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자신을 잡으려는 의도를 아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세상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을 우선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20장 19-26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한 책임을 되새깁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상기시키며,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삶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이번 주 설교와 6일 QT를 메일로 보내드려요. 무료이며 언제든 수신거부할 수 있습니다.
메일 하단의 수신거부 링크로 언제든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하셨다면 메일 속 링크로 여시면 바로 열립니다.
- 누가복음 20:19-26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 마태복음 23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출애굽기 28 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4.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5. 그들의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6.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7.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하고 8.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지며 9.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12.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께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 정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15.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16. 장광이 한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매 보석에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3.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24. 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25.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26.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27.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28.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29.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31.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32.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 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하고 33.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간격하여 달되 34.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35.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36.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전면에 있게 하라 38.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39.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드고 띠를 수 놓아 만들지니라 40.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41.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42.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43.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 마태복음 22:15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 마태복음 20:15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마태복음 17:24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 고린도후서 4:4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통해 진리를 왜곡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진리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묻고,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질문하고 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그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
오늘 설교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와 소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서기관들은 본래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나요?
서기관들은 원래 성경을 필사하고 연구하여 법을 해석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
대제사장이 로마의 총독에 의해 임명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제사장은 로마의 총독에 의해 임명되어 폭동을 방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을 잡고자 했던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두려워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들은 백성의 폭동을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잡으려 했습니다.
-
설교에서 언급된 '정탐꾼'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정탐꾼들은 예수의 말을 책 잡기 위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매수된 자들입니다.
한번 더 하시죠. 날도 더운데 항상 옆에 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보니까 지난주 보자는 좀 덥네요. 그렇죠?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남녀가 함께 모였을 때 남자들이 하면 안 되는 이야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1번째는? 군대 이야기.
2번째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군대 이야기도 안 되지만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 남자들은 끊임없이 평생을 군대 얘기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빠지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이 경험한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특별한 경험을 군대 안에서 하는 거겠죠. 완전한 통치, 또 완전한 소속. 그래서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서 한 소속 아래 한 통치 아래 모든 것을 함께 먹고 또 함께 자고 함께 입고 함께 나눈다는 것이 참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속해져서 또 국가를 위해서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저녁 이전까지 휴가를 가도 그의 모든 삶 전체는 군대에 소속된 통치 하에 살아간다는 것이 참 특별한 만남이죠? 교제죠? 또 나눔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얘기를 하는 거겠죠.
저도 한 가지 군대 얘기를 하겠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요. 제 이등병대인데 연병장이 아침에 점호를 위해서 대대 전체가 모이게 됩니다. 일 중대, 이 중대, 3 중대, 사 중대 다 함께 모여서 점호를 하는데 제가 이등병대인데 저희 부대에 가장 말년 병장이 있었어요. 이 말년 병장이 항상 제일 늦게 나갑니다. 근데 나갈 때 혼자 나가면 되는데 꼭 저를 옆에 끼고 이렇게 나갔어요. 저의 어깨 동무를 이렇게 하고 연병장이 가장 늦게 이렇게 가는데요. 멀리서 보니까 다 모여있는 거죠. 그때 저를 쳐다보면서 그 말년 병장이 했던 그 소리가 지금도 악몽을 꾸곤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야, 저 사람들 다 보이냐?"
"보입니다. 쟤네들 다 가야 네가 간다." 그게 눈으로 보니깐요. 얼마나 끔찍하던지 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사람들 진짜 다 가야 내가 가는구나.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군생활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가끔 그 목소리에 악몽을 꾸고 갑니다. 그만큼 싫지만 그만큼 어쩔 수 없는 그 소속 안의 시간들, 경험들을 보내게 되죠. 오늘 그 소속 소유, 통치에 대한 이야기의 말씀을 함께 좀 나누기 원합니다. 단순한 동전 하나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 동전 속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완전한 소속, 또 진정한 나라 그 통치가 무엇인지 말씀 안에서 함께 나누는 시간 되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 시작은 두 그룹을 특별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9절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비유를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두 그룹이 등장하죠? 1번째는 서기관들과 2번째는 대제사장들입니다. 서기관이 누군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바벨론 포로 시기에 서기관의 역할로 새롭게 세워진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래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망했지만 다음 세대는 이렇게 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만들어낸 서기관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성경을 필사했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구약 시대의 이 율법서가 인쇄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다 굉장히 정성스럽게 아니요 생명을 다하여 그것을 필사하여 옮겨 적는 자들이 서기관이었죠. 그런데 그냥 적다 보니 조금조금씩 연구하게 되고 연구하다 보니 조금조금씩 해석하게 되고 해석하다 보니 조금조금씩 가르치게 됐죠. 처음에는 썼지만 그다음에 연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점점점 이것이 발달되어 율법학자가 되었고 이 학자가 사회 전반 전부 다 헌법학자, 법 전문가로 완전히 서게 됩니다. 그들은 그 전체 지역의 기득권화 자리에 오르게 되죠. 처음에는 그냥 쓰는 사람이었으나 점점 시간이 가면서 가장 중요한 중심의 법을 집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를 이야기하죠. 구약이 이야기하는 613개의 구약의 명령, 그 계명의 해석들을 실제 삶 가운데 얼마큼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이 해석하기도 쉽지 않았고 기준을 잡기도 쉽지 않았죠.
