 나아갑시다. 주 예수께 조용이라다. [음악] 내 마음을 [음악] 전하고 그 [음악] 오시는 주님이 시간 [음악] 큰 은혜를 더하실 주님 앞에 다시 한번 찬양합시다. 주 [음악] 예수께 조용히다. [음악] [음악] 내 마음을 쏟아라. [음악] 미리 오시는 [음악] 주님 그 은혜를 [음악] 베푸시네. >> [음악] >> 주 예수께 [노래] 조용히 나가 주 예수께 [음악] 조용히 [노래] 나가 내 [노래] 마음을 [음악] 쏟아노라. 늘 [노래] 미리 보시는 [음악][노래] 주님 그 은혜를 [음악] [노래] 베푸시리. 이 시간 고백한 이 가사와 같이 우리의 그 작은 신음소리 가운데 반응하시 들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 앞에 한번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묶여두고 있지만 고백되어지지 않는 회개하고 있지 못한 죄가 있으십니까? 삶에 해결되지 않는 관계의 문제, 물질의 문제, 육신의 문제 이 모든 것 하나님 앞에 구하실 때 고하실 때 하나님께서 그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하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일하실 주님 앞에 함께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음악]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주시옵 [음악] [음악] [음악] 하나님 지켜 주시옵소서 시 아버지 복되어 복하여 주시고 오늘 주님 승리하여 [음악] 주시옵소서 >> [음악] >> 를 [음악] [음악] >> [음악] [음악] 예수는 내 힘이요 [노래][음악] 나의 [노래] 기쁨 내 [음악] 찬소만 주 [음악] 이름의 [노래] 생명이 내 삶의 이라. [음악] [노래] 다시 한번 예수는 내 힘이요. [음악] 예수는 내 [노래] 힘이요. 나의 [음악][노래] 기쁨 내소만 [음악] 그 이름의 [노래][음악] 생명이 내 삶의 이유라 [노래] [음악] 오직 주만 오직 주만 따라갑니다. >> [음악][노래] >> 오직 주만 높으소서다. [음악] 주님 함께 높일까요? 평생 [음악] 내 평생에 [노래] [음악] 그 이름을 [노래] 그의 성하시는 [음악] 세상은 [노래] 노래합니다. 그 [음악] 이름에 [노래] [음악] 그신 능력 [노래] 영원한 [음악] 생명이 [노래] 내 [음악] 삶의 이라. >> [음악] >> 저희 믿음의 선포로 나아갑시다. 내가 사아주구나. [음악] 내가 [음악] 사랑 죽으라. 그 이름을 위하여 [음악] 모든 것 다으리를 [노래][음악] 받으소서. [음악] 내가 사아 내가 사 [음악] 주어다. 그 이름을 [음악] 위하여 모든 것 하리니 [음악] [노래] 나를 받으소서. [음악] 오직 주만 오직 주만 사랑하 [음악] >> 주님이 시간 주님만 높임 받아 주시옵소서 주만 높임 받으세 [음악] [음악] 그 이름을 [음악] 그의 성하시니 [음악] 세상에 합니다. [음악] 주 이름에 [음악] 그신 능들여 [음악] 영원한 생명이 [음악] 오늘이 예배에 이웃되신 주님 앞에 주손피 [음악] 올려 내 평생에 내 평생의 [음악] 그 이름을 >> [음악] >> 그의 성능하신 세상에 노래를합니다. [음악] 주님의 [음악] 은혜 [음악] 능력 영원한 생명이 [음악] 내 삶의 이라. >> [음악] >> 이 시간 다시 한번 더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그 생명 허락하시고 이유 되시는 그 주님이 시간 만나뵙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 찾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무너진 우리의 삶이 넘어진 우리의 삶이 다시 한번 더 그 생명 안에 거하고 회복되는 이 예배 시간 [음악] 될 수 있도록 주님 일하여 주시옵소서. 이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음악] [음악] >> [음악] >> 좋으신 하나님 우리의 힘되시고 우리의 기쁨 참 소망 생명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이름의 크신 능력 그 영원한 생명이 우리 삶의 이유라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처럼 생명되신 주님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생명이 있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하신 주님과의 연합이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져 있어서 생명이 흘러가는 그 끝에 열매가 맺고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나는 은혜의 체험들이 우리 안에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맺쳐는 열매들로 주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이 저절로 드러나고 세상을 향해 예수 믿으라고 외치지 않아도 그들이 그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되신 주님께 나아오는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준비하라 하신 주님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함께하지 준비하고 또 함께하며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은혜로 두려움과 조바심으로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참 자유와 평강 누릴 수 있기 원합니다. 더 좋은 편을 택하여 뺏기지 않으리라 고백했던 마리아처럼 무너지지 않고 영원할 것에 우리의 시선을 두고 내 열심과 노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형통을 경험하고 소유하기 원합니다. 내일부터 교단 일정으로 또 오병이어라는 이름으로 주신 은혜를 나누기 위해 독일과 한국 여행길에 오르시는 주의 종을 주님 손에 맡깁니다. 계획되어진 여덟 번의 집회와 컨퍼런스, 또 많은 목회자들을 만나시는 시간들 가운데 지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위로와 회복의 은혜가 말씀을 전하시는 분에게나 그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동역하시는 주의 종들과 간사님들 또 이 예배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지체들을 기억하시고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며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도록 때마다 시험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말씀을 듣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닫고 우리의 시선을 빼앗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혹 그동안 잘못 본 것이 있다면 잘 듣고 수정하는 시간 되기 [음악] 원합니다. 성령의 통치 안에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이 시간이 우리를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시간 되게 하시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시간 되기 원합니다. 드려지는 이 예배를 통해 오직 주님만 높임 받으시는 시간 되기 원하오며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음악] 할렐루야. 우리의 기도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보면 이러한 문구가 있습니다. 차량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은 차량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바라기는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가까이 있는 교회에 꼭 도움을 요청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방법이 생기고 힘을 얻게 되실 겁니다. 