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영락장로교회 The Korean Young Nak Church of Dallas

2.8.2026 [달라스 영락장로교회] 주일설교 | 명치호 목사 | 에스라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 | 에스라 7장 1절

명치호 목사 · 2026-04-24
본문
에스라 7:1

1. 이 일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저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설교자
명치호 목사
날짜
2026-04-24
설교 길이
49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에스라서는 성전 건축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에스라를 통해 말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하셨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성전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 교회도 말씀을 통해 더욱 아름답고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에스라가 필요한 이유는 말씀의 회복이다
1
에스라의 등장
에스라의 등장은 극적이다
에스라서 7장 1절
2
말씀의 상징으로서의 에스라
에스라는 말씀을 상징한다
에스라서 7장 6절
3
성전의 아름다움과 말씀
성전은 말씀으로 아름다워진다
에스라서 7장 27절
4
하나님과의 대화
말씀은 하나님과의 대화다
느헤미야서 8장 5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하신다.
전체 스크립트

예, 오늘은 여러분들과 에스라서를 저희가 봅니다. 저희가 에스라서를 보면 이 책이 좀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 중에 하나,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책 이름은 에스라인데 에스라가 언제 등장하냐면 7장에 가서 등장을 해요. 그 1장부터 6장은 에스라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에스라서인데. 그럼 1장부터 6장은 뭐에 대한 얘기냐? 에스라가 태어나기 전의 얘기입니다.

에스라서 1장 1절에 보면 "바사왕 고래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르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소도 내려 이르되" 여러분 아시죠? 이 이야기를 고레스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는 이야기가 에스라서 1장에 나와요. 그래서 2절에 "바사왕 고래스를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사람의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다"라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래서 1장부터 6장이 성전 건축에 대한 이야기예요.

예. 그리고 드디어 7장에 가서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등장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아까 읽은 우리 말씀이죠. "일후에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갈의 아들이요 아사라의 손자요 힐기아의 증손이다"라고 에스라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에스라를 등장을 시킵니다. 어떻게 보면 극적으로 에스라를 등장을 시키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왜 1장부터 6장은 에스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성전 건축에 대한 거고 갑자기 7장에 가서 에스라의 등장을 이렇게 멋있게 그의 족보를 얘기하면서 등장시킬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해요. 그렇죠? 유다가 망하죠. 바벨론에 망해요.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합니다. 고레스왕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전을 지으라고 70년 뒤에 포로 귀환을 시켜요. 그리고 포로 귀환을 한 후에 성전을 짓죠. 그죠? 성전을 다 지은 후 에스라가 등장할 때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또 흐르냐면 70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성전이 다 지은 후에 약 70몇 년이에요. 뭐 따지자면 뭐 70몇 년 하는데 그래서 숫자까지 뒤에 숫할 필요는 없고요. 예. 70몇 년 후에 성전이 다 완성한 후에 70몇 년 후에 에스라가 등장을 해요.

왜 하나님께서는 극적으로 에스라를 등장을 시키셨을까?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좀 보려고 해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했을 때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해요. 하나님, 이제 우리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예배합니다. 하면서 6장에 가서 6장 20절에 가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지의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며 사로잡힌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다"라는 얘기는 뭐냐면 이제는 제대로 된 유월절 제사를 드리게 된 거예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유효 제사를 드리는 성전을 건축한 후에 이런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이 있으면서 21절에 "사로잡혔다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이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 여호와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함께 모여서 예배하며" 막 이런 축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전을 주셨사오니 이제는 주를 위해서 하겠습니다 하면서 이런 축제를 드리는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6장이 끝나요. 예. 그러니까 성전을 봉헌을 마치는 거죠. 그렇죠.