안식일에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안식일에 얼마큼 가난한 자를 돕고 또 연약한 자를 치료해야 하는가라고 하는 것은 그 범위에 있어서 적용 부분이 해석에 달랐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한 삶의 중심이 되게 됩니다. 그들의 이 율법적 기초가 결국 위시어나 탈모드로 만들어져서 지금까지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들의 영향력을 내고 있는 서기관의 출발입니다. 그 서기관들입니다. 서기관에 대해서 예수님은 딱 한마디로 정리하셨습니다. "삼가하라." 그 얘기가 뭡니까? 경계하라, 조심하라, 멀리하라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직접 그들에게 마태복음 23장을 통해서 "화 있을진저"를 연속 7번을 사용하시게 됩니다. 7번이라는 것이 완전한 숫자를 이야기하는 거죠.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심판이 따로 있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그들의 계산이 내가 보고 있는 그 심판의 진노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예수님이 먼저 진노로 선포하시는 자들의 그룹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필사가 잘못된 겁니까? 말씀을 소중히 여겨 다음 세대까지 말씀을 전하고자 애쓴, 정성스럽게 생명을 다한 그 행동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 말씀 안에서 연구하고 묵상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가르치는 일이 잘못된 겁니까?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경할 수 없는 화 있을진자를 7번이나 박아버리는 그 대상자가 됐다는 것은 딱 하나의 이유입니다. 다름 아니라 왜곡 때문입니다. 왜곡. 이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모릅니다. 왜곡.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율법 사회를 그들이 연구했지만 그 모든 것 안에서는 한 가지, 한 방향 원웨이 진리를 이야기하죠. 그거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대로 가르치고 연구하고 묵상하여 적용하게 그 진리 안의 평강, 그 은혜를 가르쳤으면 됐는데 그러지 않았죠. 그들은 그냥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고 전통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율법적으로 그 모든 것을 규칙화, 질서화시켜버렸습니다. 스스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은 그걸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의 탐욕에 빠져 있었고 또한 실제적으로 자기들은 지키지도 않는 일을 율법 그 이상의 조항들을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완전히 옥죄어버리는, 억압시켜버리는 그래서 삶 가운데 떡 한 개, 밥 한 개 먹고 싶어도 그 율법을 적용하지 않고 손을 씻지 않고는 밥, 그 떡 하나도 못 먹게 만드는 일을 삶 가운데 왜곡으로 적용시켰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원든 원치 않든 그 사회 지역 안에서 종교의 지도자, 기득권자 안에 속한 자들이 되게 됩니다.
2번째는 대제사장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제사장 중에 최고이죠. 대제사장입니다. 이 사람들 처음에는 어떻게 됐죠?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했고요.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렸던 자들입니다. 제사를 드렸던 자예요. 지성소에 들어갔던 자들을 이야기해요. 출애굽기 28장 1절 이러한 고백이 있죠.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들의 아들들이 납다와 나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마를 그와 함께 내게로 데려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분명히 말씀하신 겁니다. 레위지파여야 돼요. 그리고 아론의 직계 후손이어야 돼요. 이게 제사장인데요. 그 제사장도 사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종신형입니다. 그냥 명하시면 은퇴 없습니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한 명입니다. 아론의 직계 후손으로 계속 세습되어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윗 시대로 와서 그 수많은 제사장들 때문에 조직화할 수밖에 없어서 24개 반열에 만들어 놓게 되죠. 그래도 그런 반열에 조직을 갖췄어도 그때 다윗의 시대 때도 대제사장은 여전히 한 명이었습니다. 분명히 제사장은 한 명이어야 되는데 제사장들이라고 하는 복수를 사용하게 되죠. 그 얘기는 여러 명이 있다는 거예요. 왜요?
이제 예수님의 시대에 가장 큰 변화가 여기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대제사장이 아론의 직계 후손으로부터 세습대역 종신직으로 가야 되는 하나님의 명령을 뒤집고 어떻게 됩니까? 대제사장이 로마의 총독에 직접 임명받게 됩니다. 누가 뽑아요? 로마에서 뽑습니다. 총독으로 인해 임명직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임명도 할 수 있지만 다시 반대로 이야기하면 해임도 할 수 있습니다. 뽑을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 모든 권한, 그 권한을 로마 총독이 갖고 가게 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기간이 짧았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로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야바, 가야바의 임기 기간이 18년이에요. 욕 아닙니다. 18해예요. 이거는 굉장히 긴 해예요. 보통 짧게 하는데 그 해를 그렇게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죠? 로마에게 잘했다는 거예요. 총독에게 잘 보였다는 거예요. 그 안에 유대관계를 잘 맺었다는 이야기예요. 대제사장도 실제로 그래서 뽑을 때 진보적인 성향, 친로마적인 성향의 사두개파 안에서 출신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만 나에게 잘 보일 사람들, 또 내 명령에 잘 순종할 사람들로만 대제사장을 로마 총독이 뽑게 됐죠. 그걸로 구성돼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서기관들도 또 대제사장들도 그래서 자기 기득권을 오래오래 유지해서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맡겨진 지역 안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거 1 때문에 맡겨준 거예요. 그거 1 때문에 돈 주고 산 자리도 있지만 그거 잘하라고 총독이 신신당부한 일이에요. 그래서 이들이 가장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누굴까요? 당연히 자기를 임명할 수 있는 로마의 총독이겠죠. 그러면 가장 무서워하는 자가 그렇다면 두려워하는 자는 누굴까요? 폭동을 일으킬 수 있는 백성들입니다. 실제의 삶은 그들을 무시했죠. 그들은 백성을 무시했습니다. 사람 취급해주지 않았죠. 항상 자기 밑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죠. 그런데 그 백성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의 폭동은 무서워했습니다. 그 폭동에 지금 그 중앙에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입니다. 예수로 인해 자기 밥그릇이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예수로 인해 자기가 여태까지 쌓아왔던 커리어가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예수로 인해 이 폭동으로 자기의 자리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명조차도 죽을 수 있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절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마음은 즉시 잡고자 했습니다. 저 위험인물 빨리 촉이 지나 봐요. 죽여버리는 것이 상책인데 잡아 죽이고자 하여도 지금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고 열광의 소리에 함께 있는 그 백성들의 폭동이 무서우니 직접 잡아서 그 폭동이 확산되는 일을 두려워하였다는 거예요. 백성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의 폭동을 두려워하였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총독도 사람이야, 백성도 사람이야. 함께하는 그 모든 사람. 실제로 삶을 백성을 무시하면서도 백성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그 자리에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해봤을까?