서로 힘이 되겠다라고 하는 그러한 믿음의 고백을 우리가 이 시간 인사를 하면서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는데요. 오늘은 이렇게 서로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당신 가까이에 있습니다라고 인사해 보겠습니다. 제가 당신 가까이 있습니다. 힘들고 [음악] 외로운 이민생활, 오늘 [노래] 인사한 성도님들. 그냥 누군가 인사시켜서 하는 인사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정말 내 옆에 있는 성도님에게 가족처럼 내가 친구가 되어 줘야 되겠다. 가족이 되어 줘야 되겠다. 라고 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돌보는 우리 아미쿠스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 방문하신 귀한 성도님 가정 계셔서 잠시 축복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는데요. 이름 호명될 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에나 성도님의 지인 되시는 김지성 배진 성도님 오늘 저희 교회 방문해 주셨습니다. 저기 뒷자리에 앉아 계시는데요. 잠시 그 자리에서 주셨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어서 [음악] 우리 교회 방문하신 우리 교회 등록한 세 가족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새 가족은 홍순준 성도님인데요. 홍순준 성도님은 지금 해군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라오야 바닷가나 어느 바닷가를 갈 때마다 홍순준 성도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홍순준 성도님 여기 가운데 자리에 앉아 계신데요. 네. 홍순 성도님에게 꽃다발 전달될 때 큰 박수와 환호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음악]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음악] 오늘 우리 교회 새 가족 되신 홍순준 성도님과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 방문해 주신 김지성 성도님의 가정을 향하여 거룩한 두 손 들고 다 함께 축복의 찬양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하나님의 [노래][음악] 귀한 자녀 환영합니다. [노래] 예수님의 [음악]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노래] 우리 [음악] 주 안에 친구되어 [노래] 복음으로 [음악] 살아가며 당신에 [음악][노래] 예수님의 사랑이 넘쳐. 서로를 축복하며 다시 한번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노래][음악] 귀한 자녀 찬양합니다. [음악] 예수님의 [노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음악] 우리 주 안에 친구되어 복음으로 [음악][노래] 사랑하며 당신 [노래] 예수님의 사랑이 [음악] 넘쳐 우리 주 안에 우리 주 안에 친구되어 복음으로 [음악][노래] 살아나가며 당신은 예수님을 >> [노래] >> 사랑이 온 [음악] 당신은 예수님의 [음악] 사랑이 멈춰 드리기 >> 아멘. 우리 주님의 사랑의 성도들 삶 가운데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일까지 기도의 벽 활동이 진행되어집니다. 교회 오고 가실 때 외벽에 붙어 있는 교육부 자녀들의 기도 제목 확인해 주시고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꼭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왜냐면 우리 자녀 세대의 신앙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집에 가시기 전에 꼭 외벽에 들리셔서 손 얹고 기도해 주시고 가시기를 다시 한번 권면드립니다. 10월 25일에 있을 유아 세례와 입교 그리고 세례식에 대한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아세례는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기 어려운 만 2세까지의 자녀를 부모님의 신앙으로 믿음으로 함께 올려 드리고 믿음 안에서 잘 자라도록 서약하는 예식입니다. 그렇게 유아 세례를 받은 자녀가 성장해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그러한 시간이 되어지면 그때 하게 되어지는 예식이 바로 입교인데요. 이 입교는 세례만큼이나 굉장히 중요한 예식입니다. 혹 유아 세례만 받고 아직 입교를 하지 않으신 분이 계신다라고 한다면 이번에 입교 신청하셔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고백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다 함께 고백할 수 있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그 믿음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고백하는 교회의 중요한 예식입니다. 이렇게 입교와 그리고 세례를 받으셔야 성찬에 참여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이번에 진행되어질 유아세례와 입교 세례 신청은 10월 4일까지 받도록 하겠고요. 그리고 대상자 교육은 10월 11일과 18일 이 두 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주보를 참고해 주시기 바라고 궁금한 사항은 저에게 문의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목회자를 위한 중보기도 이른바 파스토레이어 파트너라고 하는 PPP 사역에 함께하실 기도 파트너를 모시고자 합니다. 목회자의 강단 사역에 있어서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성도님들이 함께 해 주시는 뜨거운 기도입니다. 목회자를 위해 함께 강단 기도로 동역하며 든든한 중보 기도자로 섬겨 주실 분들은 로비와 헌금함 옆에 이 PPP 중보기도 팀 사역 신청서가 비치되어 있으니 작성하시고 저에게 제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PPP 사역에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예배에 참석하시는 영어권 성도님들과 방문자분들을 위하여 실시간 영어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저 QR코드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스캔해 주시면 설교 말씀을 실시간으로 영어 자막으로 확인해 보실 수가 있습니다. 주변에 영어 자막에 필요하신 성도님이 계시다면 이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쉬운 소식 하나 전달드리면요.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아름다운 헌신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렸던 이주 권사님과 권사님의 자녀 고안성 학생이 오늘 예배를 끝으로 텍사스로 이주하게 되십니다. 새로운 복음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하며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어질 수 있도록 오늘 예배 끝나고 나서 꼭 인사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저희 단임 목사님은 교단 총회에 참석차 독일에 다녀오시게 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정으로 9월 30일부터 10월 중순까지 오병이어 프로젝트 사역을 위하여 한국에 방문하게 되십니다. 한국에 가셔서 우리 성도님들이 소중하게 헌금해 주신 그 헌금을 개척 교회에 전달해 주고 또 목회자들에게 격려하며 섬기는 사역을 하고 오실 텐데요. 