그런 후에 70년이 지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똑바로 살았을까요? 안 살았을까요? 70년 동안. 70년 동안 어땠을까요? 개판이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모습이 9장에 나와요. 9장에 나옵니다. "일후의 방백들이 내게 나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 떠나지 아니하고 다시 말해서 거기 살고 있는 이방인들과 같이 살았는데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과 햇 사람들과 불리 사람들과 여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아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했다." 그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을 다 섬긴 거예요. 아니 하나님 성전에 다져 놓고 성전 따로 우상 따로 이게 1장부터 그까 이렇게 6장과 7장 사이에 벌어진 일이에요. 정말 헛구역질 나는 일이죠. 하나님 성전을 그렇게 짓게 해놓 해 주셨는데 포로로 돌아오게 해 주셨는데 이들이 한 일은 예, 그 성전을 이용한 게 아니라 그 성전을 욕되게 하고 70년 세월 동안에 완전히 개판으로 살아버린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7장에 가서 누구를 보내신 거예요? 에스라를 보내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뭐에 대해서 보려고 하냐면 왜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보내신 이유가 뭘까?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에스라 보내신 이유가 뭘까? 첫째로 에스라 보내신 이유는 뭐냐면 에스라가 말씀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래요. 에스라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아까도 읽은 대로 에스라의 족보가 쭉 나오죠. 그렇죠? 1절에 보니까 예. "일후에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왕이 있을 때 왕도 바뀌고 예. 왕이 있을 때에 에스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라고 얘기하면서 누구의 아들이요 누구의 손자요 누구의 증손이다라고 그의 족보를 얘기를 해요. 근데 이 사람이 제사장이에요. 제사장이에요. 근데 여러분들은 아, 뭐 그 제사장 뭐 뭐가 대단해서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아니에요. 그 시대 제사장이 이게 찾기가 힘들었어요. 에스라서 2장 62절에 보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개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의 집분 행하지 못하게 했어요." 제사 되려면 족보가 맞아야 되잖아요. 근데 자기가 제사장 오는데 보니까 족보는 안 맞아. 이런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63절에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둔비를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고 금해 버린 거예요." 왜? 제사장도 다 재산이 없는 거예요. 여기 보면 우림과 둔을 가진 제사장이라는 게 뭐냐면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줄 아는 제사장이 없었던 거예요. 예. 그러니까 이 제사장하면 이거 대단한 거예요. 이 시대에. 근데 이 한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근데 이 사람이 족보가 7장 5절에 보면 "아비수아의 13대 손이요 비나스의 14대 손이요 엘루아사의 15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이라." 저 16대까지 올라가요.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 이 사람은 누구의 손자라 그러네요? 무슨 육 누구의 손입니까? 아론의 손이에요. 여러분 제사장이 되려면 누구의 손이 돼야 돼요? 아론의 손이 돼야 되는데 바로 이 사람이 아론의 손이었다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 가문만 좋다. 그래서 지금이 에스라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에스라가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제사장은 중요해요. 중요해요. 근데 이 사람은 또 뭐가 돼야만 되냐면 7장 6절에 보니까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주신 모세 율법에 익숙한 학자라"라고 나오죠. 학자로서 그렇죠. 이게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 말씀에 익숙한 학자였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에스라엘은 뭐를 상징하는 사람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 하나님의 성전을 다 지어놨는데도 개판으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알려 주시는 거예요. 예.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익숙한 학자를 보내신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우리 교회도 필요한 것은 바로 이거다라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건 뭐냐면 말씀이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왜 제가 이런 얘기를 하냐면 여러분들 지난주에 설교 후에 예배 후에 우리 교회 광고 나갔죠. 그렇죠. 성경 공부 시스템 개편됐다고 여러분들 광고 쫙 보냈잖아. 내보냈고 예 특별 시간 내서 광고까지 했잖아요. 여러분들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우연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이러한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걸 일으키신 거예요. 예. 우리 교회 필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여기 보면 "모세 율법에 익숙한 학자"라고 나오는데, 학자라는 건 뭐냐면 지금으로 말하면 PhD까지 간 사람이에요. 성경에 PhD까지 간 사람이 바로 에스라였다라고 얘기를 해요. 근데 교수라고 안 불러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신학교가 없으니까 예. 그 공동체를 가르치는 사람, 학사, 학자를 보내신 거예요. 근데 우리 교회 가만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한진 목사님을 보내 주셨어요. 근데 이분이 PhD를 하셨네. 예. 저희 교회는 그거 보고 뽑는 건 아닌데. 예. 그거 보고 뽑은 것은 아닌데 PhD를 하신 거예요. 거기다 전공이 조직 신학을 하셨어요. 조직 신학이라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풀어 가지고 설명해 주시는 분을 그 공부가 조직 신학이에요. 그래서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가르치시는 사람이 조직 신학을 전공한 분인데 예. 어 PhD에다가 PhD 하셨고 조직 신학까지 하셨거든요. 예. 그러니까 공부로 얘기하면요 엄청난 거예요. 그러니까 뭐 한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 좀 그래서 그렇지만 하여튼 알아보세요. 조직 신학, 그 PhD 받으려면 먼 공부를 얼마나 몇 년을 해야 되는지를 보세요. 네. 정말 오래하고요. 정말 잘해야 돼요. 근데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그런 분을 보내 주셨다는 거 자체가 하나님 우리 교회가 다시 한번 더 말씀으로 서기를 원하신다는 얘기예요.

거기다가 요번 수요 우리 그 목사님이 한진 목사님이 이제 교리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죠. 그렇죠? 여러분들 지난 첫 주 못 들으신 분들은 들어가서 들어 보세요. 예. 정말 귀하게 시작하셨어요. 교리에 대해서 이제 우리를 조직 신학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어 그래서 저는 우리 영락의 성도들이 수요 예배도 더 열심히 원해요. 이제는 목사님이 수요 맡으셔서 인도하실 거니까 수요 예배에도 열심히 여러분들이 참석하셔서 도대체 예, 제대로 된 교리가 뭔지 조직 신학이 뭔지를 알아서 이게 바로 서면 성도들 흔들리지 않아요. 이게 바로 서면 이단이 침투할 데가 없어요. 이게 바로 서면 여러분들 이상한 소리 하지 않아요. 딴 사람들한테 성경에 대해서 바른 얘기 할 수밖에 없도록 그게 조직 신학이거든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정말 우리 수요 예배도 열심히 원해요.