선생으로, 랍비로, 한 어떤 선지자의 예로? 아니요. 메시아로? 정확히는 관심 없습니다. 자기 자리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가 누구든 그게 랍비든 선생이든 메시아든 무슨 상관 아닙니까? 내 자리가 중요한데, 내 입에 지금 풀칠하는 게 중요하지 그가 어떤 역할로 이 땅 가운데 왔는지 그냥 나에게는 유일하게 위험한 인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자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했다고 이 장면이 너무너무 슬픈 이야기예요. 너무너무 슬픈 장면이에요. 화가 나는 장면이 아니라 슬픈 장면이에요. 왜요? 일평생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드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지성소의 은혜를 경험하고 또 말씀을 쓰기 위하여 몸을 그 수십 번, 수천 번 씻어야 하며 여호와의 여 자도 부르지 못해서 그 이름까지 까먹을 정도로 소중히 여겼던 알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고 가르치고자 하고 드리고자 하고 함께하고자 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가 직접 눈앞에 있는데 그를 즉시 잡고자 죽이고자 하였다는 이 장면은 너무나 슬픈 장면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리고 이제 실제 그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 그리스도가 내 앞에 계시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무서운 이야기, 더 안타까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 일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나의 안위를 위해서 나만을 위한 예수가 필요했다면 나의 안위를 위해서 그 예수는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바로 이전의 비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19절에서 이야기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였습니다. 종을 보내고 또 종을 보내고 또 종을 보내고 마지막 심지어 아들까지 보냈던 그 모든 것을 죽여서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했던 그 예화였잖아요. 그것은 그 당사자 죽이고자 한 자가 누군지를 들춰내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종을 끊임없이 계속 보낸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 보내면서 회개의 기간을 주었던 잘못된 오해를 수정하게끔 그 관계의 시간을 벌어주었던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지 그것을 누가 죽였냐고 하는 그 잘못된 증거를 들춰내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긴 줄 알고 자기에게 말한 건 줄 알고 오해하며 여전히 자기 안에 갇혀 있어서 결국 자기를 위해 예수를 죽이는 가장 먼저 손을 쓴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고도, 듣고도, 알고도, 기다리고도 그를 인정하고 그를 섬기며 그에 속한 것을 고백하면서도 결론적으로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선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였을까요? 즉시 못 잡으니 20절 이에 곧바로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 넘기려 하여 정탐꾼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 잡다. 정탐꾼을 보내게 되죠. 어떻게 해요? 엿보다가. 엿보다 참 재밌는 단어죠. 이게 합성어거든요. 팔아테래요, 팔아 곁에서 테래요, 지켜보다. 중요한 건 위치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다도 아니고요, 숨어서 바라보다도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 곁에, 옆에서, 엿봤다. 뭐 하고자? 넘기고자. 누구에게 넘기고자? 그런 총독의 다스림과 총독의 권세 아래 넘기고자 자기들이 속한 것, 자기들이 속한 것을 드러내며 가장 두려워하는 자에게 이젠 예수마저도 가장 가까이에서 넘기고자 하였다. 왜요?
