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마 소망교회

2026년 10월 14일 수요 예배 박 일규 목사

일규 목사 · 2026-10-15
설교큐티 — 주일 설교로 하는 6일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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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디모데전서 3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설교자
일규 목사
날짜
2026-10-15
설교 길이
79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하며,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교회의 본질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모든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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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설교 구조
교회는 우리가 모인 곳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곳이다
1
교회의 본질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다
디모데전서 3:15
◆
우리는 어디서든 하나님의 교회로 살아가야 한다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 말씀디모데전서 3장 15절 - '하나님의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
월요일
교회의 본질
오늘의 본문디모데전서 3장 14-15절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교회에 대해 가진 생각은 무엇인가? 그것이 성경적일까?
오늘 실천오늘 하루,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실천해보자.
기도하나님, 제 삶이 교회가 되게 하시고, 진리를 전하게 하소서.
2
화요일
교회의 사명
오늘의 본문디모데전서 3장 16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찾아보자.
기도주님, 제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3
수요일
온전한 예배
오늘의 본문디모데전서 3장 15절

예배는 특정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예배를 드리는 장소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하루,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순간을 만들어보자.
기도하나님, 제 삶이 매일 예배가 되게 하소서.
4
목요일
교회의 연합
오늘의 본문디모데전서 3장 15절

교회는 각 성도가 하나로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교회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교회 내에서 누군가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보자.
기도주님, 저를 통해 교회가 더욱 연합되게 하소서.
5
금요일
교회의 역할
오늘의 본문디모데전서 3장 15절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전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를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오늘 하루, 하나님의 진리를 나누는 대화를 시도해보자.
기도하나님, 저를 통해 진리가 전해지게 하소서.
6
토요일
교회의 정체성
오늘의 본문디모데전서 3장 15절

우리는 교회로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교회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
오늘 실천하나님 앞에서 내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기도주님, 제가 교회의 정체성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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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확인 퀴즈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1. 디모데전서 3장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자 한 주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2.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설명 중 옳은 것은 무엇인가요?
  3.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4. 교회의 신분과 직분에 대한 바울의 설명 중 맞는 것은 무엇인가요?
  5. 바울이 교회의 구조에 대해 설명할 때 사용한 비유는 무엇인가요?
전체 스크립트

설교자: 일규 목사

날짜: 2026-10-15

[음악] [음악] [음악] [음악] 임제 하늘에 문을 여소서. 이곳에 임지하소서. 함께하십시다. 이곳에 임지하소서. [목을 가다듬음] [음악]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노래]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양기가 하늘에 다으니 >> 주여 임하여 주소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노래]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노래]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노래]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음.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노래]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노래]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노래] 찬송과 가사가 [음악] 보면은 우리말로 표현하는 데서 어색하고 성경적으로 조금 안 맞는 내용들이 우리 찬송과 가사에 [음악] 참 많아요. 원 저자 [음악] 원작사하신 분의 내용하고 우리말로 번역한 거하고 많이 달라요. 찬송가가. 왜 그랬냐면은 그냥 운유를 맞추려고 3 4 3 4 이렇게 아니면 [음악] 4 4 4 이렇게 글자를 맞추려다 보니까 그냥 원작 작자의 그 작사 [음악] 내용하고는 좀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이것도 그래요. 오직 주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이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다 [음악] 착각하기를 여기 예배당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 이런 것들이 한계가 있는 거예요. 주님의 이름은 예배당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전인 우리 안에 있는 거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주님의 이름을 우리는 모시고 그래서 뭐라 그랬어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그랬잖아.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의 [음악] 발등상이니라. 안 계신 곳이 없다는 말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이런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는 성전입니다. 이곳에 오십시오. 그러니까 꼭 예배당에만 나와 갖고 이곳에 오라는 얘기고 하나님 어디서 내려오겠어요?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무슨 [음악] 날개 치고 이렇게 내려오는 것처럼 착각한다 말이죠. 언제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항상 그것을 잊지 않고 찬양을 해야 되지. [음악] 찬양 가사에 매입나 보혈을지나 그것도 좀 마음에 [음악] 안 들어. 보혈을 지난다는 말 우리 말에 지난다는 것은 패스해 버린다는 뜻이거든. 그죠? 보혈을지나 이해하고 부르는 겁니다. 이해하고 보혈을 왜 지나갑니까? 보혈을 먹고 가야지. 보혈을 믿고 가는 거지. 그니까 가사의 한계가 있어. 