거기다가 우리 교 웹사이트가 이제는 딱 갖췄잖아요. 예. 웹사이트에서 보면 우리가 성경 공부의 모든 커리큘럼의 완성을 딱 해 가지고 이제 시작을 했잖아요. 여러분들 이거 대단한 일이에요. 왜 대단한 일이냐면 제가 영학교 20여 년 동안 있는 동안에 이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걸 하고 싶었는데 20여 년 동안 못 했어요. 예. 정말 체계적으로 이거 끝나면 이거 하고 이거 끝나면 이거 하고 성도들은 예 뭐 어디까지 가려면 이거는 완수하셔야 되고 이거는 배워야 되고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을 제가 만들고 싶었어요. 20몇 년 동안. 근데 못 했어요. 그 이유는 뭐냐면 예전에는 풀타임이 저 혼자였거든요. 풀타임이 저 혼자다 보니까 제가 16주를 뭐 12주를 누굴 가르치면 그다음 단계를 누가 밑에서 가르쳐야 되는데 가르칠 사람이 없으니까 쉬고 있는 거예요. 딴 분들은. 그럼 12주 끝나면 그때 조인하고 막 이러다 보니까 어떤 시스템을 만들려는데 되게 힘들었어요.

거기다가 평신도까지 들어가서 평신도 리더들도 훈련시켜 가지고 평신도 리더들도 그 일을 이제 같이 병행하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늘 저는 교회 웹사이트를 이렇게 보면 미안했던 게 뭐냐면 우리 성도들한테 미안했던 게 뭐냐면 어 그 성경 공부를 많이 가르치는데 어떤 체계적인 그런 시스템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가르친다고 하는데 시스템이 없어요. 그러니까 목사가 어떤 생각이 드냐면 꼭 거짓말하는 것 같아. 거짓말하는 느낌인 거예요. 딴 교회에서 우리 교회를 이렇게 보면서 어이 교회는 성경 공부가 어떻게 되지 하는데 하긴 하는데 언제 했는지 몰라. 오늘 제가 옛날 했으니까 그죠. 근데 체계적이지 않은 어떤 그런 것들 때문에 제가 좀 안타까웠는데 작년부터 어 이제 작년 교육부와 그리고 그거에 대해서 하트가 있는 분들이 함께 조인을 해 주셔 가지고 작년부터 그거를 같이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작년부터 저랑 같이 만들기 시작했고 드디어 이제 사역자들이랑도 다 얘기하고 사역자들이 컨펌도 받고 당해도 컨펌을 받고 이렇게 해 가지고 드디어 저희가 커리큘럼을 완성한 게 교회 웹사이트에 보이는 그거예요, 여러분들. 이게 쉽게 이루어진 거 아니에요. 절대로. 그리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건데 하필이면 오늘도 성경에 대한 일이 말씀이 써 있고 그래서 하필이면 한진 목사님이 보내셨고 예 하필면 우리 교회가 이제는 그걸 시작했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원에서 빨리 들어라. 빨리 들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거거든요. 이제 시작했어요. 이미 제자반도 시작했고 여러분들 신청하시면 돼요. 양육반은 항상 오픈돼 있고 성장반은 항상 오픈돼 있고 하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 웹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그 QR코드에 들어가서 등록만 하시면 돼요. 예. 그래서 자원에서 저는 우리 영락의 성도들 이번 기회에 예. 다 듣자. 다 들어보자. 끝까지 가자. 하나님 이런 열정이 있기를 원해요. 하나님이 우리 교회 주셨으니까. 그리고 지금 때라고 말씀해 주시니까 저는 열심히 여러분들 배우셨으면 좋겠어요.

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기 때문에 에스라가 필요한 거예요. 성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에스라서 7장 27절에 보면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라고 얘기하죠.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 도대체 이게 뭘까요? 예. 세상적으로 보면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뭐냐면 아름답게 꾸미는 거예요. 금을 만들고 온갖 좋은 것을 재료를 가지고 아름답게 꾸미는 걸 만들고 싶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궁극적인 아름다운 교회는 이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궁극적인 교회는 바로 에스라의 그 마음이에요. 그 마음이 뭐냐면 에스라서 7장 10절입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여 준행하며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윤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것." 여러분들 아주 짧은 한 구절이지만 이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보시는 모습이 이 안에 다 담겨 있어요.

여기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 이게 첫째예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 이건 배우는 거죠. 그렇죠? 아까 제가 얘기했죠. 여러분들 배우셔야 합니다. 연구하는 거예요. 예. 그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거예요. 성경 말씀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 배우고 싶어 하는 것. 어, 제가 예전에 영락교회 처음 와 가지고 제자반하고 어떤 커리큘럼 있었어요. 없었던 거 아니에요. 근데 나중에 제가 깨달은 게 뭐냐면 막 졸업장 주고 하다 보니까 성도들이 제가 다 배운 줄 아는 거예요. 다 배운 줄 아는 거예요. 아니요. 성경은 평생 배워야 되거든요. 성경은 평생 배워야 되는데 예, 한번 뭐 하나 끝났다고 해서 어, 나한테 다 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니에요. 성경은요. 계속해서 배워야 돼요. 계속해서 배워야 돼요. 그러니까 예, 그 에스라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은 평생 하는 것처럼 예, 하나님 말씀은 평생 배워야 한다. 이걸 잊지 마세요. 평생 배워야 돼. 그게 아름다운 교회예요. 아름다운 교회.