실제로 사형권이 로마에 있잖아요. 죽이려면 그것까지도 허락받아야 돼. 그들은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율법 아래 갇혀 있었고요. 정치적으로는 로마 앞에 갇혀 있습니다. 그냥 숨 쉬는 거, 살아내는 거, 밥 한 번 먹는 거, 사람 한 명 임명하는 거, 해임하는 거, 세우는 거, 무너뜨리는 거 그 모든 것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진리의 자유가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다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그것도 잘못된 통치 아래예요. 나의 생명하는 그 모든 것을 지금 누가 지고 있는지. 그래서 그에게 예수까지도 팔아 넘기고자 정탐꾼들을 보내게 됩니다. 정탐꾼, 결국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매수당한 자들이겠죠. 예수는 즉시 못 잡으니 어떻게 했다고요? 다시 한번 보시면 예수를 못 잡으니 예수의 말을 책 잡았대요. 예수는 즉시 못 잡아요. 자기 밥그릇 때문에. 그런데 예수의 말은 책 잡아서 넘겨서 죽이고자 했다는 거예요. 누구를 통하여? 서기관과 대제사장은 뒤로 숨습니다. 보이지 않아요. 이젠 그에게 매수당한 정탐꾼들로 인하여 기가 막히죠. 자기 스스로는 언제나 그래서 의로운 척하죠. 자기 스스로는 언제나 그런 척 자기는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의 계략들은 더 악랄합니다. 그것이 더 발전되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이렇게 말을 잡는다는 게 뭐죠? 말 꼬투리를 잡아서 질문하는 자를 경계하십시오. 여러분을 즉시 죽이지 못하지만 여러분의 말 꼬투리 잡는 자가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한 가지 권면하기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십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중에 한 가지가 말 꼬투리 잡는 겁니다. 지금 양심의 가책이 다 느끼시는 분들 많겠지만 하지 마십시오. 그거 습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거 좋은 거 아닙니다. 선한 거 아닙니다. 그거 잡는다고 자기의 의가 드러나는 일도 아니고요. 회복의 일도 아니고 은혜를 나누는 일도 아닙니다. 그냥 꼬투리 잡는 겁니다. 그 안의 의도, 그 계략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왜 잡으려고 했는지, 무엇 때문에 잡으려고 했는지 그 본심과 시작을 하나님은 아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진짜 두려워했다면 사람의 말두리를 잡지 않습니다. 안 잡게 되어 있습니다. 정탐꾼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정탐꾼들이에요. 중요한 건 여기에 복수예요. 여기도 그래요, 정탐꾼들이에요. 그러면 이 정탐꾼들, 아주 독특하게 신학에서는 여기에만 사용된 나눠예요. 복수 형태로 이루어진 이 정탐꾼들은 누구와 누구를 이야기하는 걸까요? 마태복음 22장 15절에서 16절에 그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에 올무를 걸리게 할까? 상의하죠. 상의합니다. 그냥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상의하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자기의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여기의 제자들이라는 게 바리새인의 제자들이에요.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지금 헤롯 당원들과 어떻게 해요? 함께 보냅니다. 그 정당꾼들은 두 부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근데요, 여러분 너무나 아이러니한 건 이 둘은 서로 친하고 싶어도 친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서로 무시하는 관계입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가까이하기도 싫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둘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는 그냥 빨간색, 파란색입니다. 안 됩니다. 합쳐질 수 없는 색깔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해요? 함께하지요. 왜요? 누구를 잡기 위하여? 예수를 잡기 위하여요. 자기의 신념도 자기가 중요하다고 하는 가치도 절대적 가치도 자기의 신분의 입장도 색깔도 전부 다 바꿔버릴 수 있는 그 유일한 힘이 무엇입니까? 돈. 매수당하면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다이긴 정치? 가치, 신념, 종교 다 돈 앞에 무너집니다. 시키면 다 하면 돈 되는 일은 다 하면 양심의 센시티브함의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가 눈앞에 있고 바리새인이 누굽니까? 그것을 가르친 자였잖아요. 예수를 가르친 자도 한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연합될 수 있습니다. 돈이면 다 묶을 수 있습니다. 매수당하면 친구도 원수 되고 원수도 친구 되는 겁니다. 오늘의 우리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옆에 한번 보세요. 조심하세요. 옆에 사람이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사두개파든 서기관파든 바리새인파든 대제사장파든 헤롯당원파든 로마든 유대든 모든 기관, 모든 관계, 모든 역할에서 오직 한 것만 위하여 연합되게 됩니다. 딱 한 가지 유형, 뭡니까? 예수를 죽이고자입니다. 예수를 죽이고자 기가 막힌 연합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그리고 말을 책을 잡기 위해 꼬투리를 잡아서 넘기기 위한 고민의 시작이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백성들은 열광하고 있습니다. 소리치고 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왕"이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왕을 삼고자 하였음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무서운 건 뭔지 아세요? 눈이 멀어서 예수님을 자기 왕으로 삼고자 아무것도 의미도 모른 채 소리치고 있는 백성들이나 그 뒤에 숨어서 돈으로 매수되어 어떻게 하면 눈이 멀어서 저 예수 잡아죽일까 하는 종교 지도자나 창과 방패로 만납니다. 무지한 백성이나 무지한 기득권자나 종교자나, 정치자나 모두가 결국 나중에 다 연합돼서 한목소리를 외치죠.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 전부 다 예수님 빼고 모든 이가 똑같은 목소리를 내죠. 백성이든 제자든 성도든 로마이든 기득권이든 가난한 자든 누구든 다 전부 한목소리를 내죠. 죽이라고. 완전히 이 땅에 취해 있고 완전히 이 땅에만 속해 있는 그들의 시선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언제든지 하나로 연합되어 오직 예수를 죽이고자 한 일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오늘도 여전히 이때 그 책 잡고자 그들이 연구하여 21절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는 줄 아나이다." 단어만 들으면요, 태도만 보면요 그리스도의 제자 같아요. 돈으로 매수당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에요. 고백이 아니에요. 인정이 아니에요. 훨씬 더 제자보다 그럴싸한 인정이 있어요. 훨씬 더 제자보다 추정자처럼 따르는 자이처럼 인정하는 자이처럼 고백하잖아요. 그런데 이 고백은 위장된 고백입니다. 위장된 고백, 의도가 있는 고백, 의도가 있는 칭찬, 의도가 있는 인정. 결국 그렇게 해서 그렇게 존중하는 척, 인정하는 척, 칭찬하는 척해놓고 결국 마음 사로잡고 마음 없고 경계 풀어놓고 가까이 접근해서 그리고 뭐 하기 위하여? 말 꼬투리를 잡기 위하여 질문하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밑바닥에 깔아놓은 일들이예요. 매복이죠. 그리고 그들이 "물어 이르되" 그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물어 이르되 우리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물어 이르되 이렇게 해서 쭉 인정을 하고 뭐라고 고백합니까?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까 옳지 않으니까 옳으냐 옳지 않냐 맞냐, 틀리냐?" 앞에 쭉 깔고 결국은 옳으냐, 옳지 않냐?