찬송과 가사의 전달점이 있어서 그런 것들이 좀 아쉽인 것 같아. 나를 지으신 이가. 함께 봅시다. 나를 지으신 이가. [음악] >> [음악] >> 나를 지으신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시니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나려갈 나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함께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외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나 주저함 그 땅을 밟은도 [노래]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 없는 은혜 할량 없는 은혜 갚을 불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외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멘. 208장 네. 내 주의 [노래] 나라와 [콧방귀] 주계신 [음악] 성전과 과 비흘려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노래][음악] 이 주의 교회는 [노래][음악] 찬성과 같아서 눈동자같이 아끼 을보하신네. 이 이 교회 [노래]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노래][음악] 내 생명 다하기까지 [노래][음악] 늘 봉사합니다. 성도의 교재와 [노래] 교회의 위로와 [콧방귀] 고주와 맺은 언약을 [노래] 늘 기뻐합니다.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은혜가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아멘. [노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일을 지나 오늘 수요일 밤에 다시 하나님 앞에 모여 저희들을 예배하는 자리로 모이게 하시고 인도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이 초청해 주신 그 말씀을 저희들이 상고한 주일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한 주를 살아가면서 마치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활동하는 것과 같이 부자연스럽고 답답하고 우리가 질 수 없는 멍예들을 스스로 지고 해결하려고 살아왔던 우리 안타까운 인생들의 삶을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모든 짐들을 다 내려놓게 하시고 쉽고 가벼운 멍예를 우리에게 다시 지워 주시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예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자격도 해결할 수 있는 권세도 없는 연약한 인생들이오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짐을 다 해결해 주셨기에 오늘도 주님의 그 십자가 안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음악] 십자가의 멍예를 지고 주님이 짊어지신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이제는 저희들이 벗어버리고 주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귀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얼마지 남아 있는 생을 우리가 계산할 줄 아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 남은 때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우리의 가정과 일터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인도하시고 들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그 사랑의 품 안에서 매일 매 순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살아 있는 신앙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치 이곳이 교회인양 이곳에 모일 때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하고 잘못 오리엔테이션 되어 있는 우리의 믿음을 이제는 깨끗이 지워 버리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가 나아가는 모든 곳에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주관하고 계시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항상 의식하고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세상에 좋은 것을 다 모아놓은 우리 하나님의 좋으심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이 믿음의 눈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그 좋으심과 아버지 하나님의 그 존재감을 날마다 마음으로 느끼고 의식하며 그것을 소원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항상 함께 호흡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항상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예수 [음악] 그리스도의 걸어가신 그 길 주님의 동손을 그대로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고 장례 진받은 길을 따라가고 부활하신 길을 따라가고 승천하신 길을 따라가서 우리가 마음을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날마다 믿음으로 배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매일매일의 삶을 시작하며 살아가는 경건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며 우리를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온전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소망의 모든 가족들 어느 곳에서 살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느 장소에 있든지 어떤 환경과 형편 속에 있든지 눈에 보이는 것과 손으로 붙들 수 있는 곳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보이지 아니하시나 살아 계시며 오늘도 우리 가운데 항상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심령을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밤에도 아버지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져서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교회가 나아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또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름을 받아 온 땅 열방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우리 선교사님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저들이 어떤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오직 주님만 의식하고 일하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아버지만을 온전히 붙잡고 하나님의 선교에 쓰임받는 귀한 종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마음이 환경에 의해서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하신 그 능력 안에 날마다 붙잡힌 바 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아버지의 종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모든 형편과 상황과 저지를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고 가장 좋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능력으로 그들과 함께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아버지 앞에서 [음악]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우리를 진리로 가르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며 늘 진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하나님 말씀. 디모데전서 3장 마지막 부분이며 14절에서 16절까지 디모데전서 3장 14절 15절 16절 함께 교독합니다. 내가 속히 내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내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 할지를 알게 하려 함니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다같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음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아멘.