우리 목사님이 다녀오시는 그 모든 걸음마다 우리 성도님들이 보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 목회자분들에게 든든한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독일에서 열리는 그 모든 총회와 그리고 다시 미국 땅에 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까지 안전히 다녀오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로 중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광고는 주보를 참고해 주시기 바라고요. 오늘 간식은 이관열 박은영 성도님 가정에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육부 간식은 박종은 남지원 성도님 가정에서 준비해 주셨는데 감사의로 다 함께 감사의 박수 한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 받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중영 성도님 앞으로 나오셔서 성경 봉독 인도해 주시겠습니다. 다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22장 35절에서 46절입니다. 한 절씩 교독하시고 마지막 절은 합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료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아버지께서 러시고 아버지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아멘. 우리 준비하신 귀한 예물 찬송과 함께 올려 드리겠습니다. [음악] [음악] 함께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나 [노래][음악]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노래] [음악] 새롭게 하소서. 새부대가 [노래] [음악]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음악] 빛 비추게 [노래] 하소서. 내 것 내가 [음악][노래] 원하는 한 가지 [노래] [음악]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노래] 내가 원는 한 [노래] 가지 주님의 [음악]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노래] 내가 원하는 [노래] 한 가지 [음악] 한가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노래][음악]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 내가 [음악] 원하는 [노래] 주님의 기쁨이 >> [음악] >> 되는 것.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먼저 고백합니다. 귀한 마음을 담아 또 중심을 담아 생명을 담아 11조로 또 주일의 감사 헌금으로 특정의 헌금과 또한 선교의 헌금으로 제목을 주 앞에 올려 드립니다. 원하는 그 마음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온전히 사용하여 주셔서 [음악] 하나님의 귀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곳에 쓰임받게 하여 주시고 들여진 손길 위에 함께하시고 그 심령과 가정과 또한 사업체 일 가운데 함께하셔서 이 땅에서 줄 수 없는 또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채우시고 또 이 땅에서 계산할 수 없는 30배 60배 100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더는 심과 또한 그 중심과 손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귀한 마음을 담아 찬양을 드리고 또 예물을 드리고 헌금을 드린 후 이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길 원합니다. 우리 시선이 오직 그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표정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고 오직 그 표정 속에서 지혜의 분별을 가져 이 땅 가운데 특별히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등불되게 하여 주시고 온전한 기준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소리 꽤 그럴싸한 소리를 끊어내고 세밀한 음성 오직 하나님의 음성 가운데 귀 기울이며 소중히 여기는 말씀의 시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 하나님께서 주명하시며 가르치시며 인도하여 주실 줄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 아멘. 우리 좌우 앞뒤에 계신 분과 한번 인사할까요? 오늘도 옆에 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우리 한 번만 더 유사하시죠. 당시 때문에 [음악] 참 행복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네. 오늘따라 많이 웃으시네요. 주어진 일이 있으신가요? 귀한 얼굴들을 서로 바라보실 때마다 정말 은혜가 더해지시고 여러분의 심령에 좀 행복한 마음이 가득 차면 좋겠습니다. **누가복음 22장의 말씀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음성을 또 그 뜻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돌 던질 만큼입니다. 돌 던질 만큼. 거리와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기 원하고 그 거리와 위치 속에 있는 화해와 화목의 주제로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또 그리고 바로 뒤에 성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요. 또 성찬에 대한 말씀도 나눴습니다. 아주 소중하고 생명처럼 여기는 거룩한 귀한 단어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후 우리 지난주 다툼이라고 하는 참 밥상머리에서 싸우는 그 마지막 만찬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진짜 십자가를 바로 지식이 마지막 최후의 만찬 끝 그리고 우리에게 당부하시고 권면하신 마지막 주제는 기도입니다. 쭉 오해 현장들 소중히 여겼으나 열심은 있었으나 오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심령의 다툼이 또 심령의 전쟁이 어떻게 그 끝을 매듭야 하는가 또 회복해야 하는가 수정해야 하는가 교정돼야 하는가 그 모든 핵심의 주제를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기도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분과 함께 말씀 안에서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겠죠.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된 소속이 소속 사명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교회입니다. 공동체의 교회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 에클레시아 몸으로부터 특별히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하여 하나님이 오늘도 부르시고 세우셔서 보내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전부 다 교회이십니다.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럼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속 안에 있는 우리가 교회라면 성전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또 하나님의 사명받은 교회도 그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의 집 안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친교의 교재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기도입니다. 기도. 왜 이 기도가 필요할까요? 