저도 목회 현장에서 이 질문 많이 받습니다. "목사님, 이게 옳아요, 옳지 않아요? 이게 맞아요, 틀려요?" 처음에는 은혜 받았다, 목사님, 대단하시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질문하죠. "이것이 옳이냐, 옳지 않냐?" 어려운 질문 아니잖아요. 언뜻 보면 굉장히 쉬운 질문 아닙니까? 그냥 양자택일하면 돼요. 옳은 거 옳다고 이야기하면 되고요. 옳지 않은 거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면 돼요. 그런데 안 하시죠. 자, 오늘 주제가 드러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니라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이었으면 세금, 돈 얘기 이야기합니다. 돈. 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그 돈. 정당꾼이 합세하죠. 연합군답게 바리새인 제자답게 헤롯 당원들답게 그들이 그렇게 모여서 기도하며 금식하며 상의해서 얻어낸 그 질문, 아주 예리한 질문, 쉽지 않은 질문. 여기서 세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포로스입니다. 이 3 이상 반드시 내야 하는 인도세의 세금, 택스. 유대 당시 사회 안에서 이 세금의 문제도 핵심 이슈였습니다. 지금 이것이 화두예요. 왜요? 단순히 그냥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세금을 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의 입장으로서 이방인의 주권의 통치에 순종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 이것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옳으냐 옳지 않냐. 사회적 이슈가 있는 이야기예요. 주님도 아셨죠, 이 얘기를?
만약에 주님이 내는 것이 옳다, 맞다라고 이야기하면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배신자가 됩니다. 배반자. 반대로 내면 오는 것이 옳지 않다.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 입장에서는 불법화가 되죠. 이 꼬투리를 잡기 위한 거예요. 이렇게 얘기해도 잡히고 저렇게 이야기해도 잡히죠. 다 걸리지요. 그런데 주님은 이 질문 어떻게 하면 간단한 이 질문 앞에 즉답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것이 옳다, 바로 그것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23절 누가복음은 관계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마태복음은 악함이라고 했어요, 악함. 그 질문 속의 악함을 아시고 마가는 그 질문 속의 외식을 아시고 누가는 관계를 아시고 주님은 다 아시고 그들은 숨긴다 했지만 숨긴 것처럼 스스로는 여겼겠지만 다 아시고 24절 데나리온 하나를 네게 보이라. 그 세금 한 데나리온을 나에게 갖고 와서 보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화폐인 세겔이 있는데 그건 성전세 내는 세겔이고 지금은 인도세를 내는 그 당시에 로마에서 통용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달러 같은 이 데나리온 하나를 네게 보이라. 제가 이 데나리온을 사려고 일주가 엄청 고민했어요. 알아보고 찾아보고 생각보다 이게 은화잖아요. 비싸요. 제가 찾으려고 했던 건 사려고 했던 건 커피본 가짜 하나를 사려고 했는데 한 군데를 찾았어요. 그래서 시켜놓은 딜리버리가 오늘까지 못 와서 여러분에게 못 보여 드릴게요. 그래서 제가 사진으로 준비했습니다. 사진, 요거요, 요렇게 생겼어요. 얼굴에 모습이 있고 저 종려나무 가지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있죠. 저 왼쪽 얼굴 형상 있는 그림에 글로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티 카이사르 디비 아우구스티 필리우스 아우구투스." 뜻은 신의 아들이다. 얼굴에 영상을 넣어놓고 글을 통하여 신의 아들이다라고 이야기해놓고 저 옆에 폰티펙스 박시우스, 최고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 이 2가지의 동전 앞뒤가 있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역질문하신 거예요. 24절 데나리온 1 네게 보이라. 그 질문에 답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역질문으로 이렇게 보여주시면서 이야기하신 거예요.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왜 황제가 로마 입장에서 저렇게 자기 얼굴을 박아놨을까요?
자기의 힘을 과시하려고? 아니에요. 한 가지죠. 그 모든 것을 신격화하기 위함입니다. 신격화하긴 상징이에요. 그래서 제사장이라는 말 쓰고 신이라는 말을 쓰고 어떻게든 모든 형상에 박아서 이것이 사용되는 모든 곳에는 나의 소속, 나의 통치, 나의 나라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잖아요. 다른 말이라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래서 나는 고로 뭐다? 신이다. 신격화, 신의 상징.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말씀을 하시죠. 25절 우리 다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여러분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세금도 잘 내고 헌금도 잘 내고 너희 살기 좀 뻑뻑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내 건 내야지 납세의무와 헌금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하는 문장만 들으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요 아쉽게도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는 생략된 단어가 한 가지 그 중앙에 들어갑니다. 가히, 그리고 또는 그러나. 오늘 말씀은 후자, 그러나로 사용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나로 읽으면 이렇게 읽어야 해요. 25절 만약에 납세의 의무, 헌금의 의무였다면 그러나를 늘 필요가 없습니다. 양쪽 다 잘 내게 하면 되죠. 그런데 이 그러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옳고 옳지 않고 맞고 맞지 않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런 입장의 근본적인 질문 팩트 1 다시 한번 해볼까요? 가이사의 것이 가이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그냥 동전 얘기해볼까요, 저거?