근데 이렇게 큰 교회들 보잖아요. 뭐 세상에서 볼 때도 이렇게 어 교회도 크고 성공한 교회 뭐 이런 교회들 단임 목사님들이 이 시스템을 잘 해 놓으시고 이거를 운영을 잘한 교회들이 많아요. 미국 교회도 그렇고 이런 교회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나중에 목회 이렇게 회고하면서 후회를 하는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후회를 하시는 분들이 그게 뭐냐면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서 성도들이 열심히 배우기는 만든 거예요. 열심히 배우게 만들었어요. 근데 문제는 다 가르치고 나니까 다 가르치고 나니까 성도들이 바리새인이 돼버리는 거예요. 바리새인이 머리만 커진 거예요. 성경 성경 지식만 들어서 머리만 커진 거예요. 왜냐?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 뭐냐면 연구하고 준행하며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내가 변화돼야 돼요. 말씀 앞에서는 내가 변화가 있어야 돼요. 내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나는 남을 정지하기만 해요.

여러분들 우리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부모가 누군지 아세요? 예. 본인은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들에게 지키라고 얘기하는 부모를 제일 싫어해요. 그게 딱 앞에 1단계 머은 그 부모예요. 예. 야, 나는 못 해도 너는 해야 돼. 말도 안 되는 소리합니다. 진짜. 예. 성경에 보면 자녀를 화나게 만들지 말라고 그랬는데요. 그게 제일 자녀를 화나게 만드는 거예요. 나도 못 하면 자녀도 못 해요. 예. 자녀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 내가 먼저 변화돼야 돼요. 내가 먼저 말씀 앞에서 그 말씀에 준행하며 내가 살아봐야 돼요. 그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서 내가 십자가 져야 되고요. 예. 내가 피땀 흘려봐야 되고 내가 하나님 안에서 정말로 결단하고 또 결단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이 모습이 내 안에 필요한 거예요. 그냥 말씀만 머리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지키는 지키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얼마나 살았느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런 성도들이 변화될 때 교회는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그럴 때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교회가. 예. 여러분들이 성경 지식 만들었다고 해서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에요. 성경 지식 만드는 교회는요. 드라이해요. 영적으로 매말라요. 왜냐면 정제만 있기 때문에 바리새인으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기만 착각해요. 아니에요. 내가 말씀 앞에서 변화돼 봐야 돼요. 깨져 봐야 돼요. 깨져 봐야 돼. 이것이 아름다운 교회다라는 거예요.

근데 깨질 때, 깨질 때 이게 혼자만이 되는 게 아니에요. 함께 깨져야 돼요.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세 번째가 중요한 거예요.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라고 얘기하잖아요. 아, 아니요. 세 번째 포인트가 아니라 7장 10절에 보니까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바로 이게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들 여기서 가르치는 게 뭐냐면 그냥 티처만 되는 게 아니라 셰어링도 이 안에 다 들어가요. 셰어링도. 예.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전하기로 결심하는 거예요. 함께하기로. 나 혼자 신앙생활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르치고 함께 전하고 함께 쉐어링함으로 말미암아. 예. 그럴 때 교회는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2025년 2026년 벌써 양육반 마치신 분들이 53명이나 되더라고요. 이분들은 이제는 ready to teach거든요. 예. 다른 사람을 양육할 준비가 되신 그런 분들이 귀한 분들이 이미 세워져 가고 있어서 감사해요. 그리고 이제 제자반 오픈하면 또 제자반 졸업하신 분들이 있겠죠. 근데 제자라는 게 뭐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제자 삼는 삶을 사는 분들이 나오는 거잖아요. 이런 분들이 나오면 뭐 합니까? 쉐어링하고 가르치고 나누고 살아가는 거야. 함께 나누는 거죠. 나 혼자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변화되는 거예요. 그게 선교적 교회예요. 함께 변화되는 것. 정말 우리 교회는 이미 아름다운 시스템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순이라는 쉐어링하는 시스템이 있어요. 쉐어링하는 시스템. 예. 이게 우리 교회를 이때까지 지탱해 줬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왜냐하면 말씀을 배웠는데 그것을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쉐어를 했어요. 나눴어요. 그 말씀대로 살려고 이야기를 나눴고 살아보려고 했고 예. 함께 그것도 함께 변화되려고 노력을 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모든 것을 진행하면서 성도님도 열심히 참여해야 돼요. 참여해야 돼요. 그럴 때 우리가 함께 변화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서 "야, 영락교회 진짜 아름답다"라고 칭찬받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거죠. 그런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로 말씀은 하나님과 대화가 통해야 하는 것이 말씀의 근본적인 목적이에요. 이걸 기억해야 돼요. 여러분, 오늘 말씀에 보면 느헤미야서 8장 5절에 보면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행동이에요. 그러니까 이거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앞에서 사회자가 하나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어떡한 거예요? 일어난 거예요. 그리고 그 말씀을 함께 봉독한 거예요.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손을 들고 뭐라 그러냐면 아멘 아멘 하고 그리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했다. 우리 한번 해 볼까요? 근데 이제 얼굴을 땅에 대지 않고 손으로 이렇게 해 볼게요. 그래서 아니 그냥 앉아서가 아니라 오늘 다 같이 일어나셔서 아니 말씀 앞에서 하나 행동이니까 어렵지 않으시죠? 우리가 8장 5절, 6절 읽을 때 어 6절 같은 경우는 행동 같은 경우에도 여러분들이 하세요. 이렇게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예. 앉으세요.