오늘은 바울이 목회자 디모데에게 이제 만나기를 바라지만 언제 만날지를 모르고 또 못 만날 수도 있어요. 제가 볼 때는 못 만날지도 모르니까 이 서신을 써서 보내면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그랬죠? 15절에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그러면서 교회가 뭔가 설명하고 있고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걸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세 절이지만 3장에서 다시 우리가 상고하고 가려고 합니다. 교회가 뭐예요?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무엇을 보고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제 교회가 중요시 여기야 되는 것이 뭐냐 그걸 지금 얘기해요. 그러니까 오늘날 목회자인 [음악] 저에게도 바울이 성령으로 이걸 가르쳐 주신 것이고 우리 성도들이 이걸 바르게 알아야 된다는 거죠. 목회자가 이걸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 목회를 뭐 오래했고 사람을 많이 불러 모아서 예배를 드렸고 뭐 예배당을 건물을 그냥 화려하게 지었고 이거 큰 소용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가 그런 것으로 하나님이 평가하시거나 상급을 주시거나 그런지라 교회가 뭔지를 제대로 알고 성도들이 교회가 뭔지도 모르고 평생 교회를 다닌다 이렇게 되면은 그 말도 잘못된 거지만 교회가 뭔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면은 목사 책임이에요. 왜 목사는 말씀과 기도로 성도를 섬기는 집사거든 지난주에 제가 얘기했죠 목사가 집사라 근데 그 집사라는 보통 명사가 영어로는 디큰 그러잖아요. 그게 어디서 써왔어? 헬란 말에서 왔어요. 디아코노스. 디아코노스라는 영어로 나중에 디래 디아코노스 섬기는 거. 목사는 평생 뭘 섬기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의 종속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감독이라. 교회가 뭔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으면 감독의 직분을 충실하게 하지 않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너무 오랜 세월 오해하고 있고 잘못 [음악] 가르쳐진 것이 머릿속에 꽉 박혀 가지고 저도 그렇게 배웠고 너무 저도 오랜 세월 그 말이 입에 올라붙어 가지고 이게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말하지 하지 않으면 그냥 실수가 풍펑 나와. 목사님 어디 가십니까? 교회 갑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이게 틀린 말이 교회가 어디 있는데 교회를 간다 그래요. 우리는 여기다가 간판을 걸어 가지고 소망토에 이렇게 해 놨기 때문에 참 이것도 어떻게 보면은 잘못된 거죠. 소망 예배당 이렇게 해야 돼. 소망 교회가 모이는 예배당은 소망 교회 예배당이라고 썼어야 돼. 옛날이 맞아요. 옛날에 우리 목사님들 선배 [음악] 목사님들은요. 뒤에다 꼭 예배당이라고 썼어요. 골로 쭉 이렇게 교회 그 건물을 짚고 나서 에베머리에다가 교회 그 이름을 붙일 때 무슨무슨 교회다. 그게 맞는 얘기. 교회 간다는 말을 아무리 고치려 그래도 잘 안 고쳐지죠. 그죠? 권사님 어디 가세요? 교회 방. 이거 안 고쳐지는 거예요. 야, 참 무섭습니다. 이걸 의식적으로 고쳐야 돼요. 어디 갑니까? 예배당에 갑니다. 이렇게 말해야 되는 교회 갑니다가 서슴없이 나오니까 이런 거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그냥 말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요. 뭐 그것이 그것이고 이것이 저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주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예배당 안에서 예배드릴 때 우리가 교회 같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를 떠나면 교회 받기 돼 버리 여기를 떠나면 교회 밖에서 사는 거 같니까 교회가 뭔지를 오해하고 잘못 어리엔테이션됐다 잘못 가르쳐졌어 그러니까 어 교회라는 말의 단어가 벌써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이란는 뜻이야.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이 그러면은 틀림없이 건물은 거기에 해당이 안 되는 얘기죠. 사람을 얘기하는 그러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밖으로 불러내물 받은 사람 세상에 태어났고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에서 이제 더 이상 너희는 속한 자 예수께 속한 자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내서 나온 사람 그 모임을 교회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둘이 되고 셋이 되고 그러니까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있다. 왜? 그게 교회니까. 두 세 사람이 어디에 모였겠어요? 가전에 모인 거예요. 성경 시대에 바울 사도 시대에 어디 예배당이 있었냐? 에베담 하나도 없었어요. 그대로 와서 400년 500년경에 와서 붙어서 에베당이란 건물이 생긴 거예요. 왜? 기독교가 더 이상 핍박이 없고 로마가 국교를 정해 버렸어서는 이제 에베당을 막 지키기 시작합니다. 그걸 성당이라고 이제 부르 그랬던 것이지 두 세 사람이 모인 그곳이 교회예요. 가정에 모였든 직장에 모였든 어디에 모였든 들판에서 모였던 여행을 가다 모였던 거기가 교회예요. 그 교회가 특징이 있을 거 아니야. 무조건 사람이 모였다고 교회가 아니란 말이죠. 교회라고 구분되는 특징이 그걸 오늘 본문서 바울이 이 세절에서 설명하는 우리가 제일 먼저 고쳐야 될 것이 뭐냐면 제일 먼저 잘못 [음악] 가르쳐진 것이 뭐냐면 교회를 조직으로 보는 거 조직으로 그래서 저기 삼각형이 이렇게 삼각형이 돼 있으면 저 꼭대기 꼭대기 지점이 단임 목사가 있고 바로 그 밑에 당해가 있고 그 밑에 제지개가 있고 또 남성 교회가 있고 여성 교회가 있고 구역이 있고 주일학교가 있고 청소년도가 있고 부서가 있어요. 그 교회가 이렇게 조직으로 만들어져 있단 말이 그러니까 그 도표 자체도 잘못돼 버린 거 성경을 설명하고 있는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 속에 목사는 항상 신령하다고 보는 거. 목사를 신령하다고 보기 때문에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시면 하나님이 좀 더 잘 들어 주시고 목사님이 기도를 안 하고 집사님이 기도를 해 주시면 하나님께서 좀 덜 들어 주시고 우리는 그런 개념이 벌써 머릿속에 딱 맡겨 있어요. 그래서 목사를 어떻게 만들어 놨어요? 중고자로 만들어 놓아. 근데 그런 것들을 목사가 바로 잡아 줘야 되는데 안 잡아 주는 거예요. 왜? 그게 좋거든. 양심적으로 그게 좋거든. 교인들이 목사를 좀 특별한 사람으로 봐 줘야 시체말로 영발이 있는 사람으로 봐 줘야 그게 좋잖아. 그게 나쁠 일이 없잖아. 교인인 다 자기 교회 목사를 신령하게 봐 주는데 기분 나쁠 일이 없으니까 그대로 놔둔 거야. 이걸 바로 잡지라고.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과는 절대 달라져 버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 중보자는 목사도 아니고 장례도 아니고 누구도 중보자는 될 수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준 거죠. 그리고 교회가 된 사람이면 바로 그 교회가 된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힘입어 어디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죠. 그 예수님의 이름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간고하는 것이죠. 