저 동전 누구 겁니까? 은화잖아요. 저 은화의 재료가 누구 겁니까? 원래대로 하면 누구 겁니까? 어려워요? 여러분 은 만들어 보실래요?
누구 겁니까? 모든 재료가 누구 겁니까? 하나님의 거예요. 제가 한번 예전에 예화로도 말씀드린 적 있잖아요. 과학자가 이 땅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일을 연구하다가 결국 성공하게 됐대요. 하나님 앞에 가서 자랑한다고 흙으로 사람을 짠하고 만들었더니 하나님이 하신 말씀 왈 "야, 네 흙으로 해야지." 흙조차 못 만드는 인간. 그 원재료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거예요. 이게 옳은 거예요. 이게 진리고요. 이게 하나님입니다. 근데 우리는 다 양쪽으로 나눠버리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 내 것은 내 것. 네 것 네 것, 내 것 나누면 쉬워져요. 이제부터 나의 역할이 일부러 섬겨지면 되니까요. 계산이 참 쉬워지죠. 오늘 우리가 한 데나리온 이야기하고 있어요. 한 데나리온 하면 여러분 생각나는 포도원의 비유 기억하시죠? 아침에 6시, 9시, 12시, 3시, 5시 끊임없이 가서 일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살리고자 그 놀고 있는 아니 죽을 수밖에 없는 그 현장 가운데 찾아가서 은혜의 약속으로 주셨던 그래서 그 모든 시작이 기쁨과 감사로 출발했던 것이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고 배분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더 많이 받을 줄로 생각하고 그들이 하였던 것은 원망이었습니다. 원망. 왜요? 왜 원망이 이루어졌습니까? 약속은 약속이고 노동은 노동고 대가는 대가고 계산은 계산이죠. 하나님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가 다른 거죠. 너무 불편하죠.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이렇습니다. 그건 그거죠. 이건 이거고 옳고 그름 따지죠. 맞고 틀린 거 따지죠. 그리고 그때대로 안 되면 원망하죠. 원망합니다. 감사가 사라지죠. 그리고 말책을 잡기 위해서 정당꾼의 역할을 자진하여 들어가죠. 가장 가까이서 가장 인정하는 척하면서 가장 잡아 넘겨주고자 이때 고백하잖아요. 우리 기억하십니까?
마태복음 20장 15절, 16절 이러한 고백을 했잖아요. "네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함으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된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한다. 원래 다 누구 거였다?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이게 팩트예요. 이게 진리고요. 이게 하나님입니다. 근데 우리는 다 나누는 거 좋아해요. 나눠서 공정하고 공평한 거 좋아해요. 정직한 거 좋아하고 분명한 거 좋아하고 선명한 거 좋아하고 그래서 내 생활 따로 교회 생활 따로 내 돈 따로 헌금 따로 내 시간 따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봉사의 시간 따로. 이분법적 분리가 모든 삶 가운데 네 거, 내 거로 확 갈리게 되지요. 이 땅에 속해서, 이 땅에 취해서 모든 해석은 이 땅의 관점으로 인간적 관점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은혜 다 알고 인정하고 찬양하고 고백해도 결국 분리돼서 행한 만큼 따로 만큼 그것도 철저하게.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이러한 시각이라면 이러한 공평을 이야기한다면 우리 잘 때 하나님도 주무셔야죠. 그게 공평한 거 아닙니까? 우리 쉴 때 하나님 힘도 쉬셔야죠. 그게 공정한 거 아닙니까?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가장 핵심 단어가 뭔지 아세요? 공정이에요, 공평. 이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거예요. 언페어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화들짝 화들짝 하죠. 예민해요. 콜라 1 먹고 7명이 크레딧 카드를 내서 250원씩 나눠서 체크카드로 계산됐다는 게 신문에서 제가 읽었던 내용이에요. 왜요? 공정해야 돼요. 아주 좋은 단어처럼 들려요. 맞죠? 공정해야죠, 믿는 사람이 공평해야죠. 그게 어디 안에서가 중요합니다. 공정하기 위해서, 공평하기 위해서 가져야 되는 기준이 뭔가가 더 중요해요. 나의 행위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기준.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저는 가장 안타까운 게 만약에 저희 부모가 10000000002 있어요. 저는 100불 있고. 근데 이 부모가 내 100불을 뺏을까 봐 노심초사 이거 안 뺏기려고 바둥바둥한다? 근데 사실 그 100불도 용돈 받으면 100불이에요. 원래 내 것도 아니에요.
저 같으면 억지로라도 어떻게든 드리고 맡기고 그래서 내 전부가 당신의 전부입니다. 막 이상한 말도 하고 이러고 싶어요. 그게 지혜 아닙니까? 왜 이 얘기를 하느냐. 만약에 이 공정성으로 이야기한다면 솔로몬의 재판은 뭡니까? 죽여야죠. 반으로. 갈라야지요. 그게 공정하고 그게 공평한 거겠죠? 보는 앞에서 정확하게 자로 재서 딱 반으로 잘라 죽여버리면 되잖아요. 그게 공정한 겁니까? 그게 공평한 겁니까? 돈 앞에서 공정이 어디 있고 공평이 어디 있습니까? 공정하기 위한, 공평하기 위한 지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 지금 세금 얘기하는데 성전세 세겔도 기억하시죠? 마태복음 17장 24절, 27절 말씀이었잖아요. 한번 볼까요?
