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점이 삶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면 잠깐의 성공에 만족하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초점을 맞추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오늘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환경이나 외적인 것에 의존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영적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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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후서 4:18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빌립보서 1:21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빌립보서 1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 요한복음 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자라 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의 침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사명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
영원한 것에 투자하는 삶은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영원한 것에 쏟을 때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점이 바뀌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면, 일상 속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관점을 영원한 것으로 변화시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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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설교의 제목은 '새 관점을 주시옵소서'로, 다른 눈으로 볼 때 다른 미래가 열린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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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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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서 강조한 관점의 차이에 대한 예시는 무엇인가요?
남미와 북미의 발전 차이를 통해 관점의 중요성을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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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서 언급된 영원한 것들은 무엇인가요?
영원한 것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인간의 영혼으로, 이 세 가지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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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이 후에 강조한 관점의 중요성은 무엇인가요?
에디슨은 관점이 잘못되면 99%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하며 관점의 중요성을 재조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새 출발이라는 시리즈 설교를 제가 하고 있죠. 세 번째 시간, 새 관점을 주시옵소서. 다른 눈으로 볼 때 다른 미래가 열린다. 그게 오늘 설교 제목이 되겠습니다. 제가 이제 그랜 교회에 와서 시리즈 설교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새 마음을 주시옵소서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새 소명을 주시옵소서. 오늘 세 번째 시간은 새 관점을 주시옵소서.
첫 번째 시간에 제가 강조했던 것은 더 이상 우리가 환경 탓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환경 탓을 하면 아마추어다. 프로는 무슨 탓을 하지 않는다? 아기 탓을 하지 않는다. 예. 탓을 하면 그 사람 벌써 아마추운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꼭 옳은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위대한 일을 추구해라. 만약 예수님께서 옳은 일만 추구하셨다고 한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겠죠. 하지만 예수님은 위대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도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별 다섯 개짜리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줘야 그게 별 다섯 개짜리 교회이다. 건물과 프로그램으로는 안 된다. 사람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줘야 한다. 그 이야기를 제가 첫 번째 시간에 했고, 지난주에 우리 소명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을 때는 제가 사라의 이야기를 했죠. 사라. 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몇 살에 죽었다라는 죽음의 나이가 성경에 아주 예외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사라가 그렇게 큰 대접을 받았는가? 하나님이 크게 대접해 주신 거예요. 사라를 왜 그랬는가? 사람은 굉장히 평범한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하라고 했던 그 사명을 꼭 붙잡고 그 조그마치만 그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했기 때문에 그것 하나 때문에 사라는 하나님께 크게 칭찬을 받았다.
사도 바울은 큰 풍난 가운데 죽을 수 있었지만 결코 죽지 않았다. 왜? 사명 있는 자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사명은 가이사 앞에 로마 황제 앞에서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라도 그렇고 사도 바울도 그렇고 그들의 나이라든지 그들의 경력이라든지 세상의 평판으로 그들이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명으로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았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기독인은 몇 번 태어난다? 벌써 잊었어요. 세 번 태어난다. 첫째는 어머니 몸에서 한 번 태어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세례 받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 멈추면 안 되고 한 번 더 태어나야 하는데, 뭘로? 사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내 교회에 이렇게 앉아 있는가? 예. 내 사명은 뭔가? 그걸 잘 생각해 봐야 된다 그런 말입니다.
오늘 세 번째 시간은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왜 관점인가? 똑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요.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크게 다릅니다. 사람마다 결과가 달라요. 왜 그럴까? 그 원인이 많은 경우에 관점의 차이 때문에 결과가 달리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미가 더 살기 좋은 나라일까요? 북미가 더 살기 좋은 나라일까요? 물론 지금 발달했으니까 북미가 살기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원초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남미가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먹을 것도 풍부하고 그렇죠. 날씨도 좋고, 북쪽은 춥잖아요. 이렇게 벌써 먹을 것이 그렇게 풍부하지도 않고, 그런데 이상하게 북미는 잘 살고 남미는 못 사는 거예요. 그 이유에 대해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기자가 물었어요. 왜 남미는 북미보다 못 사는 것일까요? 그랬더니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그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남미는 스페인 사람들이 왜 남미에 쳐들어갔죠? 황금을 빼앗으려고 쳐들어가죠. 황금 때문에 남미가 개발된 것입니다. 남미가 그러면 북미, 미국은 뭐 때문에 개발되었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청교들이 옴으로 인해서 미국이 생긴 거예요. 간증과 출발이 다른 것입니다. 올바른 간증과 올바른 출발을 가지고 있으니까 모든 환경을 이겨내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룩한 것입니다. 미국을 이룩한 거예요. 내 황금에 눈이 멀어 가지고 황금을 위해서 길을 닦고 황금을 위해서 건물을 쌓았던 사람들은 결국 미국에 비해서 많이 뒤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관점이 중요하다. 그런 말이에요.