그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공로와 은혜를 힘입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언제나 나아가게 되는 교회란 말이에요. 교회 목사도 교회고 장로도 교회고 권사도 교회고 집사도 교회고 일반 이제 교회를 처음 믿고 갓 세례를 받은 사람도 교회 그 신분은 똑같다 이 말이야. 교회 안에서 신분을 만약에 따지면 그 사람은 성경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 신분을 가지고 신분이 뭔데?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또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성도 거룩한 성자를 써서 거룩한 무리도 거룩할 성리도 거룩한 무리들 또 뭐 주님의 제자들 여러 표현으로 하고 있어요. 그 이거 신부는 다 똑같은 하나도 다를게 없어. 차이도 없어요. 신분이 똑같아. 몸만 다른 거예요. 직분만 다른 거예요. 신분은 똑같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 온 세계의 하나님의 백성들 신부는 다 똑같아요. 성도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목사가 성도 아니에. 혹사도 성도 모든 사람이 다 성도잖아요. 이게 신분이에요. 이게 신분. 근데 직분은 뭐예요? 직분. 직분은 집사례니까 모든 사람이 다 집사예요. 디아코너스 섬기는. 근데 그 직책에 따라서 어떻게 섬기는가? 무엇으로 섬기는가? 그것만 다른 거예.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감독이 되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뭐만 잘하면 돼요? 섬기는 것을 자되 뭘로 섬기는 거? 말씀으로 섬기는 기도로 섬기는 그것만 잘하면 하나님은 그래 네가 감독의 자격이 있구나. 물론 앞에서 우리 3장 1절에서부터 7절까지 감독의 자격이 쭉 나와 있었잖아요. 근데 그것은 자격이라기보다는 선한 싸움을 살아가는 사람들, 오늘 말하려고 하는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히 그것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게 나타난다고. 그런데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감독의 일치를 주셔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도록 하 거짓된 교사가 들어와서 성도들의 영혼을 존먹게 한다든지 교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든지 믿음의 길을 떠나서 잘못된 것을 가르치게 한다든지 유대주의 율법을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그걸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런 헛소리를 한다든지 이걸 분별하고 하고 그것들을 약무리를 보호해야 돼. 감독의 직책을 가진 사람은 그걸로 잘 섬겨야 돼. 그런 것을 제대로 하라고 감독의 직책을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이지 신분은 똑같은 거예. 감독이라고 해서 신분이 높은게 아니란 말이 똑같은 그래서 인권이라는 것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고 사람은 다 똑같잖아요. 그래서 표도 한 표. 민주주의에서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데 높은 자리는 사람 표를 두 표씩 행사하는 거 아니잖아. 사람은 똑같은 신분을 가지고 고유의 신분을 하나님께부터 받은 거예요. 우리도 성도라는 신분을 받은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신분 다 이게 신분이에요. 그런데 이제 직책은 뭐라고요? 종이란 말이야. 종 섬기는 디아코노스. 그니까 바울은 항상 자기를 편지해서 소개할 때 둘로스 예수 그리스도스 아포스톨로스 둘로스 그렇게 항상 그걸 빼놓지 않고 쓰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인 나 바울 바울로스 둘로서 예수 그리스도로스 아로서 언제나 그 말이 자기의 신분과 자기의 직책을 나타내고 있는 표현들이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도로 부름을 받아 둘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로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자 그 교회는 이렇게 피라미드 모양으로 있으면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뭘로 표현해야 제일 정확하냐면요. 우산이 있죠. 자 우산을 한번 생각해. 우산 이렇게 쭉 펴봐요. 그러면은 무르게 나 우산 살이 쫙 펴지면서 그 천이 넓게 둥그럽게 되죠. 우산을 이렇게 딱 뒤집어 봐요. 우산 손잡이가 위로 올라오게 하고 꼭대기가 땅에 다 요게 교회의 모습. 이 피라미드 형이 아니요 요요 우산 대는 뭐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보산 살은 뭐냐? 전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전부 연결되어 있는 우산살이 보통 뭐 한 열 개 있으면 우산 만들어지는데 우산살이 뭐 만 개가 됐든 10만 개가 됐든 100만 개가 됐든 전부가 다 어디로 붙어야 돼요? 우산대이 대에 붙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요 그림이 진짜 교회 그림이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드리는게 믿음이잖아. 계속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마음을 드리면 예수님은 그 마음을 받아 가지고 어디로 가세요? 하나님께로 가 교회 마음을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거 예수님 그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아니하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믿음은 코다래 내 심장을 드립니다라 마음을 드리는 것이 믿음이에 몸은 우리가 땅에서 어느 장소에 있든지간에 마음만큼은 계속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된다 이거 그 사람은 항상 예수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받아서 홀로 마음을 끌고 올라가세요. 우리가 예수님께 마음 드리지 않으면 죽어다 그건 믿음이 아니에. 이게 교회의 본래 그림이란 말이야. 사람이 그러니까 감독도 대가 아니에요. 감독도 우살 살 중에 하나예요. 내가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아니하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줄기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끝나는 거예요. 전도가 붙어 있어. 근데 그중에서도 감독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가 나왔는데 그 사람들은 뭐 하는 거예요? 성도들 모두들을 다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도록 권면하고 기도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게 그분이 섬겨야 될 일이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아니하는 사람 100명을 모아하는들 무슨 수영이 있어요? 그리스도에게만 붙어 있게 하는 절대로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날마다 주입시키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삶을 이루어 가는 이게 교회의 진짜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에 뭐했어요? 모이기를 힘쓰라 그랬던 교회를 가라는 말이 성경에 한 마디도 없는데 모이기를 힘쓰라. 모이기를 패하는 자들의 그런 습관을 본받지 말고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예수님 오실 날이 가까움을 느낄수록 다 모이기를 힘들 어째 하라는 거예요? 교회들이 열심히 모이라는 거예. 교회들 교회 가지 말고 교회들이 어디에 모이든지 열심히 모이라는 이게 중요은 교회를 갔다가 집으로 가면은 교회 밖으로 나가 버린 것처럼 우리가 교회가 된다는 교회는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또와 연합되어 있는 내가 교회. 이 의식이 항상 여러분과 [음악] 제 속에 교회에 대한 지금까지의 그런 관념들을 싹 지워 버려야 돼. 그건 교회가 아니 교회. 철저하게 나 자신이 교회. 