뭐 여러분들 설교를 하기 전에 말씀을 읽을 때마다 여러분들이 그 말씀 이렇게 일어서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떨까요? 우리 교도 해 볼까요? 우리 교도 해 볼까요? 해 보니까 어떠세요? >> 좋아요. >> 예. 근데 하진 않을 거예요. 어. 좋죠. 그렇죠? 좋은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왜냐면 우리가 딱 말씀 앞에서 일어선다는 얘기는 뭐냐면 내가 말씀을 경외한다라는 표현을 하는 거예요. 행동으로 내가 이 하나님 말씀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경외합니다라는 행동을 보이는 것 정확히 맞아요.

근데 문제는 두 번째예요. 두 번째는 뭐냐면 일어서는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일어선다는 얘기는 그 말씀 앞에서 내가 절대적인 순종을 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있는 거예요. 내가 읽은 이 말씀 앞에서 내가 절대적인 순종을 하겠습니다. 특히 여기 보면 아멘 아멘 했잖아요. 아멘이란 뜻은 뭐냐면 내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표현이에요. 아멘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읽은 구절이 뭔 뜻인지를 알고 아멘해야지 예 아멘하면 이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이 여기는 거고 가볍게 여기는 행동이 돼요. 가볍게 여기는 행동이 돼요. 같이 잘못하면 물론 하나님 말씀을 경외하고 예 하는 거 굉장히 중요한데 문제는 뭐냐면 우리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어요. 내가 읽은 말씀이 뭔 뜻인지 모르고 여러분들은 아멘 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말씀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행동이 될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이해가 되세요?

여러분들 하나님의 말씀은요.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습관적으로 뭐를 하는 행동이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내가 이렇게 아멘 아멘 한다는 얘기 뭐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 이해가 먼저 돼야 돼요. 그리고 믿어져야 돼요. 그리고 나오는 게 아멘이 돼야 되는 거예요. 이 행동이 왜 그냥 습관적으로 이러면 좋대 해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또 안 되고 그러면 그냥 그 행동이 좋아서 그러면 다음번에는 그거는 나중에는 또 바리새인 만들어 가지고 예, 너 왜 안 일어나? 말씀 앞에 다 일어난 거야. 우리가 항상 일어났어. 뭐 이 교회는 딱 왜 안 일어나고 난리야? 예. 이거 가지고 꼬투리 잡을 수도 있게 되는 거죠. 그렇죠?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 그걸 하려면 그 어떤 행동을 하려면 그 말씀이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이해가 돼야 될 뭔 뜻인지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아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죠? 여러분 몇 주 전에 제가 설교 본문이 에스라서 4장이었어요. 에스라서 4장 1절을 띄웠어요. 예. 한번 보세요. 에스라서 4장 1절을 딱 띄었는데 내용이 이거예요. "사로잡힌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수룹바과 족장이 나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라 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아스왕 애사 하더니 우리를 이러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라고 우리가 읽었어 다 같이 일어났어요. 근데 여러분들이 딱 일어나 가지고 이걸 읽으면서 속으로 아멘 아멘 하면서 그리고 다 읽고 앉았어요. 근데 그 순간에 여러분들 일어나 가지고 이거 있으면 이게 무슨 뜻이냐 이해했을까요? 이해하고 아멘 하실 거예요? 성전을 지으란 얘기예요? 말란 얘기예요? 성전 지으면 안 돼요. 그게 정답이에요. 예. 노한 내용이에요. 근데 여러분들은 아멘 아멘. 성전 짓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성도들도 있다니까요. 예. 저는 약간 우리 성도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예 성경 구조가 딱 띄어 놓으면 딱 그 자리에서 그 성경 읽으면서 다 이해 안 된다고 제가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 안 하고 그렇게 이해력이 높다라고 생각 안 해요. 예. 그런 분들한테 성경을 읽으라고 해 놓고는 거기서 여러분들이 다 이해하고 아멘하고 뭐 예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그것이 다 따라올 거라고 생각 안 해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문제가. 만약에 이런 걸 하려면 여러분들이 집에서 다음 성경 구절이 어디기 때문에 여러분들 묵상하고 다 와야 돼요. 그리고 내가 일곱 구절이 뭔지를 알고 아멘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목사도 예 정말 셀렉 잘 선택해야 되는 거예요.

그냥 저는 여러분들 무시하기 때문에 그냥이 구절 띄워 놓는 건 딴 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냥 오늘 말씀이 4장입니다. 이 얘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고 이해는 내가 설명하는 동안에 여러분들 이해할 줄로 믿는 거지. 예. 딱 여러분이 일어나 이거 읽자마자 오케이 무슨 뜻인지 다 알았어요. 아멘. 아멘. 예. 저 지킬게요. 하나님 말씀 대단합니다. 이걸 기대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요. 예. 그래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예요. 하고 싶어도 이게 잘못하면 이게 율법적이 되어지기 때문에. 왜냐면 하나님 말씀은요. 하나님 말씀은 제일 중요한 목적이 뭐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아들었냐는 얘기예요. 이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세예요. 뭔 소리 했는지 못 알아들었으면 하나님 뭔 소리 있는지 알아듣게 해 주세요라고 끝까지 하나님 붙잡는 게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자세예요.