전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에디슨, 에디슨 발명왕이죠. 제가 이제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에디슨이 했던 유명한 말 있지 않습니까?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다 아시네요. 그럼 유명한 말이지 않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노력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노력만 하면 열심히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근데 내가 나중에 에디슨 전기를 읽어 보니까 에디슨이 84세에 죽었더라고요. 84세 죽기 2년 전에 82세 때 생일 날 에디슨이 또 의미 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처음 첫 번째 1% 비전이 잘못됐으면 그 관점이 잘못됐으면 99%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더라. 내 말을 좀 바꿔야겠다. 1%가 전부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인간의 유전자를 살펴보면은요. 98.77%가 침팬치하고 똑같습니다. 98.77%는 좀 반올림을 하면 99%죠. 99%가 인간하고 침팬치가 유전자 똑같은 거예요. 근데 단 1%가 인간과 침팬치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놀랍죠? 겉으로 보면은 어, 사람 다 똑같은 거 같지만 뭔가 1%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고 의미 있는 삶과 무미한 삶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여러분들 잘 아시는 세계적인 거부, 워렌 버핏 아시죠? 워렌 버핏은 지금 어디서 사는지 아세요? 그 사는 집이 신혼 때 구입했던 집에서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돈으로 할 것 같으면 세계 10대 부호 안에 들잖아요.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자기 신혼 때 살았던 집을 지금도 살고 있어요. 클린턴 대통령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세요, 여러분들? 우리가 항상 가는 덩킨 도넛, 도넛을 좋아해요. 클린턴 대통령은. 그럼 우리 클린턴 대통령은 뭘 좋아하는지 아세요? 뭘 마시는 거? 다이어트 콜라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 책상에 가 보면 빨간 벨이 있어요. 그 벨을 딱 누르면 비서가 다이어트 콜라를 딱 갖고 오는 거예요. 하루에 12캔을 마신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도 나의 콜라를 마시고 우리도 덩킨 도넛을 먹는 거예요. 다 똑같은 거예요. 먹고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TV를 봤더니 미국의 유명한 정치인이 넥타이를 매고 나왔는데 여러분 깜짝 놀랐어요. 제가 매는 넥타이하고 똑같은 거 매고 나왔어요. 야, 이게 먹고 살고 입는 것이 큰 차이가 없구나. 이게 겉으로 보면은 99%가 또 같아요. 근데 1%가 다른 것입니다. 그 1%는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그 내면에 있는 그 1%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1%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방황을 할 수밖에 없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그 1%가 무엇일까? 성경이 말하는 그 1% 그것이 바로 관점이다라는 거. 관점. 자, 오늘 본문 말씀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벌써 우리 구절을 세 번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암송하라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라고 제가 자꾸 같이 읽는 거예요. 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은 그런 말이에요. 우리의 관점은 사도 바울이 말할 때 관점이라는 것은 세상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크게 봤을 때 세상에는 두 개의 관점이 있는데 하나의 관점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 하지만 보이는 것. 눈으로 보여. 사실 그것은 잠깐 있다고 없어지는 것들이에요. 또 다른 관점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이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만 일시적인 것을 좋게 생각하고 그런 관점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고 내가 성공했는지 내가 실패했는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평가를 할 거 아니에요. 자기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때 아 내가 성공했다. 내가 실패했다라는 그 기준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잠깐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거예요.
다음에 어떤 사람들은 잠깐 우리 그랜 교회 예배를 틀어놨는데 스트리밍이 상당히 늦게 되네요. 보니까 아까 찬양하는 것이 지금 이제 나오고 있네 보니까 아 새벽 기도는 스트리밍이 늦게 나오는가 보죠. 새벽 기도 때도 새벽 기도 항상 6시 전강에 시작하는데 어찌됐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 기독인이 가져야 할 관점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 보이는 것 그런 것을 기준을 삼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 그것을 그런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근데 참 특이한 것은 뭐냐면 우리가 교회 와서 그걸 자꾸 배워요. 이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뒤를 돌아보면은 우리가 교회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교회도 외모, 교회 건물, 우리 교회 성도 수, 예산, 프로그램 그런 걸 자꾸 이제 우리가 생각하잖아요. 왜 그럴까? 물론 마음속으로는 그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자꾸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한다. 그런 말입니다.