내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거, 내가 필요한 것을 합당하게 응답받기 위한 어떤 도구, 어떤 방법이 기도입니까? 물론 기초적인 일도 그런 것이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 기도는 그 기도는 아니겠죠. 어떠한 기도일까요? 우린 지금까지 오해에 대한 말씀을 나눴고 그 오해 가장 끝에 한 사람을 드러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프게. 그리고 너무나 안타깝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은라고 하는 말씀의 고백처럼 그 마지막 끝은 가론 유다였습니다. 가론 유다는 가론 유다에게만 이루어지는 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들키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함께 있는 가론 유다와 같은 마음을 이해하겠습니다. 가론 유다의 가장 상징적인 대표의 단어가 무엇입니까? 무너졌던 단어가 무엇입니까? 오해입니다. 오해로 시작돼서 수정되지 않고 오해로 끝난 것이 가론 유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헌금에 대한 오해, 성전에 대한 오해, 성찬에 대한 오해, 교회에 대한 오해, 은혜에 대한 오해. 이 오해가 수정되지 않은 채 계속 간다면 가론 유다와 같은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죄인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것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중앙에 수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그런데 그 수정을 말씀은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고 유일하게 기도로 수정할 수 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그래서 바르기 이전에 내가 교정되고 수정돼야 하는 유일한 길이어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이러한 능력이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그 주님 앞에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내가 잘못된 방향 속에서 여전히 수정되지 않고 교정되지 않은 채 그것이 마치 옳은 것처럼 여기는 오해와 다툼의 현장, 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이것을 무엇으로 수정하고 올바로 바로잡아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것을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마지막 이제 마지막 만찬에서 최후의 만찬에서 마지막 교훈으로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너무너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너무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소중한 이 기도 이것이 내 신앙 가운데 무엇을 뜻하고 하나님은 그 기도 가운데 진짜 무엇을 수정하기를 원하시는가? 또 우리가 수정돼야 하는가? 그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22장 35절. 우리가 읽었던 35절 시작은 이렇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나이다. 부족한 것이 있더냐? 없었나이다."라고 이야기하는 흔히 얘기하는 옛날 얘기하십니다. 옛날 얘기 갑자기 다투고 있는 제자들 앞에 그 오해로 누가 크냐라고 하는 그 다툼 속에서 주님이 이야기하시고 첫 번째로 꺼내든 것은 옛날 얘기였습니다. 아주 중요해요. 이 옛날이 언제였죠? 누가복음 10장 1절의 옛날 얘기였습니다. 한번 같이 볼까요? 그 후에 주께서 따로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려시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심매 따로 세운 그 70일 때 그래서 주님께서 주체는 주님께서요. 주께서 세우시고 보내실 때 그때 저렇게 아무것도 가지 않고 보낼 때 그때 부족한 것이 있었더냐? 없었나이다. 제자들의 고백이었습니다. 싸우다 말고 질문을 하셨고 그 질문 속에 옛생각의 기억으로 반응하며 없었다라고 고백하는 현장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었을까? 아니죠. 다 부족했죠. 아무것도 없이 나갔는데 부족했겠죠. 부족했지만 부족하지 않는 경험을 했던 그때입니다. 부족함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했죠. 하지만 실제로 진짜 그 순종으로 나아가 보니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었던 그 부족함이 없었던 그때를 기억시키고 상기시켰다는 거예요. 지금 어디에서? 그 싸움의 현장에서. 왜 이들이 그 주님이 부족한 것이 있었냐라고 할 때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을까요? 누가복음 10장 아까 이야기한 5절 9절에 주님이 이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그리고 만일 평안을 받은 사람이 거기에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걱정하지 마라. 그래서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삭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그러니 옮겨다니지 마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 준비된 것을 먹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라.라고 라고 70인을 따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저렇게 반응하고 영접하고 준비된 것으로만 했어도 충분히 부족함이 없었다라고 하는 것을 제자들은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기억나게 옛날 얘기로 끌어들여 상기시켰다는 거예요. 참 놀라운 고백이죠. 지금 제자들은 다툼이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다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이젠 배신 앞에서 있습니다. 쪼임쓰면 가장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배신할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오해는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오음은 여전히 완강하죠. 그런데 주님께서 그때 그 시절을 얘기하며 그 기쁨의 기억, 그 정말 벅찬 감동의 기억, 그 다 준비시켜서 이루셨던 하나님의 준비의 기억 이러한 기억으로 수정을 회복시키고 있다는 거예요. 은혜의 기억을 다시 상기시켰다는 거예요. 이것이 식탁에서 주님의 마지막 마지막 현장에서 이 시대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었던 기억의 감동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두 단어죠. 기억 그리고 감동. 왜 제가 이 단어를 좋아할까요? 결국 그 안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 이건 외에는 힘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의지하고 열심을 가져도 영적 영적인 힘을 가져야 체력이 있어야 수용도 하고 거절도 하는데 빨려 들어가지 않고 세워지기도 하는데 이런 영적인 힘이 어디서 나올 수 있는가? 열심히 내가 생성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거 아니죠. 결국 기억나게 하시고 또 기억 속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다시 설 수 있는 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부족함이 있었더냐? 