근데 굉장히 많은 분들은 뭐냐면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에요. 그냥 읽었다고 끝나요. 하나님 뭔 소리 했는지 몰라도 돼. 읽으면 되는 거예요. 그냥 예. 그냥 몇 장부터 몇 장까지 읽어야 된다면 읽었어요.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하셨는지를 내가 커뮤니케이션이 됐느냐가 제일 중요한 이 핵심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오늘 말씀에서 보면 8장 9절에 "백성이 여호와의 율법을 다 듣고 우는지라" 울었다는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얘기냐면 알아들었다는 얘기가 중요한 거고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이 거기에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하나님의 말씀 주셨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이게 중요한 거지 뭐 하여튼 그런데 많은 분들은 여기까지 갈지도 않으면서도 그 말씀 앞에서 어 암단 여기가 문제 있는 거예요. 여기가

여러분들 하나님 말씀은 로고스랑 레마가 있다라고들 얘기를 해요. 뭐 있다 없다 뭐 따질 필요는 없어요. 뭐 그렇지만 이해하기 쉽도록 로고스라 레마를 가르자면 로고스라는 얘기는 뭐냐면 그냥 일반적인 하나의 말씀을 로고스라고 불러요. 내 말하는 건 뭐냐면 그 말씀이 성령님께서 나에게 "나 너한테 하는 얘기야"라고 얘기했을 때 그거는 내마의 말씀으로 와닿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요한복음 11장 4절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니라." 이거 나사로를 향한 말씀이잖아요. 그렇죠? 이게 나사로에게 있어서는 레마의 말씀이에요. 왜냐? 그 삶에 이루어진 거고 나사로에게 주신 말씀이니까.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그대로 이루어진 건 믿어. 알아요? 그렇지만 이건 일반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로고스라의 말씀이다라고 그냥 하나님 말씀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중요한 것은 뭐냐면 우리가 말씀 앞에서 로고스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나에게 풀어 주신 "그래 너한테 하는 얘기야"라고 하시는 그 레마의 말씀으로 내 귀에 들려지느냐 이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바로 그거를 삼아야 된다는 얘기예요. 우리는요. 바로 그것을 삼아야 된다. 예.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 말씀은 되게 희귀해요. 귀해요. 교회도 오고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말씀은 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이라면 선포하지만 성령님이 나에게 내 마음의 말씀으로 주시는 것은 희귀해요. 희귀해요. 그리고 기회요. 예.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레마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이 희귀할까요? 그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읽기 때문에 그래요. 가볍게 읽기 때문에. 아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행동들 말씀 앞에서 일어서고 아멘 아멘 하는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뜻이기도 해요. 하나님 말씀을.

우리 성도들은요. 좀 안타까운 게 뭐냐면 우리가 큐티를 하는 책을 이렇게 나눠 드리다 보니까 물론 공짜도 아니면서 생생내는 건 아니지만 예 돈 내야 되는데 큐티라고 이렇게 여러분들 책자를 받아가시는 분들한테 저분들이 아시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건 뭐냐면 많은 분들은 큐티를 이렇게 해요. 막 뭐 하다가 큐티 해야지. 그리고 어 몇 장부터 몇 장 쭉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렇게 다 읽어요. 한번 쫙 읽어요. 어 오케이. 오늘 큐티 끝. 끝이에요. 뭐가 끝입니까? 읽기를 끝낸 거지. 중요한 건 그 질문을 해야 돼요. 오케이.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 말씀을 가지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에 대한 답을 줘야 돼요. 그것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여러분들 아직 묵상이 끝난 게 아니에요. 큐티가 끝난 게 아니에요. 그냥 그걸로 끝났다라고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거예요. 뭐가 끝난 거예요? 하나님 여러분들 숙제하세요. 여러분들과 오늘 성경 어디까지 읽었는지 숙제하자. 이게 큐티예요? 아니에요. 묵상이 필요한 거예요. 어떤 분들은 묵상을 뭘로 하냐면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묵상을 해요. 무슨 정답 찾기니까?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예수 노를 답을 얻으려고 묵상하세요? 아니에요. 큐티는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그 과정을 인주하셔야 되고 그 과정에 있어야 돼요. 그러나 이게 하루 아침에 하나님께서 내마의 말씀으로 나에게 들려 주시는 게 아니라 시간을 투자해야 돼요. 나의 마음을 투자해야 돼요. 네. 그리고 묵상하고 고민해야 돼요. 그럴 때 레마의 말씀으로 어느 순간에 나에게 와닿는 거예요.

목사라 그래서 성경을 딱 읽었다 그래서 "어 하나님이 나에게 이 말씀하시는구나. 이 이런 뜻이구나. 오케이." 그 끝 아니에요. 그렇게 저한테도 들려지는 게 아니에요. 예. 묵상이 필요한 거예요. 묵상이. 묵상이. 그럼 묵상이라는 게 뭐냐 하면 시편 1장 2절이에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즐거워야 돼요.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해야 돼요. 아, 나 오늘 하나님 말씀 읽는다. 그래서 하나님 저 묵상 또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대하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주의 음성 들려 주세요. 즐거워야 돼. 기뻐야 돼. 그래야 이게 하루 왼중일 묵상을 할 수 있어요. 지겨우면 후사고 끝나버리죠. 거기 문제가 있는 거예요. 즐거워야 돼요. 즐거워하면서 그 말씀을 가지고 뭐 해야 돼요? 주야로 아침 저녁으로 씹고 또 씹고 묵상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거예요. 언제까지요? 하나님 음성으로 들려질 때까지. 들려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시간을 투자해야 돼요. 그 묵상 옆에서.