저는 이제 제 딸이 두 명 있잖아요. 어제 지난주 와서 인사했잖아요. 우리 딸들은 손재주가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그림 그리고 물건 만들고 그런 걸 둘 다 그렇게 즐겨 합니다. 그래서 첫째 딸은 이제 미래를 가고 둘째 딸도 미래를 간다고 해서 절대 안 된다. 하나로 충분하다. 둘째 딸은 지금 이제 컴퓨터 전공해 가지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하고 있는데, 둘 다 이제 손재주가 좋고 만들기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이제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날이 되잖아요. 내 생일이 된다든지 아니면 뭐 파더스데이, 뭐더스데이, 뭐 그리고 뭐 크리스마스 되면은 애들이 카드를 사 본 적이 없어요. 카드를 항상 직접 만들어요. 직접 만들고 직접 손으로 쓰고 그 갖다 줘요. 참 기쁘죠? 내 어린아이들은 둘 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자세히 살펴봤어요. 근데 둘 다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뭐냐? 엄마를 주로 많이 그리는데 아빠는 별로 안 그래요. 엄마를 많이 그리는데 엄마를 그릴 때 얼굴이 한 1분 얼굴이 한 2분이고 몸통하고 손발은 조그맣게 그래요. 몸은 얼굴은 크게 그리고 그 얼굴 중에서도 엄마의 눈이 얼굴 전체 절반입니다. 눈을 크게 그려요. 왜 그럴까 여러분? 왜 그런 균형 감각을 잃고서 이렇게 그림을 그릴까요? 어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많이 쳐다보죠. 젖을 먹으면서도 엄마 눈을 쳐다보고 자꾸 엄마를 쳐다보는 거예요. 근데 엄마를 쳐다보더라도 코를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입을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눈을 자꾸 쳐다보는 거예요. 그 눈이 중요하다 생각되고 눈이 크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보면은 엄마의 눈을 크게 그려요. 그게 인간입니다. 자기가 보고 익숙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의지되어서 그것에 좌우돼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거예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은 세상 관점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어요. 왜냐면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나오잖아요. 교회 한두 번 나오잖아요. 우리 대부분의 시간 세상에서 보내잖아요. 근데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얼마나 가졌느냐. 얼마나 잘 입었느냐. 얼마나 잘생겼느냐. 그걸 가지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것에 익숙해져 가지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보다는 눈에 당장이 보이는 일시적인 것에 매몰되어서 살아간다. 그런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는 거예요. 그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영적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세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이 그걸 확신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냥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가슴으로 통감하고 정말로 신앙의 고백으로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1976년도 역사를 보시면 1976년도 미국에서 이제 그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제 뉴욕 타임즈에서 베스트셀러가 한 곳에 있었는데 그 책이 After Life라는 책입니다. 미국에서 최고로 많이 팔렸어요. 그에 1976년에 Life After Life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삶 이후의 삶, 그러니까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죽은 다음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책에 레이몬드 무디 주니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레이몬드 무디 주니어는 철학과 교수였어요. 근데 그 사람은 박사기 논문이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죽음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거예요. 죽음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그 사람의 주제였습니다. 그걸 가지고 이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에게 이렇게 과제를 내 주잖아요. 그럼 학생들이 과제를 갖고 오는 거 리포트를 갖고 오면은 그래서 쭉 읽어 보면은 꼭 몇몇 아이들이 우리 고모님이 죽었다가 갑자기 살았는데 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가 이틀 만에 살아나셨는데 뭐 그런 이야기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내가 이 문제를 한번 해결해야겠다. 진짜로 죽음 이후에 삶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확인해야겠다라고 결단을 하고 이 사람 대단한 사람이에요. 철학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부를 합니다. 그래가지고 의과대학에 다시 들어가는 거예요. 그 나이에. 그 의과대학에 들어가 가지고 공부를 다 맞추고 매드 딱 학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연구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3시간 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3일 만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 여러분들 이야기 들었죠?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150명을 직접 만나서 세밀하게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이 신빙성이 있는 거예요. 그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죽었다가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입니다. 인터뷰를 했더니 놀랍게도 그 150명이 거의 대동소하게 비슷한 경험을 한 거예요. 사람이 죽으면요. 사람의 혼이 빠져나갑니다. 그럼 자기가 병원에 병원 침대 지금 죽어 있어. 그 모습을 혼이 딱 보는 거예요. 혼이 빠져나가 있는 상태에서 그 혼이 어둡고 깊고 아주 길다, 길고 긴 어떤 터널을 통과한다라는 거예요. 한참 터널 통과하다 보면은 마지막에 아주 아름다운, 정말이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그런 아름다운 빛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 빛은 인격입니다. 인격. 그러니까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격인 거예요. 그 빛을 만났는데 그 빛이 첫마디 물어보는 것이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에게 보여 줄 만한 그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어본다라는 것입니다. 와삭하죠. 그다음에 그 빛 죽은 자가 함께 앉아 가지고 함께 자기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대기를 파노라마 영안을 보는 것처럼 쫙 본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걸 보면서 어떤 장면은 너무 부끄럽다는 거예요. 너무 자랑스러운 거예요. 내가 아무도 모르게 어려운 사람을 나도 어려운데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어. 아무도 모르게. 거기서 밝혀지는 거야. 