아니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 부족이라고 하는 것이 휘스테레오 결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결핍 있으십니까? 목사님,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결핍이 다 있죠? 그런데 이들이 얘기해요. 결핍이 없었나이다. 없었다. 그 얘기가 진짜 결핍 자체가 없었다. 부족함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까 고백한 것처럼 그것이 필요 없었다요.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따로 부르셔서 보내셨어요. 엄청난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요. 그런데 그 일을 감당할 때 나의 결핍은 상관없다는 거예요. 사명은 사명이고 결핍은 결핍이에요. 이 두 개가 우리는 같이 생각하죠. 엮어서 생각하죠. 나 이런 부족함, 나의 이런 열등감, 나 이런 결핍감. 이 모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주님은 따로 얘기해요. 그거와 아무 상관없다. 내가 시키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네 입장과 다르다. 그 부족함이 진짜 부족함으로 끝나냐? 아니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해보니 나의 결핍과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억나게 하셨다는 거예요. 계속 기억을 상기시켰다는 거예요. 환경과 조건과 상환과 스스로의 만족감, 결핍감, 열등감, 부족함이 모든 것과 이제 시작하는 하나님의 일은 별개였다. 별개였다. 분리됐다. 나눠졌다. 상관없다. 이런 뜻입니다. 참 놀랍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래야만 그것이 다 걷어져야만 하나님의 일은 무엇으로 하는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으로 합니까?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내 결핍도 아니고 내 열등도 아니고 내 만족도 아니고 내 체험도 아니고 내 열심도 아니고 은혜를 향한 그 믿음 절대적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 이 얘기를 한 거예요. 이 얘기를 갑자기 왜 했을까요? 싸움 한복판에서 이야기했죠. 29절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나도 너희에게 맡겨 다시 그 사명을 너희에게 맡기고자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걸 다시 너희에게 맡겨 주고자 한다. 그 사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옛 사명했던 그 자리의 경험을 다시 상기시켜 기억하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었습니까? 아까 얘기한 주체 주님이 주님이 보내시고 이게 되게 중요해요. 보냄 받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주님이 보내시고 주님이 세우시고 주님이 맡겨 주셨다면 모든 책임은 누가 진다? 주님이 지신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주님이 하셨다면 주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부르신 적도 없고 주님이 세우신 적도 없고 주님이 보내신 적도 없는데 내가 하겠다고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줘야 합니까? 내가 줘야죠. 그러니 하면서 불안하죠. 하면서 두렵죠. 하면서 그 두려움 불안함으로 나도 불안하니까 남도 불안하게 하죠. 나도 두려우니까 남도 두려워하게. 나의 열심으로 하다 보니까 나의 섭섭함이 생기지. 이 일이 반복되는 거 아닙니까? 부활하셔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차차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이제 마가복음이라고 하는 끝장 그 16장에 나와서 이제 그 마지막 부활하신 후에 찾아가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16장 14, 15절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오늘도 제가 오늘이 자리에서 있는 이유입니다. 14절.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셨던 말씀이에요. 그들의 믿음이 없는 것과 믿음이 없어요. 마음이 완악한 것과 그래서 주님이 꾸 주십니다. 그리고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아요. 믿음도 없고 마음도 완악하고 여전히 오해되지 않고 수정되지 않고 자기 고집에 자기 열심에 자기 의만 가득한 그 모든 제자들에게 마지막 이젠 부활하신 후에 찾아가서 하셨어요. 꾸짖으셨어요. 그리고 나서 15절 같이 큰 목소리 읽어 볼까요? 시작. 이 >> 얘기가 뭔 얘기예요? 꾸짖으셨으면 안 시켜야죠. 믿음이 없으면 안 시켜야죠. 자격이 안 되면 안 시켜야죠. 실력이 없으면 안 시켜야죠. 결핍이 있으면 안 시켜야죠. 안 보내셔야죠. 아니면 고쳐 주거나 수정해 주거나 힘을 더해 주거나 갖춰 준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던 건 뭐예요? 네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니요. 더 정확하게는 그 믿음과 아무 상관없다는 거예요. 넌 그냥 가서 전파하라요. 그냥 전파해라.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고백이었어요. 근데 우리는 여전히 그 시선으로 자기를 보죠. 자기의 자격을 보고 자기의 실력을 보고 자기의 주체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기의 각오를 보고 자기의 진심을 보고 자기의 열심을 보고 그리고 결국 다 무너지죠. 왜요? 하나님이 보내신 적이 없거든요. 그렇게는 그렇게는 맡기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의 23편 고백이 있으시죠? 여러분 잘 알잖아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내게 부족함이 없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죠. 부족함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소유입니다. 우리는 소유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지면 섬길 수 있고 가지면 이을 수 있고 가지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주님은 하나밖에 얘기하지 않아요. 소유가 아니라 소속으로 하는 거라고. 나의 양이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나의 백성이면 할 수 있고 나의 제자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네가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의 생각, 너의 믿음, 너의 마음을 의지하지 말고 전파하라. 전파하라. 반응하라. 개인의 발음은 항상 소유에서 소유함으로. 그래서 결국 그 끝은 항상 오해해서 착각과 다툼으로 전개되지만 사명은 항상 그 소망 안에 소속이 돼서 결국 그 끝은 수정과 회복으로 이루어지죠. 이것이 소유와 소속의 싸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영적 전쟁 그 오해 다툼의 현장에서 소속으로 순종하여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 내 소유가 아니라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이나 이 모든 것으로 소유해서 감당하는 일이 아니다. 아니었던 거 너희도 알지 않냐? 기억해라. 그때 여전히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을 때 너네는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감당했었던 그 감격을 기억하라 말씀하고 있어요. 