가버나움에 이를 때 반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와서 "너의 선생은 반세겔 내지 않냐? 내는 것이 옳은 거 아니냐?" 이르되 내신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요. 베드로가 먼저 찔렸겠죠. 그래 저게 공평한 건데 저거 내야 되는데?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가 먼저 이르되 알았어요. 그 마음 가운데 그 고민을 하셨어요. "시문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자기 아들에게 세금 받는 자가 어딨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 있나. 예수께 그렇다면 아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 아들 건데 뭘 세금을 냅니까? 그 얘기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여기도 그러나. 그러나 아주 중요한 단어.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는 것은 의무 때문에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에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계를 얻을 것이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다시 이야기해 볼게요. 저것이 한 세겔로 낸다 안 낸다가 중요한 겁니까? 저 물속에 저 물고기 하나도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합니까?
물 속에 배 속에 한 세계까지 예비해 놓은 자 그 만왕의 통치자가 누군지가 중요한 겁니까? 저거를 잘 내는 한 세계의 의무와 행위와 공정과 공평이 중요한 겁니까? 어려워요?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만약에 낸다면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고 만약에 공정하고 공평해야 된다면 그 안의 지혜는 솔로몬의 고백과 같이 생명이 기준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지혜고 그 지혜 안에 공정과 공평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우선적 가치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공정함으로만 관계없이 사랑 없이 생명 없이 우리에게 적용하신다면 오늘 이 자리에 살아남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앞에서 공정을 외칠 수 있습니까? 그 앞에서 공평을 외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창세기 한 장 26절, 27절 때문이잖아요. 우리 큰 목소리로 같이 한번 크게 읽어볼까? 시작!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여러분, 우리 외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자기와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우상적 위험이 있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의 창조의 원리는 오직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속한 자. 우리 외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만 하나님의 거예요. 우리 것만 우리에게 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것만 영원한 거예요. 우리 것을 하나님 것으로 드리면 우리 것도 영원한 것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여겨주시는 거예요. 사실 하나님이 돈이 왜 필요합니까?
물고기가 왜 필요합니까? 세겔이 왜 필요하냐고요. 아무런 필요 없어요. 하나님이 진짜 원하는 것은 한 세계를 성전세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요. 한 데나리온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세금 잘 내는지, 얼마나 헌금 잘 내는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너는 내가 끊을 수 없고 적용할 수 없고 공정과 공경으로 심판할 수 없는 나와의 사랑의 관계이다. 왜? 내 형상이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 하나님의 형상이 곧 그리스도라. 그 그리스도로 죽여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기에 우리의 모든 것 숨 쉬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에 속한 자입니다. 군인처럼 군 안에 있나, 군 밖에 있나 전쟁터에 있나, 휴가 처해 있나 그는 그냥 나라의 것이에요. 우리는 죄 가운데 있나? 은혜 가운데 있나? 예배 가운데 있나? 실족 가운데 있나? 우리의 삶의 모든 신음조차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바치라 이 얘기가 그냥 드려라 아포디도미라고 이야기하는 단순한 강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원뜻은 원래의 자리로 다시 되돌려놓다입니다. 밭이라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라는 거예요. 창조된, 형상된 그 목적대로 돌려놓으라는 거예요. 그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고 그렇다고 시인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곳이 어딥니까? 예배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입니다. 이 예배의 자리는 창조의 목적대로 원래의 자리로 돌린다고 하는 우리 삶 전체를 드리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전체를 받으시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관계 안에서 영원한 관계 안에서 그 생명의 관계 안에서. 그래서 그 공정 때문에, 그 공평 때문에, 공의 때문에 자기가 자기 힘으로 자기를 죽였어요. 남을 죽인 것이 아니에요. 상대방을 죽인 것이 아니에요. 대제사장을 죽인 것이 아니에요. 처기관을 죽인 것이 아니에요. 로마 총독을 죽인 게 아니에요. 그 힘으로 자기를 죽였어요. 그리고 일 을 드러내시고 생명 안에 우리를 살리셨어요.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 되시니까. 잠시 잠깐 이 동전의 장난치는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 두려워하는 것까지 통치하시고 만드신 분이 나와 형상이 같은 하나님 아버지 되심을 깨달으라. 이 안에 담대함을 가지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말씀하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단순한 세금, 헌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를 뭐한다고 하죠?
요새 본다라고 하더라고요. 보긴 뭘 봅니까? 드리잖아요. 우리가 기도를 어떻게 한다고 하죠? 헌금을 어떻게 한다고 하죠?