야 그이 프라우드가 좀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 기뻐요. 근데 또 다른 경우에는 지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몰래 죄를 지었는데 그것이 거기서 다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겪어 가지고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인생 영화를 다 본 다음에 어떻게 하다가 이제 그들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이 땅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그 150명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큰 변화가 생겼는데 그들의 삶의 관점이 바뀌게 됐다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들의 관점이 바뀐 것은 아 하나님은 진짜로 신은 있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두 번째 죽음 이후의 세상이 꼭 있구나라는 것들을 알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도 이제 그들의 관점이 바뀌니까 자연스럽게 그 관점에 따라서 삶의 패턴도 삶의 방식도 바뀌는데, 그 전에는 죽기 전에는 아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까? 내가 50대, 60대가 될 때까지는 뭘 이루고 되다가 뭘 이루고 한 90대까지는 뭘 이루고 그러다 죽으면 되겠지. 그런 식으로 인생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죽음 이후에 세상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내가 죽음 이후에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잘 만날까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거예요.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우리의 눈이 바뀌고, 근데 어떻게 우리가 진실로 변할 수 있을까요?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아. 그렇죠? 뭔가 진실되게 살고 싶고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뭔가 영원한 것에 투자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를 않아. 왜 그럴까? 우리의 관점이 바뀌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관점이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럼 도대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세 가지가 영원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첫 번째 하나님이 영원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도 변하지 않으리라. 세 번째로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지면서 인간의 영혼은 계속해서 존재하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에 썩어진 육체가 부활하면서 부활한 육체와 영혼이 다시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 가지가 영원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영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정말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 정말로 내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살고 있지 않는지 그것을 알려면은 과연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시간과 리소스를 이 세 가지 영원한 것에 투자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 살펴보면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스스로가.
자, 하나님이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야겠죠. 그 만나려면 어떻게 합니까? 기도해야겠죠. 기도하고 하나님과 동행해야겠죠. 저는 우리 성도들이 교회 왔을 때 그런 생각이 든 적 없어요. 여러분들 아, 괜히 교회 왔네. 별로 한 것도 없이 그냥 집에 갈 때 허탈하지 않습니까? 저 젊었을 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모임이라든지 크리스천 모임에 가면은 뭐 별거 없어요. 근데 시간만 다 보내고 집에 가면 헛탈해요. 아이, 시간에 차례 책을 한 번 읽었으면 그런 생각이 막 드는 거야. 근데 인생이 흘러가면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또 성숙해 가면서 내가 알았던 사실은 뭐냐면, 교회 와서 절대로 후회 안 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교회 오고 무슨 일을 하든지 절대로 후회가 안 되는 시간, 그것은 기도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만큼 절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에요. 절대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아주 알곡 같은 시간이에요. 예.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하다고 그랬으니까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기도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고 그랬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큐티하고 배우고 공부하고 해야 하는 거예요. 그 시간도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세 번째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다 그랬죠.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잃어버린 영혼에게 있습니다. 그죠?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잃어버린 영혼에 있었던 거예요. 그 예수님 본받아 가지고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에게 관심을 갖고 그 사람에게 전화하고 친절을 베풀고 오해한 성도들 찾아가서 오해를 풀어 주고 하는 것, 그 시간이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시간이 아깝다고 그러죠. 그 시간에 차라리 가서 돈을 벌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 시간에 차라리 책을 한 권 읽으라고 그러고, 뭐 한국에서 그렇다는 말 들었어요. 한국에는 그 사람들은 절대로 교회 안 나온대요. 그 사람들이 교회 가면 부모들이 다 말린대요. 왜 그 사람이 교회를 가냐고 공부하라고 공부하라고. 근데 그게 아니에요. 영원한 것에 투자해야만이 우리가 어떤 보상을 큰 보상을 받게 되는데 그 영원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이 영원히 영원하기 때문에 내 그 세 가지에 내 인생과 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인생 헛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은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셨는지 그 이유를 아주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지 않고 에녹처럼 하늘로 데려가지 않고 우리를 이 땅에 두셨을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죠. 하지만 놓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들 자꾸 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성경은 질문해야만이 여러분들이 신앙이 깊어지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나를 에녹처럼 데려가지 않으실까? 