오직 믿음 안에서 소속으로 순종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일이에요. 그래서 조지 뮐러도 이렇게 이야기했죠. 믿음은 가능성의 영역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 믿음의 자리가 있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인간으로 가능한 일에는 내가 생각하는 그 가능한 일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뿐더러 믿음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야 시작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은 사람의 능력, 그 가능성이 끝나는 곳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그런데 배낭을 가지면 전대를 가지면 신발을 가지면 소유로 시작하는 그 가능성의 일은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비결과 노하우와 자기의 어떤 생각과 관념과 이념은 작동하겠죠. 그런데 결국 그 끝은 오해가 오해로 끝난다. 오해가 수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이란 또 믿음의 기도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인정과 시인과 그 믿음의 엎드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기도 아닙니까? 그걸로 하라는 거예요. 그걸로 그걸로 하나님의 나라 또한 섬김 사명을 감격스럽게 감동으로 순종으로 믿음으로 기도하며 수정하여 그 일을 감당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대 없이, 배낭 없이 신발 없이 결핍과 상관없이 너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의 진심과 상관없이 기분과 상관없이 순종의 기도로 감당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제가 지난주에 개인적으로 목회 철학까지는 아니지만 목회 기준 정도는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다투는 자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지만 다투는 자와 함께 동역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제가 갖는 기준입니다. 그럼 함께하지 않는다의 기준이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사람과 함께 동역하고 어떤 리더십을 세우는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제가 갖는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우리 교회 리더십을 어떠한 기준으로 세울까요? 헌금 많이 하고 전대 많이 갖고 봉사 많이 하고 시간 많이 쓰고 아니요. 그런 것으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굉장히 심플합니다. 기도하는 자입니다. 기도하는 자입니다. 동역은 기도하는 자와 함께합니다. 열심히 믿는 자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감당합니다. 목사님 다 기도하죠? 아니요. 개인적인 기도야. 다 아시겠죠? 집에서 방에서 어디서 제가 알 수 없잖아요. 제가 알 수 있는 기도가 언제입니까? 금요 기도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고 계세요. 저희 교회에 리더십으로 서운 분들은 다 자격이 있어서 세워 주신 분들이 아닙니다. 한 가지입니다. 교회를 위해 금요일 날 나와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의지나 그분의 실력이나 그분의 경력이나 경험은 저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교회를 위해 무릎을 꿇고 앞에서 공적인 예배의 기도의 자리에 마음을 쓰느냐? That's it. 그게 세우는 기준입니다. 동역하는 기준이고요. 여러분, 금요배 다 나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나 감당한 여러분 주님 사랑하십니까? >> 여러분 주님 사랑하십니까? >> 아멘. >> 여러분 몸된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 아멘. 기도하죠. 사랑하면 기도하게 돼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회개해 볼까요? 내가 덜 사랑하는구나. 주님을. 내가 덜 사랑하는구나. 교회를. 그 판단의 기준이 뭐냐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표현. 가장 간절하면서 가장 진지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현에 가장 진지하고 적극적인 나의 표현의 의사가 뭐냐는 거예요. 순종의 기도입니다. 내가 순종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기도는 그만큼 진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라는 것이 드러나는 현장이에요. 내가 교회를 하나님을 주님을 이렇게 사랑했구나라고 하는 것과 맞물리는 거예요. 그건 다짐과 의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전히 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 하실 수 있다라고 하는 그 간절함으로 매달리는 그 엎드림의 현장이 저는 저희 교회 리더가 돼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자가 리더가 돼야 된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사회에서 각 분야에서 아니요. 인정받고 인정받지 못하고 가진 것이 있고 없고 배운 것이 많고 적음이 모든 것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래 다니고 안 다니고 봉사를 하고 안 하고 섬김의 자리에 있고 없고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순종하여 오늘도 여전히 교회를 향한 그 자리에 가장 먼저 기도로 엎드리고 있는가? 그걸로 또 그러한 분으로 동역하며 세워지고 있는 교회인가? 이제 앞으로 배신할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배신할 베드로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밑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뭐 했다? 기도했다. 이제젠 배신요. 배신할 걸 아세요? 그런데 주님이 먼저 하신 게 있어요. 알려 주거나 수정해 주거나 힘을 더해 주거나 갖춰 준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던 건 뭐예요? 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내가 널 위해서 기도하였다. 그래서 기도 후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랬더니 그랬더니 베드로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33절.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오게도 죽는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기도하라니깐 무엇을 얘기합니까? 내가 널 위해 기도했다. 넌 그냥 돌이켜서 형제를 굳게 하면 된다라고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각오를 얘기해요. 기도를 얘기하시는데 각오를 얘기해요. 그랬더니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귀하다. 역시 내 수제자 든든하구나. 내가 옥에 있어도 어딜 가도 네가 끝까지 나랑 함께 한다는 것을 내가 믿는다. 이래야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 안 하세요. 이렇게 말씀하세요. 34절.