그럼 이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가정 안에 가정이 진리의 터전이 되는 그리고 거기가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는 거 그 가정이 교회예요. 그래서 가정 교회였던 거예요. 본래 처음에는 그 사람이 직장을 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직장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리 되시는 분인데 그 진리를 가지고 내가 직장을 가면은 그 직장이 진리의 기둥과 터전이 되는 학교를 가면 학교가 직장이 학생이 직 학교가 직장인 학생은 거기가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는 터전이 되는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니라 오늘 본문을 다시 들여다 보세요. 15절에 내가 만일 지체가 한다면 내가 가야 되겠는데 속히 가야 되겠는데 지체가 될 것 같으니까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그랬어요. 하나님의 집이 어디예요? 성전이잖아. 성전이 어디예요? 우리가 성전이죠. 구약의 성전은 건물로 있었어요. 진짜로 솔로몬 성전, 수룹바벨 성전 그게 성전이었어요. 그래서 거기 나가서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께 제사를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 오신 이후에 성전을 패하셨고 당신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는 성전보다도 더 크신 분이라 그랬어요. 주님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니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렇게 말씀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성전이에요. 계시록을 또 제가 언제 한번 강해를 할 때가 있겠습니다만은 계시록이 분명히 그러냐 요한이 하늘로 붙어서 하나님의 보좌가 확 펼쳐져서 보이는데 하늘로 붙어서 이렇게 천국의 모습을 본 장면을 그려 놨잖아요. 근데 거기에 성전이 있더라 그랬다 없더라 그랬어요? 요한계 성전이 없더라 그랬어요. 왜? 성전이 누군데? 하나님이 우리의 성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전이시며 그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성전이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어요. 요한 계시록에도 절 없어요. 우리가 가는 모든 곳이 진리의 기둥과 터이 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생활하면 여러분이 교회니까 가정 교회 두 세 사람이 모여도 가정 교회 아닙니까? 우리가 새벽 예배를 이렇게 주음 영상으로 가지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은 각 가정에서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 거기가 교회 거기가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는 터전이란 말이야.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교회입니다. 이 의식이 항상 살아 있어요. 소망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소망교회는 각 가정의 일에 흩어져 있는 그 사람들이 교회가 되어서 진리의 기둥과 터전을 이루어 가면서 살다가 그 사람들이 어딘가에 열심히 모이라는 거야. 보이는 때에는 거기가 예배당이라는 거기가 직장이라는 것이 거기가 가정이라는 것이 뭐 거기가 카페라도 모이면 거기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진리의 기둥과 터전이 되는 언제나 우리는 나아가서 교회를 살아가는 것이지 교회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교회로 살. 그리고 이제 그 교회의 특징이 뭐냐 그걸 오늘 지금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어. 크도다 감탄사를 썼어요. 다 경건의 비밀이요. 감탄 문장이 되겠다. 너무너무 위대하다. 그 말이 크다는 말은 너무너무 말은 스보위 그러 너무 위대하다. 너무너무 놀랍다. 감탄사를 썼어. 뭐가 경건이 경건의 비밀이요? 그러면서 그다음 말씀이 뭐라어요? 그렇지 않다 하는 없도다. 그 말이 뭔 말이에요?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하나님의 교회에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그것은 뭐냐? 경건의 비밀이다. 경건 경건. 그거에 대해서는 다른 논란의 여지가 없고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는 거. 하나님의 교회냐 아니냐 그것은 건물이 있냐 없냐 이건 아무 상관이 없는 그때는 교회를 가는 일도 없어. 어디가 예배당이 있어야 교회를 가지요? 오늘갈라 같이 표현한다면 어디가 그러면 교회가 그런 말이 없었다니까요. 언제부터 이게 생겼어요? 중세 시대부터 생긴 거. 건물을 지어놓. 그러나 진짜 그기가 교회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특징이 하나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거 제일 위대한 거라는 너무 놀라워서 바울이 감탄사를 쓰면서 크도다, 위대하도다, 아름답도다. 경건의 비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논란의 여지가 없이 여기에는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 제일 중요한 것은 경건이 그걸 이것을 시크릿이라 그랬어. 야 너무 신비하니까 너무 신비한 경건이 경건이 뭡니까? 그러는이 경건이라는 것도 사실은 너무 오해가 돼 가지고 참 그분 경건하게 보여. 경건하게 보인다는 것이 뭘 근거로 경건하게 보인다는 거 제가 늘 그런 흉내를 잘 내지요. 성경책은 이렇게 점전하게 들고 이렇게 가슴에다 이만큼 얹어 가지고 네. 네. 야 이름이 경건이에 성경책을 그냥 관람보다 근건하지 않게 보이고 이렇 경건이 도치 병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이시지를 않는 분이잖아요. 볼 수도 없는 분이시고 우리 육관으로는 그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시고 그러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앞에 분명히 여기 15절에 그랬는데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 현존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십니다. 지금 오늘 저녁에도 말씀을 전하고 있는 저를 보고 계시고 예배드리고 있는 여러분을 하나님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보고만 계십니까? 듣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일거수 일두을 속속들이 다 아십 심지어는 멀리서 계시는 분 같이요. 그분이 우리의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아신다고 시편 139편에 그래 말씀하셨잖아요.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주님 거기 계십니다. 내가 날개치며 공중 높은 곳에 올라가도 주님 거기 계시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도 주님 거기 계시고 땅의 저 기쁜 속에 땅을 파고 내려가도 주님 거기 계시고 주님이 나의 모든 생각을 알지 [음악]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주님은 내가 모태에서 조직되어서 임신이 되어서 태중에 착상이 [음악] 되는 그 전부터서 나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모태에 조직하고 내 장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주님은 나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금도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속속들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날마다 의식하는 그 가운데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경건이라 그래요. 경건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죠. 이 사람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사도행전에 나오지 않습니까? 고넬료는 어때요? 