그래서 레위기서 11장 3절에 보면 부정한 것과 부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둘로 나누는데 "모든 짐승 굽이 갈라져 족" 제가 이렇게 눈이 나빠졌나 봐요. 아 저 저쪽에 스크린이 족발로 보여요. 근데 제 스크린은 쪽발로 보이는데 맞아요. 예 족발이 되고 새임질라는 너희는 먹대. 그 새임질라는 건 정한 거예요. 그런데 돼지는 구비 갈라지 쪽발이로데 책임질을 못해서 부정한 거예요. 책임질을 안 하면 부정한 거고 책임질을 하는 것은 정한 거가 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왜 하나님께서 이게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되씹고 되씹는 이 묵상을 하는 사람은 정한 건데 하나님 말씀을 되씹고 되씹지 않고 그냥 한번 딱 읽어버리고 끝 책임질 안 하는 것은 뭐예요? 부정한 거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이 좀 기억해야 돼요. 여러분들 하나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예. 손은 손은 어떻게 해요? 음식을 먹으면 저장했다 또 꺼내서 또 씹고 또 꺼내서 또 씹고 또 꺼내서 또 씹어. 언제까지? 물론 소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얘기다 하자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때까지 하나님 원하시는 게 뭡니까? 들을 때까지. 예. 여러분들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좋을까요? 좋아요. 나쁜 건 없어요. 그렇지만 생각해 봐야 될 부분이 있어요.

우리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돌아가신 할머니 제가 욕하는 거 같지만 욕하는 거 맞아요. 근데 아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얘기하는 건 이거 정말 중요한 얘기 아니에요? 예. 우리 할머니는 그 우리 할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 가지고 목사로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 보험을 팔려다니셨어요. 이제 가난하니까 이제 돌아가셨으니까 사모가 할 게 없잖아요. 봄을 팔려 다니시다가 무릎이 완전히 다 두 개가 완전히 아작이 나서서 걷지 못하세요. 그러니까 사모가 집에만 있으시니까 뭐 하세요? 기도하고 성경 읽으시는 거예요. 늘 기도하고 성경 보고. 근데 이제 우리 할머님의 루틴이 1년에 성경을 딱 그렇게 읽으시면 13독을 하세요. 13독을. 예. 성경은 13도요. 왜냐? 근데 그 교회는 하필이면 우리 교회는 그런 거 안 만들 텐데 다독상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 갖고 자기가 솔직하게 몇 독했는지를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거를 안어해 가지고 다독상을 줘요. 그래서 우리 할머님이 매년 다독상 1등을 하셨어요. 근데 어느 날 어떤 청년이 14독이라고 적어내서 그걸 가져가 버렸네. 그리고 할머님이 하시는 얘기가 뭐냐면 봐봐. 나는 집에서 성경만 읽어. 근데 13독밖에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근데 저 청년은 일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바쁘게 살면서 14억이 가능해. 이게 어떻게 가능해?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할머니 맞아요.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그랬을까요? 옥사라서 딱 생각이 드는 게 뭐냐면 아니 성경을 13독하고 내린 결론이 저 인간은 거짓말하고 있내네요. 하나님 들려 주신 음성이 저 인간 거짓말하는 거예요. 그게 결론이에요. 전 그게 안타까웠어요. 아니 성경은 13독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할머니한테 뭔 얘기를 하셨는지 그거 듣고 싶은 거지. 예. 남이 13독 했는지 거짓말 했는지 안 했는지 전 관심 없어요. 아니 그 사람이 연 그거 있잖아요. 빨리 읽는 거 해 가지고 예동하든 15독 하든 who cares 그렇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13독 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무슨 얘기를 하셨냐는 걸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이 할머니한테 나한테도 아니에요. 할머니한테 무슨 얘기 하셨냐가 중요한 건데 전 그걸 못 드는 거죠. 그렇죠?

여러분들 하나님의 음성은요. 많이 뭐 이렇게 막 크게 뭐 그래서 들려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음성은 열왕기상 19장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리고 바위를 부으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 여호와께 계시지 아니했어요. 어디 있어요? 또 지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 여호와도께서 거기도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아주 작은 소리가 거기 하나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소리는요. 크지 않아요. 크지 않아요. 우리가 초형하고 깊은 묵상을 이루고 시간을 투자하고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 내 소원입니다. 하나님 알려 주세요. 해야 들려지는 게 하나님의 음성인 거예요.