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내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분명히 각오를 하셨고. 베드로는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옥에 가도 어딜 가도 내가 주와 함께 죽겠나이다. 나의 각오가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더니 너 오늘 하루도 못 넘기고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할 거야. 그 각오를, 그 다짐을, 그 진심을 깡그리 무시하세요. 일도 억세 안 하세요. 받아 주시지도 않아요. 반응해 주시지도 않아요. 그냥 바로 무시해 버려요. 그리고 너 나 세 번 무 부인할 거다. 부인이라고 하는 배신이라고 하는 너 나 욕할 거야.라고 하는 팩트를 그냥 그 자리에서 꽂아 버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걸 모든 걸 아시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먼저 뭐 하셨다? 기도하셨다는 거예요. 이 무서움입니다. 기도하셨대요. 베드로가 이제 후회하죠. 회개하죠. 돌이켜지는 그 현장이 있어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회개의 자리가 있잖아요. 그때 누가 돌이켜서 회개한 거 같아요? 내가 돌이켜서 회개한 거 같아요, 여러분. 내가 한번 잘못했구나. 후회스럽고 아, 이런 것들은 내가 하지 말았어야 되는구나. 주님이 싫어했던 거구나. 그래서 내가 돌이켜서 내 스스로 나의 실력으로 회개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못해요. 주님이 돌이켜 주시지 않으면 회개 못 해요. 성경도 그래서 베드로의 고백 가운데 주님이 돌이키셨다고 하였지 베드로가 돌이키셨다고 안 해요. 이렇게 고백하죠. 주님이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고 베드로가 돌이켜 베드로가 주님을 봤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회개는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를 돌이켜 봐 주시고 그분이 나를 먼저 봐 주시고 그분이 나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해 주셨기 때문에 후회의 현장, 회개의 현장이 있는 것뿐이에요. 거기서부터 우리는 착각하죠. 주님의 기도가 먼저 있었다라는 것. 이 얘기를 왜 할까요? 지난주 이야기처럼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다. 세상은 그래도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다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에 선포가 있었습니다. 근데 주님은 말씀의 선포만 하지 않고 너희는 그렇게 절대 안 될 거야. 라고 라고 말씀하신 후에 기도하셨다는 거예요. 이렇게 기도로 주님의 기도로 주님께서 돌이킴으로 회개해서 회복을 받아 주신 사람만이 형제를 굳건하게 할 수 있는 영혼을 맡기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 경험이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면 기도하게 돼 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사랑하게 돼 있습니다. 앞뒤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님 사랑하길 원합니다. 누구보다 다른 거는 부족해도 사랑하는 거 앞에서는 내가 이등되기 싫다. 라고 라고 하는 여러분의 은혜의 기도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아멘. 그러면 가장 먼저 기도의 자리에 가장 먼저 엎드리는 자가 될 거예요. 그리고 그 현장 속에서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내가 우리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와 증명이 일어나게 될 거예요. 그 속에서만 회복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돌이킨 후에야 진정 사랑으로 세워질 수 있음을 오늘도 원하시는 그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이켜 이곳에 계셨다면 여러분이 이곳에 있었다면 지금 오늘 이곳에 이 기적 같은 현장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여러분을 위해 먼저 기도한 자가 있었다라는 걸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오늘 이곳에 앉치기 위하여 먼저 기도하신 주님의 기도가 있었다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은혜의 반응입니다. 그게 진짜입니다. 내 스스로는 나올 수 없는 자리인데 탄식하는 성령님의 중보와 주님이 그 믿음을 떨어지지 않게 나를 위해 먼저 기도해셨던 그 은혜의 반응이 오늘이 예배의 감격과 감동에서 찬양으로 터져 나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비 뒀으면 원래대로 뒀으면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여전히 죄 가운데 내가 반응하고 있지만 그 끊어질 수 없고 사라질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말씀의 존재가 내 안에 있다라고 하는 그 거룩의 시선이 만나는 것이 교회론적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의 이유예요. 개인적 행복이나 만족함을 위한 존재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되는 거룩의 존재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교회로 또 교회 됨으로 말씀 가운데 세우셨다는 거예요. 야고보서 1장 22절입니다. 그래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자가 되기 원하고 듣기만 해서 속지 않기를 원해요. 듣는 거, 아는 거, 행하는 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로서 여전히 내 삶에는 부족하지만 여전히 내 삶에는 결함이 있지만 그 말씀만으로 만족하고 그것이 나를 견인해 낼 거라고 하는 그 믿음의 교회로 맡겨 주신 귀한 사명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한 번 더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데 부족하지 않습니다. 예. 여러분, 당신은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말씀의 생명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로고스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부족할 수 없습니다. 37절 3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한 일이 이루어져 함이라 그랬더니 엉뚱하게 이렇게 얘기하죠. 그들이 제자들이 여자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거옷 다 팔라. 검 서유해라라고 이야기했더니 바로 검을 보여 주면서 주님 말씀하신 검 여기 있습니다. 검 마카라 단도. 단도 핵심은 뭐냐? 이 검이 어떠한 검이냐? 용도가 어떤 뭐 호신용이겠죠. 용도가 어떤 검이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검이 어디서 났냐? 생각해 보셨어요? 이거 뭐서 났을까요? 살라니까 샀을까요? 그럼 이렇게 바로 못 꺼냈겠죠. 빌려왔을까요? 훔쳐 왔을까요? 말씀하시자마자 줬거든요. 원어도 보면 말씀이 끝나기도 이전에 겁력 있습니다라고 했거든요. 반응이 0.1초 좀 빨라요. 그러면은 이 검서 난 겁니까? 원래 갖고 있었던 거예요. 원래 소유하고 있었던 거예요. 호신용으로. 이 검이 누구의 검이냐? 알 수 없죠. 한 명은 뭐 신학적으로 찾아보니까 뭐 야곱 거다, 누구 거다 뭐 얘기를 많이 해요. 근데 한 명 모르겠고 정확한 한 명 건 누구 건 줄 알아요? 누구 거예요? 베드로. 베드로 거죠. 그러면 아까 가고했잖아요. 