찬양을 어떻게 한다고 하죠?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한다고 하죠? 들인다가 뭐라고요? 원래의 자리로 원래의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거예요. 내가 원래의 것에서 벗어났거든요. 원래의 형상에서 가이사의 형상에 속했거든요. 순간이지만 두려움으로 거리가 멀어졌거든요. 나의 나된 것을 증명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되돌리기 위해 그 사랑의 관계 안으로 다시 회복하여 부르시는 그 자리가 오늘 이 자리입니다. 예배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 외에는 우리의 잘못된 왜곡된 우리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 선한 성도 여러분, 서기관이든 바리새인이든 사두개인이든 대제사장이든 그들의 시작이든 그들의 의도든 그들의 역할이든 일이든 모두 순간 이 땅에 매수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그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4장 4절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은 또한 그분으로 살리신 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것이다. 나의 생명도, 나의 시선도, 나의 중심과 나에게 허락한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형상. 그래서 우리 또한 십자가로 다시 되돌려 놓는 것. 오늘도 그 말할 수 없는 은혜로 여러분의 삶의 전체가 일부분이 아니라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 속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특송을 부르며 은시엠 멕시코 단기 선교가 출발합니다. 여러분 선교를 가는 사람 따로 있고 안 가는 사람 따로 있습니까? 그런 게 어디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나라야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사정과 상황과 역할이 좀 나를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드리고자 나아가고자 합니다. 시간 많아서 돈 많아서 여건이 되서 그래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또 못 가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적인 발걸음이 옮겨져야만 가는 겁니까? 그것도 귀한 일이지만 더 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어 그 마음으로 나의 삶 전체를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몸 된 교회의 교인으로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한 성찬을 합니다. 우리 떡을 떼요. 가족만 하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하고 못 해요. 그 일에 하나님의 형상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단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그곳에 함께 나아가고자 출발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참 열악하더라고요. 더워요. 습하고 많은 위험들이 있어요. 아마 이번 팀들 많이 고생할 거예요. 아 잘됐다 가서 고생해라 라고 생각하는 분이 없을 줄 압니다. 같은 마음으로 아침, 저녁 하나님의 같은 은혜로 우리가 함께 몸은 떨어져 있지만 우리의 마음과 중심이 함께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일에 쓰임받는 저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 안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간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 조용히 말씀을 좀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접근한 자들은 정탐꾼으로서 꽤 그럴싸한 신앙의 모습을 다 갖췄고 입술에 고백을 준비했지만 결국 그들의 의도는 말꼬리를 책 잡아 자기가 섬기고 자기 통치 아래 있는 그 다스림을 넘기고자 했다 라고 하는 이 말씀이 참 우리의 신앙을 또 우리의 심령을 돌아보게 됩니다. 금요일에도 함께 나눴지만 우리가 진짜 회복되어야 하는 단어가 있다면 감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답게 하나님의 자녀 된 것 자체가 감사의 고백이 돼야 하는데 그래서 서로를 그 형상을 형상대로 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야 하는데 나 또한 누구의 말꼬리를 책 잡고 넘어뜨리고 넘기려는 것에 내 발과 손이 앞장섰던 일들을 끔찍하지만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 다시 한번 우리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그 사랑의 관계 안에서 공정과 공평이 나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일로 열매 맺게 해달라고 그 간절한 고백으로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그 앞에 그 모든 것을 살리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으나 우리의 외침과 우리의 넘김으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으나 다시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이 씨 앞으로 높이며 살아가는 저희의 모든 삶이 되게 하여 주시고 복음이 삶이 되는 이젠 하나님의 형상 그 거룩한 옷을 입고 합당하게 행하여 나를 죽여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그 은혜 안에 누리고 또 전하며 원래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의 모든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 다 같이 자리 일어나셔서 우리 마지막 결단송과 함께 모든 예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해 주님, 이 세상의 수많은 거짓과 속임수로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갈지 몰라 머뭇거렸던 순간이 참 많습니다. 거대한 폭풍이 공중에 권세 잡은 자들이 오늘도 우리의 심령을 살피고자 우리를 위협하고 협박했던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의 나의 형상이 누구의 것인지 알면서도 넘어졌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쟁이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를 위해 그 십자가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주님의 은혜 앞으로 우리 영상에 하나님 앞으로 두 손을 들고 찬양하며 나아가는 것. 우리의 입술이 오직 예수로 충만함을 고백하는 것. 내 안에 영원한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하는 이 믿음의 고백 외에는 주님 주님께 드릴 것이 없소. 아멘. 이 고백 위에 우리 하나님 다시 나의 속한자로 우리 하나님 만왕의 왕으로 그 전쟁에 우리의 삶 가운데 개입하시고 승리하셔서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속한자로 살아내는 일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가 회복되든 우리 모두의 심령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 그 놀라우신 십자가의 은혜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끊을 수 없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하심과 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 생각나게 하시고 기억하게 계시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교통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우리의 삶 가운데 다시 한번 우리의 형상을 통하여 우리의 소속과 우리의 주관과 우리의 통치가 누구 안에 이루어져 있는지를 다시 한번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심령들 되게 하여 주시고 그 심령과 가정되게 하셔서 낙심되고 실망하고 넘어질 때마다 그 형상답게 은혜로 일어나는 그 모든 심령들 머리 머리 위와.
이시제 그 모든 생명을 드려 하나님의 선교의 나라를 위하여 떠나는 매 식구 단기 선교팀 그 모든 심령들 머리 위와 아름다운 가성 위와 몸된 교회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핵심 정리
- 예수님은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통치를 구분하셨다.
-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배신했다.
- 예수님은 진리로서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
- 우리도 예수를 위해 우리의 소속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눔 질문
-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왜 예수를 잡으려 했는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기득권이나 세상적 가치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내가 속한 공동체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기도 · 묵상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