근데 그거 듣는 성도들도 문제인 게 뭐냐면 그걸 자꾸 정답이냐 아니냐로만 들으려고 해요. 예. 제가 목사로서 제가 그랬잖아요. 예수 믿는 믿어서 너무 좋다고 아파 가지고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까 이거 없었으면 어떻게 살 뻔했냐라고 얘기했잖아요. 너무 좋아요. 근데 또 다른 좋은 게 뭔지 아세요? 또 다른 좋은 게 뭐냐면 하나님 말씀이 있어서 좋은 거예요. 하나님 말씀이 있어서. 근데 굉장히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들으냐고 얘기하면 살아 죽어이 정답을 알고 싶어 하는 거 같아. 이 정답을 근데 우리 하나님은요. 우리가 말씀을 묵상을 이렇게 들어가면 그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지금 말씀을 가지고 뭐 이런 거랑 똑같아요. 제가 예를 들어서 이해가 맞을지 모르는데 하나님이랑 누가 신발을 살아 갔어. 하나님이랑 어떤 성도가 신발을 살아갔어요. 근데 성도가 그래요. 하나님이 신발 살까요, 말까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제 물어봤어요. 그 하나님 뭐라 그럴까요? 사 말아. 이렇게 대답하실까요? 여러분들이 묵상을 하는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얘기하실 것 같아요. 야, 우리 저 옆에 공원 있는데 좀 걸을까? 하나님이 이렇게 얘기하실 것 같아요. 그럼 하나님이 그러실 것 같아요. 야, 너 좀 어때? 요즘 어때?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할 것 같아요. 사고 말는 그거는 도구일 뿐이에요. 어떤 대화를 위해서 과정일 뿐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 거예요. 그 묵상을 통해서. 예. 어쩌면서 그거 답도 될 수도 있어요. 요즘 발이 아프니? 요즘 일이 힘들어. 예. 아니, 저게 그냥 너무너무 예뻐 보이니? 예. 뭐 중요한 거는 하나님은요 그 묵상을 통해서 정답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고 싶으신 거예요. 대화를 하고 싶은 그러면서 그 대화를 하나님과 하다 보면 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뭐냐면 아 이게 묵상이라는 게 어떤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구나라는 걸 알게 돼요. 말씀이라는 거는 그래서 묵상을 하면 할수록 어떻게 보면 정답을 주시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해요. 자꾸 하나님이 예. 요즘 너 아프지 힘들지 그래. 근데 내가 너에 대한 계획을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진 않니? 그니까 사는 중요한 문제 아니야. 어떤 계획이 뭐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누는 말씀을 통해서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예스노의 대답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될 건 뭐냐면 시간을 투자하셔야 돼요. 묵상이 필요한 거예요. 묵상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찬송 중에 "예 저 장미꽃 위에 있을 이을 위해 아직 맺쳐 있는 건데 주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려요." 근데 난 분명하게 들리는데 예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어요. 세상 사람들 예수로만 그 대답으로 알 거 같지만 하나님 내가 나는 대화는 그 대화가 아니에요. 그 대화가 아니에요. 물론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나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나의 생각을 깊이 나누면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귀한 그 대화를 하나님께서는 하고 싶은 게 목사이거든요. 그거를 우리에게 원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그냥 짧게 읽어버리고 가볍게 하나님 뭐예요? 어떡할까요? 아 살아 봐요. 살까요? 말까요? 하나님 나 이게 중요한 거예요. 나 지금 시간 없어요 하나님. 예. 이렇게 나오면 이게 뭐가 됩니까? 그렇잖아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묵상에 대한 생각을 좀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음성이 들려지기 전까지는 묵상이 끝난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그 안에 시간을 넣어야 돼요. 하나님께 대화하고 더 말씀을 봐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랑 원하시는 것이다. 이거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 이거요 엄청난 큰 축복인 거 아세요? 이걸 누릴 수 있는 거 엄청난 그 축복인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지성소와 성소의 커튼이 찢어져 버렸잖아요.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언제든지 지성소에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게 돼 있는 그 자격을 얻었어요. 근데 그 지성소에 뭐가 있길래? 법계가 있는데 그 법계 안에 십계명이 있고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네. 옛날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요. 제사장 1년에 한 번씩밖에도 못 들어가요. 근데 이제는 그 하나님 말씀 앞에 마음껏 들어갈 수 있어요. 마음껏 언제든지 내가 시간만 내면 마음껏 그 말씀 앞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그리고 들어가서 들어도 돼. 지성 안에 들어가서 들어놓도 돼요. 들어서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 주세요. 예. 해도 돼. 왜냐면 하나님 열어 놓으신 길이기 때문에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그걸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 축복을 은혜로 여기고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지겨워 가지고 그냥 한 장 한 장 읽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 읽는 것도 그냥 아 피니시 했다 안 했다 그게 아니라 그냥 그 시간이 기쁘기 때문에 주로 묵상 안에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진다라는 것이 뭔지를 깨달아. 그래서 하나님과 나만의 그 스토리가 있는 예, 그거를 간직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렇게 말씀 앞에 나오는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가벼운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지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 공부하고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연구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 말씀 앞에 순종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 말씀을 가르치고 쉐어하는 그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말씀으로 꾸미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모하는 우리 하나님 그 주신 말씀 앞에 기뻐하며 주로 묵상하며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재로 그렇게 묵상으로 나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요. 하나님과 우리가 나는 그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이야기를 간직한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Amen.

스터디 가이드
필기용 PDF 내려받기

핵심 정리

  • 에스라서는 성전 건축 후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회복을 위한 말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말씀에 익숙한 학자로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 위해 보내졌다.
  • 성전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장식이 아니라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데서 온다.
  •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말씀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나눔 질문

  1. 에스라가 등장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어땠나요?
  2. 에스라가 말씀을 상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4. 우리 교회에서 말씀의 중요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기도 · 묵상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희를 변화시켜 주시고,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교회가 주님의 뜻 안에서 아름답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영상으로 보기
YouTube에서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