내가 감옥에 가고 진짜 주님과 함께 배신할 일이 전혀 없다라고 하는 이 근감의 근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검. 자기의 검 평상시 들고 다녔던 검지했던 검칼했던 검의 실력의 검 그 얘기는 주님이 감옥갈 일 없다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지켜 드릴게요. 제가 다 보호해 드릴게요. 가곡, 다짐, 진심이 기초가 뭐예요? 검. 자기의 힘. 그래서 요한복음 18장 10절. 이에 시모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세상에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위기의 현장이 들이닥쳤어요. 그때 나도 모르게 반응해서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위기 때 나오는게 진짜예요. 근데 그때 딱 나온게 뭐예요? 갖고 있던 칼러 말고의 오른쪽 귀를 배워 버립니다. 디데이가 왔는데 더더욱 오해가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해가 커졌어요. 사서 전부 사서 검 준비하라니까 두 개나 있다고 자랑을 하던 이야기예요. 그때 주님이 하신이 말씀이 족하죠.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족하다. 뭐예요? 잘했다. 족하다. 만족스럽다. 역시 수제자 철저하구나. 그 준비가 내가 너만 믿을게. 이 얘기예요. 좋다. 됐다. 그래 그거야. 역시 두 개나 준비했구나. 이 이 얘기예요. 됐다예요. 아니면 아휴 [목을 가다듬음] 됐다 이거예요. 여러분 말씀은요. 그래서 문자적으로 볼 수 없어요. 그 억양과 표정을 보셔야 합니다. 그 단어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성경을 본다는 것은 왜 이렇게 부족한 목사 세워서 본인 자신도 못 사는 목사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까요? 똑똑한 걸로 따지고 실력적으로 따지고 믿음적으로 따지면 저는 성도님의 실력과 믿음과 그 마음의 중심이 목사보다 더 크다라고 믿거든요. 그것은 진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족한 사람 왜 굳이 왜 생동감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들려지는 곳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그런데 마지막이 더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비록 그곳에 많은 결함이 있을지라도 결함이 많더라도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그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이것을 반대로 얘기해 볼까요? 사람의 말이 전파되고 사람이 말에 들려지는 것 그래서 사람의 교회가 세워지는 곳 비록 그곳에 만족함이 있을지라도 그거는 사람의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결핍을 채우느냐 안 채우느냐 결핍에 만족함을 갖느냐 안 갖는 거보냐 훨씬 더 중요한게 무엇입니까? 훨씬 더 먼저 있어야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존재 자체의 증명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면 그곳은 하나님의 교회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전 믿습니다. 그래서 장로 교회 목사가 됐고요. 이 말씀이 전해진다면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심령에서, 여러분의 내적 전쟁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를 잡는다면 하나님의 교회로서 존재가 증명되는 거예요. 비록 삶의 결핍이 있다는 거예요. 비록 삶에 여전히 수정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도 말씀보다 우선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장로 교인의 장로교회 교인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 장로교회 오셨잖아요. 결핍을 해결하러 오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이 만족감. 저는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해요. 진짜 누구보다 원해요. 우리 옆에 분에게 당신이 행복하길 저도 진짜 원합니다. 인사 한번만 하시죠. 시작. 네. 아, 너무 진지하게 하시니까 안 믿잖아. 웃으면서 [콧방귀] 아, 진짜 당시 행복하게 하기를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말 듣고 행복하기를 정말 원합니다. 시작. 네. 진심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다 진심으로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교회는 행복하기 위해서 오는 곳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곳이 아니라는 거에 문제가 있어요. 교회는 내 결핍을 결함을 채우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문제죠. 교회는 그 행복 그 이상에 거룩하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그래서 결함이 만족됐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원리의 이론이 아닙니다. 좀 달라요.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존재한다라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임한다는 것. 여전히 내가 죄 가운데 있고 여전히 죄 가운데 내가 반응하고 있지만 그 끊어질 수 없고 사라질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말씀의 존재가 내 안에 있다라고 하는 그 거룩의 시선이 만나는 것이 교회론적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의 이유예요. 개인적 행복이나 만족함을 위한 존재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되는 거룩의 존재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교회로 또 교회 됨으로 말씀 가운데 세우셨다는 거예요. 야고보서 1장 22절입니다. 그래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자가 되기 원하고 듣기만 해서 속지 않기를 원해요. 듣는 거, 아는 거, 행하는 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로서 여전히 내 삶에는 부족하지만 여전히 내 삶에는 결함이 있지만 그 말씀만으로 만족하고 그것이 나를 견인해 낼 거라고 하는 그 믿음의 교회로 맡겨 주신 귀한 사명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한 번 더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데 부족하지 않습니다. 예. 여러분, 당신은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말씀의 생명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로고스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부족할 수 없습니다. 37절 3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한 일이 이루어져 함이라 그랬더니 엉뚱하게 이렇게 얘기하죠. 그들이 제자들이 여자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거옷 다 팔라. 검 서유해라라고 이야기했더니 바로 검을 보여 주면서 주님 말씀하신 검 여기 있습니다. 검 마카라 단도. 단도 핵심은 뭐냐? 이 검이 어떠한 검이냐? 용도가 어떤 뭐 호신용이겠죠. 용도가 어떤 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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