이방인이었는데 그가 경건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많은 사람들을 부제하기에 힘썼던 사람이었는데 베드로를 그 집에 보내 가지고 고넬료의 집안을 다 [음악] 구원받게 하지 않습니까? 그가 경건했다라고 성경은 기록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 와서 유대인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하나님을 보이지도 아니하는 하나님이 자기를 항상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았다는 거예. 그래서 보낼 구원하시기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내셔 가지고 그 집 사람들이 다 구원받게 세례받게어.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이루어지는 거냐? 이제 16절을 보시면 나와요. 보십시다. 경건의 비밀이여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고 이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최고로 중요한 건 경건이다. 그 사람이 교회냐 아니냐는 이걸로 판걸음난다는 읽어봅시다. 다 같이.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음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느니라. 이거 우리 사도행전에 나오는 저저 사도신경에 나오는 얘기와 비슷하잖아요. 그는 동경자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고백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지금 소개하고 있는 거잖아. 원래 그분이 하나님이셨는데 사람의 몸을 입고 육신으로 오셨다는 육신으로 오시는 그러기 때문에 죄만 없으실 뿐이지 우리와 똑같은 마음과 성경을 가지신 분이다. 육신을 가지시고 오셨어. 죄만 없으시다 그랬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와 똑같은 상태로 오셨다. 그런데 그다음의 말씀에 보니까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그랬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냐?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다는 건 뭐예요?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바랐죠? 예수 믿고 우리의 죄가 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함을 받았고 우리가 깨끗이 제시음을 받았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하신다 그랬습니다. 의롭다 칭하신 이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 죄를 씻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게 만드신 거잖아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근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니까 본래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셨지만 항상 그분이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계신 분이라 예수님께서.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하나로 되어 있신 언제나 연합이 되어 있어서 나눠지지도 않고 분리되지도 않고 대적하지도 않고 항상 일치되어 있는 분이 이걸 의롭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네가 내 마음에 꼭 드는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그 말이에요. 이 의롭다함을 이 땅에서 받으셨다. 항상 의로우신 분 죄가 없어서 언제나 하나님과 연합되 있어. 그 말씀이에요. 그다음에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그랬네요.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께서 이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확 열렸다 그랬어. 그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강림하셨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 하는 음성이 들렸어.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천사들에게 여기를 천사들에게 보이셨다. 그 말은 천사들이 항상 하늘로 붙어서 예수님에게로 그 위에서 내리라 오르라 오르라 내리라 항상 하나님의 수정는 천사들과 함께 계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처음에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은 빌립이 무아가나무 아래 나다네를 찾아가 가지고 야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어 그러면서 얘기하어요. 어디서 만났는데? 나사렛 사람이야. 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온다고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아니야. 아니야. 진짜 메시아 맞아. 그래 가지고 나다나를 이렇게 예수님의 빌립이 데리고 옵니까?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러면서 예수님과 만나는 자리에서 나다나엘과 대화를 몇 번 이렇게 하시죠. 그러니까 아 진실로 메시아가 맞군요.라고 나다나엘이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야 내가 너를 무아가 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보았다. 그 말을 하니까 네가 나를 믿는 거냐? 앞으로는 인자 위에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다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었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게 될 때에 하나님이 땅에 내려오셔서 천국을 선포하실 때마다 하늘의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서 경험하고 보게 될 것이다. 그 말이에요. 그이 천국이 그냥 예수님의 앞마당으로 활짝 펼쳐져 있다는 말이야.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사역 가운데 천사들은 수정드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언제나 예수님 곁에는 천사들이 떠나지 않고 있는 거예요. 천사들 성령이 이끌려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에도 세 번의 시험을 다 물리치고 마귀를 쫓아내셨잖아요. 그때도 어떻게 됐어요? 하나님의 천사들이 예수님을 수정드니라 그랬잖아요. 그 시험받고 있는 그 자리에도 천사들이 오르락 또 강도를 잡는 것처럼 망치를 들고 창을 들고 로마 군병과 이 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들이 예수님 겟세마리 동산에 잡으러 올 때도 뭐라 그랬어요? 베드로가 그냥 칼로 가지고 어떤 사람 그냥 깃데기를 그냥 날려 버렸는데 그때도 뭐라 그랬어요? 베드로야 칼을 도로집에 꽂아라. 지금이라도 내가 하나님께 구해서 하늘에 12이 더 되는 그러니까 하늘의 천군 천사를 말하는 거겠죠. 그걸 내가 지금 뭐 불러내려서 그런 줄 아니? 내가 그렇게 해 버리면 성경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 나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다. 이렇게 말씀. 예수님은 언제나 천군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는 분이고 언제나 예수님이 하시는 그곳에 하늘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는 그런 모습으로 이걸 지금 소개하고 있는 천사들에게 나타난 바. 그다음에 만국에서 전파되시 열방에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 그다음에 세상에서 믿음 바 되시고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제 계속해서 점점 점점 전파되어 갈 때마다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믿는 것이 뭐라고요? 마음 드리는 예수님께로 마음 내 모든 마음을 다 쌓아서 예수님께 드리는이 세상에다가 마음을 안 주는 거야. 