왜 나를 이 땅에 두시는 걸까? 그것은 성경 읽어 보면은 크게 두 가지로 성경이 설명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이 땅에 남아 있는 이유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천국에 들어갈 자격 조건을 갖추는 거. 즉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self-control 같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면서 예수님 닮아가는 거예요. 그것을 신학적으로는 성화라고 합니다. 예수님 닮아가는 거.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인생을 정말 잘 살려면 작년보다 오늘도 예수님을 더 많이 닮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죠? 정 반대로 인생이 흘러가면서 자꾸 고집만 더 늘어나고 자꾸 말만 더 늘어나고 예수님처럼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인생을 거꾸로 살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 우리가 이 땅에 남아 있는 이유는 믿지 않는 자들을 믿게 하고 그들이 믿게 되면 그들을 양육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살아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부터 25절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는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데 무엇을 택해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네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이 성경은요. 어, 자기의 인생 수준, 인생 단계, 그 스테이지라 그러죠. 단계에 따라서 자기 레벨에 따라서 성경을 읽는 것 같아요. 제가 젊었을 때는 이런 구절이 와닿지 않았어요. 사실 이런 구절이 별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런 구절만 크게 나한테 와닿았어요. 근데 목회하다 보니까 목회하면서 산전 수전 다 겪잖아요. 이미 목회 쉽지 않잖아요. 딱 겪다 보니까 빌립보서 1장 말씀 이런 말씀을 읽으면요.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사도 바울의 현실은 녹록치가 않았어요. 오늘날에 우리가 사도 바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2000년 전에 사도 바울이 사역을 했을 그 당시에는 사도 바울의 사역이 굉장히 고비였습니다. 도전도 많았고 오해도 많았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몸은 약해졌지. 병들어 있었잖아요. 오해가 있었지. 박해가 있었지. 사역이 순탄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자, 중간에 보세요. 뭐라고 했습니까?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죽고 싶다라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 가지고. 이런 말 이해가 됩니까? 우리 이해가 될 때가 있어요. 힘들 때. 사도 바울 죽고 싶었어요. 그 정도로 힘들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고백하고 있죠. 내가 죽으면 나에게 유익이다라는 죽는 것이 나에게 유익이다. 왜? 아니, 지금 살아 있으면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는데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되기 때문에 천국에는 눈물도 없고 수고도 없고 힘든 것도 없고 고난도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 나에게 유익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잖아요. 죽는 것이 나에게 유익이다. 하자. 내가 죽지 않겠다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왜 그러면 주는 것이 유익임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겠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너희를 위하여 되죠. 너희를 위하여. 빨간 것이다 표시해 놨잖아요. 밑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나는 나만 생각하면 내가 죽는 것이 낫지만 예. 너희를 위하여 내가 참고 살겠다. 그런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뭐 그렇지 않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남편 이렇게 공경하면서 살았잖아요. 핍박도 많이 받고. 그래서 가끔씩 우리 어머니도 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어렸을 때 제가 그런 저한테 그런 말 한 적이 있어요.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 내 아버지 떠나 가지고 혼자 살고 싶은데 너희들 때문에 사는 거야. 그 말씀 그런 말씀 가까이 하셨어요. 그런 거예요. 사도 바울 죽고 싶은 거예요. 죽고 싶지만 죽지 않겠다. 왜? 너희 때문에. 자, 너희의 그 밑에 줄 보세요. 밑에 밑에서 두 번째 줄 보시면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내 믿음의 진보와 너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내가 살아야겠다. 그런 말입니다. 즉 너희의 믿음의 진보라는 것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전도했죠. 루디아를 비롯해서 그 죄인의 간수를 비롯해서 전도했습니다. 전도하는 것 끝나. 전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을 양육했죠. 항상 그리고 그들에게 기쁨이 되고 싶었습니다. 목회자가 사도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다 하나입니다. 보면은 다른 것은 다 똑같아요. 여러분 나라 목회자는 다 하나가 있습니다. 뭐냐면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거예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제사장의 역할이고 그게 목사의 역할인 거예요. 자꾸 여러분들 목사 기도를 많이 받으셔야 돼. 성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기쁨, 축복의 통로의 기쁨을 내게 주기 위하여 내가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3년 동안 공생애 하시면서 하신 일은 명확합니다. 전도하셨어요. teaching, healing. 설교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하면서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근데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은 뭐냐면 전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도한 다음에는 반드시 그들을 데리고 가서 양육하셨습니다. 3년 동안 제자들을 양육하신 것이죠. 전도와 양육. 즉 양육한다라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장성한 분량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이 될 정도로 그 겸손과 온유와 그 결단과 그 용기와 그 믿음과 그런 헌신 그런 것들이 예수님의 수준에 다르둬도 양육하는 것이죠.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나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그들 양육하고 결국 핵심은 뭐냐면 예수님의 관점도 사도 바울의 관점도 사람이다. 사람을 중요했다. 왜 사람을 중요합니까? 사람의 영혼이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보통 우리를 표현할 때 복음주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그 펀더멘탈리즘 근본주의자들도 아니고 우리는 복음주의자들입니다.