어떤 것에도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거예요. 예수님에게만 내 마음을 드립니다라는게 믿음이라 이거. 세상에서 그렇게 믿는 자들은 이제 어떻게 돼요? 예수님께서 어떻게 됐다 그랬어요? 영광 가운데 올려가셨다. 올려지셨다. 승천해 가셨어요. 하나님 보좌 5편으로.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한다 그랬어요? 에베소서 2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신 주님이 우리도 하늘에 안 치웠다 그랬잖아. 안 치웠다. 거기가 부정 과거형을 쓴 헬라의 문법상으로 보면은 그것이 뭐예요?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다 앉혀 있다는 앉혀 있다. 이거 엄청난 얘기예요,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앉혀 있다는 거. 세상의 모든 종교는 뭐냐? 신에게로 나가는 거예. 세상의 모든 종교는 어떻게 나갑니까? 자기 노력과 자기 수양과 자기의 어 가장 벼력별 종교적인 어떤 의식을 통해서 신을 만나겠다고 신에게 빌고 신에게 갖다 바치고 계속해서 내 노력으로 내 공로로 신에게 나아가는 그래서 신을 만나는 것이 세상 종교의 목표입니다. 모든 종교는 그런 의식을 갖고 있어요. 그 기독교 복음은 뭐예요? 우리는 신을 만나는게 목표가 아니고 신을 만나서 출발하는 거예요. 우리는 출발점이 하나님을 만나서 시작하는 거예요. 기독교 복음이 매일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거. 세상 종교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 한번 만나 보겠다고 그래서 천당가 보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는 것이고 우리는 천당에서 시작하는 거라니까 누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 보좌에 안치워 놨어요. 우리를 하나님께서 오늘도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하나님 보좌에 왔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보신다 그랬잖아요.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출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으로부터 가정으로 보냄을 받고 하나님 만나서 학교로 일토로 직장으로 회사로 어디든지 하나님이 보내서 가는 사람들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되기 위해서 노력할 일이 하나도 없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만 드리면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아서 얼마나 놀랍습니다. 내가 구원받을까 구원 못 받을까 그런 두려움과 의심과 염려가 생긴다고 한다면 나의 자신이 경건의 비밀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알아요. 경건의 비밀이 뭔데? 세상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서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는 거니까 말다 우리가 십자가를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매일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항상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시고 보고 계시고 네가 내 마음에 다 든다. 하나님이 그러십니다. 예.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보실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의심하는 거라. 하나님 말씀 안 믿는 거라. 아유 그건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나 같은 사람이 뭐 기도한다고 하나님 듣겠어. 이렇게 생각하면은 그 사람 예수님을 중보자로 안 믿는 거란 말이야. 여러분과 제가 다 신분이 똑같아. 그래서 누가 마음을 드리냐에 따라서 결정지어집니다. 목사라도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그 목사의 경건은 뭐예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이 같은 자들에게서 디모데야 네가 돌아서라 그러죠. 경건의 모양만 있는 거죠. 경건에 보이기는 해. 그런데 그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다 뜻을 두고 세상에다가 마음을 완전히 다 팔아먹고 그래서 그 세상의 것이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세상의 것이 좀 잘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막 기도한다 그러고 세상의 것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충성한다 그러고 전부 이런 것이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이지 경건의 비밀은 없는 사람.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 마음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바뀌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사람은 경건의 비밀을 가진 자. 그 사람은 하나님이 날마다 보고 계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어디에다가 두고 있느냐가 경건의 비밀을 말하는 내가 교회냐 아니냐 이것은 주일날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왔냐 안 왔냐 그걸로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제일 먼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존재감을 [음악] 가장 먼저 의식하고 그래서 뭐 죽인다 그래도 죽인다 다니엘을 너 죽여 사자굴에 들어갈 거야. 그 친구들 셋시는 그냥 풀모뿌려 넣어서 그냥 태워 죽일 거야. 그렇게 위협을 받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 셋시는 어떻게 했습니까? 네 네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감을 제일 먼저 의식했어. 왕이여 우리는 절 안 합니다. 설령 죽을지라도 풀무불에서 우리를 안 건져주고 우리가 태워서 죽을지라도 우리는 잘 안 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존재감이 1번이에 그게 경건입니다. 예수님도 재판장에가 가지고 빌라도가 막지가 뭐 굉장한 것처럼 내가 묻는 말이에 너 대답을 내가 살릴 권세도 있고 죽일 권세도 있다는 걸 왜 몰라 그랬더 예수님 뭐라 그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으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나 나를 너에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위에서 주지 아니었다라면 그 순간도 하나님은 주님을 오셨 주님을 하나님을 오시 또 베드로도 똑같아요. 예수님을 부임했던 베드로였지만 똑같은 예수님을 잡아 죽였던 그 공의의 사람들이 베드로도 잡아가잖아요. 요한도 잡아가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데 왜 뜻 헛소리하고 다녀 죽여?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요? 아, 내가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옳은가? 판단해 봐라. 당당하게 하나님을 의식하 이게 경건이 응. 병든 것도 마찬가지. 병들어서 죽게 됐다고 하. 병들어서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일본이어야 돼요. 하나님 이제 하나님 앞에 제가 갑니다. 저를 이제 이 세상에서 놓아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 앞에 갑니다 하고 그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가는 거죠. 그게 경건이죠. 하나님 이러시니까 이게 무슨 경건이 매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그 경건이 아니에 이걸 마음속에 매일 여러분과 제가 확인하면서 살아야 그러니까 그 어려운 세상 속에 살면서 감독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거 보세요. 집사들이 나오는 거 보세요. 