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 차이인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는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근본주의는 세상과 결합니다. 산 속에서 살아요. 산 속에서 우리끼리만 사는 거예요. 하지 우리는 세상 속에 빛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복음주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랜 교회는 무슨 교회다? 복음주의 교회이다. 그 복음주의 가장 대표적인 미국의 목사가 누구일까? 아마 존 파이퍼 목사가 복음주의 가장 대표적인 목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 내가 한번 설교를 들었는데 그런 말씀 하신 적이 있어요. 참 인상적이었어요. 카멜론에 이제 아프리카 카멜론 아시죠? 아프리카 카멜론에서 어떤 두 백인 여자가 선교를 했습니다. 40년 동안 티몽을 이뤄 가지고 한 명은 의사고 한 명은 간호사예요. 근데 둘이 친구 가지고 같이 이제 결혼도 하지 않고 40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을 치유해 주는 그 카멜론에서 1, 2년도 아니고 40년 동안 사역을 한 거예요. 그 은퇴 나이가 훨씬 넘었습니다. 둘 다 80이 넘었어요. 그래서 그래도 은퇴하지 않고 일을 하는데 멀리 있는 어떤 사람이 아프다고 그래 가지고 차를 타고 이제 그 사람을 고치려고 그 사람에게 치유하려고 차를 타고 가다가 브레이크가 파열된 거야 차가. 그래 가지고 낭떨어져서 차가 굴러 떨어졌습니다.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보통 이런 경우 살아야 이제 스토리가 되잖아요. 하나님 보호하셨다며 그렇게 간증이 되잖아요. 근데 죽은 거야. 이런 경우에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때 불행하다, 아주 좀 상수로운 말로 하면 개죽음이다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게 근데 과연 그게 불행한 것일까요, 여러분?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정 반대의 사람이 있었어요. 리더리더, 이 잡지 아닙니까? 그 잡지에 소개된 부부예요. 이 부부는 조기 은퇴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비즈니스 하면서 돈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남편의 나이가 45세, 아내 나이가 41세, 굉장히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습니다. 돈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야 이제 드디어 우리 자위다 해가지고 그 돈을 가지고 플로리다로 이사 간 거야. 그 사기 좋은 플로리다로 이사가 가지고 거기서 큰 요트를 하나 산 것입니다. 요트를 타고 다니다 보니까 해변에 조개 껍질이 그냥 우리는 보통 조개 껍질만 생각하는데 아주 희귀하게 생긴 조개 껍질이 많대요. 그래서 그 부부가 취미 활동을 하게 됐는데 희귀한 정말 보기 힘든 조개껍질을 줍는 것이 그들의 취미가 된 거예요. 수훈한 5년, 6년, 10년 동안 그 조개껍질 다 모아 가지고 전시에도 하고 막 그런 거예요. 이게 근데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부러워하는 거야. 아,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빨리 은퇴하고 요트 하나 사 가지고 조개껍질 줍고 그런 생각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성공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데 과연 그것이 성공일까? 그것을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한 80년, 90년 살다가 죽으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어요. 빨리 은퇴하고 누리고 취미 생활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큰 성공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예. 근데 문제는 뭐냐면 죽음 이후에 세상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서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 앞에 섰어. 그 부부가 예수님 앞에 나갑니다. 예수님, 이것 좀 보세요. 우리의 평생 동안 모은 이 아름다운 조개껍질 보세요 하고 예수님에게 갖다 드리면 예수님이 이야 놀랍다.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그 조개껍질을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이 코숨 치실 것입니다. 브레이커가 파열돼 가지고 죽은 두 사람 예수님 앞에 서면 예수님 뭐라고 하실까요? 너 개죽음 했구나.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아니죠. 바로 여기에 우리 인생에 갈린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이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성공의 기준이 달라질 것입니다. 도덕의 기준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기준 자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예. 사도 바울은 내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 무엇을 보여 드릴까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9절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면류관, 하나님의 상이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내가 예수님 앞에 설 때 나는 두렵고 떨려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아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겠다. 그런 말이에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예수님 개념하실 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설까요? 아니면 두려운 마음으로 설까요? 사도 바울은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면류관을 기대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상을 상급을 기대한다고 그랬어요. 왜냐? 바로 너희 때문에. 내가 누굽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렵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죠. 물론 그들에게 한 4주 있다가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계속해서 그들에게 편지도 쓰고 하면서 그들을 돌봤죠. 자기가 전도하고 자기가 양육한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가 않았던 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번에 이렇게 파송이 돼 가지고 그랬는데 교회에 이렇게 오게 됐는데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어요. 굉장히 왜 이런 일이 벌릴까? 돌아서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의 섭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잖아요. 지금은 이제 다 셉트가 되고 기대가 돼요. 내가 앞으로 우리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 세울 것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여러분들을 잘 양육하고 얼마나 진실되게 인도했는가 그것 가지고 나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내 관점이 그렇게 바뀐다고 한다면 아이 교회가 어떻게 예사이 좀 더 많아져 할 텐데 성도 헌금도 많이 할 텐데 성도 좋은들도 많이 사람들도 데고 와야 할 텐데 그런 생각보다는 이미 기존에 있는 성도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진실되게 변하는가 그런 것으로 내 기준과 관심과 포커스가 바뀌겠죠. 예. 모든 것이 관점입니다. 관점.
벌써 한 30년 넘었네요. 제가 이제 미국에 유학 온 지 벌써 30년 넘었으니까 한 30년 전에 갑자기 이메일이 한 통 하여요. 그 당시 말로 이메일은 뭐 자주 교환하다 그런 시대가 아닌데 이메일이 왔어요. 그래서 이메일을 읽어 봤더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 이메일이 왔어요. 그 사람의 사인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직구했을 때 한 7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어요. 제가 7년 이제 여의도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처음에는 이제 그 삼입빌딩 관철동에서 있다가 이제 회사가 옮기는 바람에 여의도로 옮기는 바람 여의도에서 이제 일을 하다가 제가 미국으로 왔는데 저는 점심 시간이 되면은 점심을 빨리 먹었어요. 한 10분, 15분 만에 점심을 먹었어요. 그 무조건 여기도 광장으로 나갑니다. 그 전도하는 거예요. 무조건. 저녁에 집으로 퇴근할 때는 항상 영두포에 들립니다. 영두포에 들려서 전도예요. 여러분 영두포에 가면 누가 제일 많은지 아세요? 도 닦으세요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 전도하는 거예요. 이게 근데 전도는 이제 어떻게 했냐면은 그 뭐 뭐 예수님의 관심 있으십니까? 그래 물어보면 다 거부예요 사람들이. 그래서 아예 질문지를 만들었어요. 질문지. 예수님에게 관심 있습니까? 복음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성경 공부 해 보셨습니까라고 이제 전단 질문지를 돌리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잊지도 않고 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읽어요. 근데 대강 보면 그것도 놀라운 게요. 통기가 딱 나와요. 한 50장 돌리면은 한 명이 반응을 보입니다. 100장, 100명을 만나 가지고 돌리면은 두 사람이 반응을 보여요.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을 모아 가지고 그럼 성경 공부 나랑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또 그중에서 또 아주 소수가 성경 공부 한번 해 보십시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그런 사람들 꽤 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소통력 공부 한 일주일 뭐한 5주, 6주, 7주 하고 이제 헤어지면 또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이제 근데 그때 나에게 전도받았던 사람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거예요. 그 사회는 그렇습니다. 제가 이제 미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진 거예요. 그래 가지고는 그 사람이 실직한 것입니다. 여의도에 가면 중소기업 해관이라는 곳이 있어요. 중소기업 해관. 공공 기간인데 거기서 근무했는데 그 사람이 거기서 이제 강제 퇴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직장을 잃고 나서 마음이 어려우니까 갑자기 내가 생각이 났다라는 거예요. 아 그 사람한테 가면은 좀 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해가지고 날 찾아내 옛날 직장까지 찾아간 거예요. 그랬더니 아유 강건씨 지금 미국 갔다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벙 떴는데 마침 우리 직장에도 저와 함께 성경 공부했던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이 제가 다녔던 선교 단체 가입을 해 가지고 지금은 그 선교 단체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나한테 이메일이 온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여기서 이곳에 와서 선교에 관한 비전이 생겼습니다. 저 이제 중국 선교를 하겠습니다. 지금만 하더라도 중국 선교가 뭐 그 어렵지가 않은데 30년 전에는 중국 선교가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뭐 그 방해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 당시는 이제 명암을 아트 명암이라는 게 있었어요. 명암을 아주 팬시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 아트 명암 공장을 중국에 차려 가지고 그 중국 사람들 고용하잖아요. 고용한 사람들에게 이제 복음을 전하는 그런 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게 복음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연락이 왔어요.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와 홍콩한다 그러죠. 너무 기쁜 거예요.