그래서 이 얘기를 기록하고 있는 그 15 가지의 등목이 나오고 집사들의 일곱 가지 등목이 쭉 나온 걸 보시면 사람들이 이렇게 바뀌더라는 거예요. 죄인 중의 계수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드리고 보니까 어느 날 감독 같은 사람들이 나오 집사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이게 얼마나 놀랍냐 이런 경건의 능력이 어디서 나올 수가 있겠냐 그것은 마음이 매일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는 이제 교회 가면 안 돼요. 어디에서든지 교회로 살아야 돼. 그 교회로 살아가는 그러면 그 사람 있는 그것이 바로 진리의 표전이 되고 거기에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는 거예요. 그 사람을 통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항상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그 마음을 받아서 하나님께로 예수님께서 올라가셔서 그 마음을 받아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우리는 매일매일 경건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것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이 교회로 살아갈 때에 그곳은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고 진리의 터정이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 교회에 속한 자들로서 어디에서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존재감을 [음악] 가장 먼저 느끼고 하나님의 좋으심을 가장 먼저 우리가 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리하여 경건함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항상 열매로 나타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찬송가 438장입니다. [음악] 438장. 내 영혼이 은총리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만은 이 세상도 [음악][노래] 천극으로 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삼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배던 하늘나라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삼 받고 [노래]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걸리나 내 주 예수 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삼받고 [노래]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멘. 다음 주에 속름 모임 있습니다. 우리 헬로권사님 오늘 제 기도 켜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내가 갑자기 죽는다는 것이 조금 흐려 가지고 마귀가 틈 죽기 싫어하죠. 이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니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지난주에 나와서 그 고백을 했어요. 그다음 어떻게 기도하라고 제가 기도문을 써서 보내고 그랬는데 그래서 갑자기 하나님 앞에 회개했어요. 상 기도하고 죽음의 문제를 넣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회개하고 기도를 했더니 그 모든 마음의 실름과 염려와 근심과 답답함과 불안함이 도망가고 그냥 속에서 막 평안이 고치고 막 힘이 쏘세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많이 회개했어요. 다르 죽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안 불러 가시려면 아직도 10년을 더 살게 누가 알겠어요? 하나님 불러가시려면 3개월 안에도 불러가셨어. 하나님이 불러가시는 것은 그분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부터서 여행 준비를 잘해야 돼요. 유럽을 여행 간다. 10박 11일로 뭐 성지 순례를 간다.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니까 내가 어 벌써 막 한 달 전부터 준비하고 열흘 동안에 해야 될 일은 미리 해야 될 것은 다 해 놓고 가고 내가 못 하고 갈 것은 부탁해 놓고 가고 준비 다 해 놓고 가잖아요. 그런데 다시 오지 못할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음악] 준비를 더 잘해야 됩니다. 그래 주 떠나는 디데이가 딱 오면은 여행 떠난 사람들 뭐 다 부러워잖아요. 아 누구는 크루즈 타고 뭐 여행 누구는 뭐 유럽으로 여행 누구는 어디로 여행 가는 거 보면서 나도 좀 갔으면 좋겠는데 다 그러잖아. 근데 왜 죽음의 여행은 나는 안 갔으면 좋겠냐? 평소에 준비가 안 돼서 계속 주님을 만나는 그 준비를 잘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이 주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전 여기에 다 죽임을 가불에다가 다 죽어 버린 사람들 주님 만날 준비를 잘하실 수 있기를 저는 우리 헬로 원사님 위해서 기도할 때 아무것도 하나님께서 불러가시려면 하나님을 충만하게 해서 기쁨이 넘치는 다음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갈 수 있게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더 아주 쓰실 일이 있어서 남겨 두실 것 같으면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그들 믿음으로 뻔하게 세우셨어요. 죽음을 이제는 이기고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살 수 있게 살려 달라고 하는 말을 잘 안 하나님 아셨으시 하나님 정하신 그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런 은혜를 누리실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이 하늘 영제도 이제 해복이 많이 해서 수는 이제 하나 남아놨어요. 하나만 세 개를 꽂아놨던 두 개 뽑아내고 이제 한 개만 남겨 놨으니까 곧 다물어지고 해복이 되고 부탁드립니다. 축도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청량할 길이 없는 그 영원하신 사랑과 오늘도 우리 가운데 성령께서 오셔서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를 교회로 세워 주시고 교회로 살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지는 복된 삶을 날마다 이루심으로 경건의 능력과 경건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시는 그 충만하신 은사가 하나님의 교회로 세상에 보냄을 받아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진리의 터전이 되고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도록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위해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음악]

스터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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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교회는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다.
  • 모든 성도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동일한 신분을 가진다.
  •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에 있다.
  • 우리는 어디서든 하나님의 교회로서 살아가야 한다.

나눔 질문

  1. 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통해 주신 역할은 무엇인가요?
  3.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4. 우리의 일상에서 교회의 역할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기도 · 묵상

하나님, 우리의 삶 속에서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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