여러분, 그런 말 있잖아요. 우리가 천국에 가면은 두 가지 때문에 놀란다. 두 가지 때문에. 첫 번째 놀라는 것이 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와 가지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이고 강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 어 왜 감사합니까? 옛날에 내가 어려울 때 날 위해 주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내가 자살하려다가 살았어요. 아유 또 인사해요. 누구십니까? 아, 나에게 복음 전해 주셨잖아요. 나는 복음 한 마디 전하고 잊어버렸는데 성령께서 그 사람 마음에 역사하셔 가지고 내가 한 마디 전한 복음을 가지고 그 사람이 구원받은 거예요. 그것 때문에 놀란다는 거예요. 천국에 가면 또 한 가지 놀라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천국에 가서 보니까 없는 거야. 아무리 없어도 김고사는 반드시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김고사가 없는 거야. 천국에 또 한 가지 논하는 거 천국에 가면은 어떤 사람들 예수님 만나서 그렇게 얘기한다라는 거예요. 예수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인사한다는 거. 교회 20년, 30년 다녀도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 경험이 없는 거예요. 말로만 듣는 거예요. 예수님 이렇다. 예수님 저렇다. 설교만 듣는 거예요. 내가 직접 예수님 만난 적이 없는 거예요. 천국 가 가지고 예수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결국 우리 예수님과 사도들의 관심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우리가 사람을 이제 우리가 사람이 영혼히 영혼하니까 그 사람을 전도하고 이끌고 양육케 하는 것은 사실인데 한 가지는 주의해야 돼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내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가 많이 실수하는 것, 실수하는 것 중에 뭐냐면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고 열심히 하는 이유가 내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교회에서도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 단임 목사죠. 근데 이게 다 내 사람이다. 끝까지 내가 끌고 와야겠다. 여러분들 막 머니필레이션 하고 하면 여러분 기분 좋습니까? 안 좋죠. 금방 눈치채죠. 에게 안 해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내가 돕는 것뿐이에요. 그런 것을 항시 철저하게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말씀 마무리합니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인생의 의미를 찾는 그런 기간입니다. 근데 학교를 졸업해 가지고 나이 40, 50, 60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가 뭔지를 모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도 인생의 학생인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아요. 우리 신앙생활 10년, 20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왜 내가 교회 다니고 있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뜻이 중요한 거 아니에요. 요한복음 1장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은 소리가 아닙니다. 소리와 말씀과 차이가 뭡니까? 의미가 말씀은 의미가 있는 것이고 뜻이 있는 것이고 소리는 뜻이 없죠. 근데 하나님은 소리를 지르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하신 것이죠. 항상 뜻이 있으시죠. 근데 내가 신앙생활 20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 그것을 아직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직도 신앙의 학생이죠. 하지만 희소식, 좋은 소식은 뭐냐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라도 오늘라도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관점을 바꿔 주시면 우리가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이 바뀌면요. 그때부터 우리의 선택이 바뀝니다. 항상 우리는 영원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죠. 이제 우리의 선택이 바뀌면 우리의 미래가 새롭게 열리는 것입니다. 모든 출발은 관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항상 영원한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영혼 그것에 집중해 가지고 영원한 것에 투자하면은 그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의 선택이 바뀌고 우리의 선택이 자꾸 바뀌다 보면은 우리 미래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뀐다라는 것입니다.
예. 우리가 이미 나 가지고 우리 인생의 전반부는 전부 성공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2S를 위해서 보통 산다고 그래. 2S가 뭡니까? Safety, Security죠. 그리고 Significance. 처음 오면은 일단 먹고 사는 거 무조건 먹고 살아야 돼. 뭐 다급 필요 없어. 먹고 살아야 돼. Security. 일단 생존, 생존해야 돼. 그러다 이제 먹고 살 만하면은 Significance, 사람들로부터 Respect,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고 좀 큰 소리 좀 내고 싶은 거지 이제 이 두 가지를 추구하면서 살아요. 그게 인생의 전반부입니다. 너나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이미 오면 힘드니까 그걸 추구하면서 살아요. 그걸 인정합니다. 또 이해도 돼요. 근데 우리가 인생의 후반부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성공을 추구하면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후반부는 영원한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죠. 죽음 이후를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죠. 예수님 앞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설 건지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죠. 아멘하십니까, 여러분?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환경을 바꾸시기 전에 제 관점, 제 눈을 바꿔 주시옵소서. 잠깐 있다가 사라질 사라지는 것들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에 포커스를 맞추게 하여 주시고 항상 내 생각이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까 그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 남은 생애를 영원한 것, 세 가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영혼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쓰는 그런 인생을 살다가 죽게 하옵소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그런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핵심 정리
- 우리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 관점의 차이가 우리의 미래와 결과를 결정한다.
- 하나님과의 관계, 말씀, 영혼에 투자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다.
나눔 질문
- 현재 내 삶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무엇에 더 집중하고 있는가?
- 관점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볼 수 있을까?
-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시도할 수 있을까?
- 우리의 삶에서 영혼을 돌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매일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어 보세요. 또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위해 하루에 한 가지 작은 실천을 해보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저의 관점을 새롭게 해 주시고, 영원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또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