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길이며, 불의는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합니다. 우리는 의로운 삶을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
바울은 벨릭스와 두루셀라 앞에서 의와 절제, 심판에 대해 말씀하며, 의로운 삶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죄를 속죄한다고 전합니다. 또한, 절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이며, 절제가 없으면 사랑과 기쁨, 평화 등 다른 열매들이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의롭고 절제된 삶을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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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24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8.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못되었고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 사도행전 25 1.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 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20.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의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26.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27.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 사도행전 12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 로마서 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29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 로마서 1:28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로마서 3:2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에베소서 2:8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빌립보서 1:27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 갈라디아서 5:22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히브리서 9:27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요한복음 5:29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고린도전서 15:3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고린도전서 15:13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 고린도전서 15:56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로마서 10:10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절제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우리의 삶에서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절제가 없으면 사랑이나 기쁨도 왜곡될 수 있습니다.
죽음 이후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복음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에 큰 위험을 초래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벨릭스는 복음을 듣고도 미루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즉시 반응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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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벨릭스 부부에게 전한 세 가지 주제는 무엇인가요?
바울은 벨릭스 부부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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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전한 '의'에 대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바울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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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절제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절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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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심판에 대해 언급한 본문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나요?
바울은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심판에 대해 언급하며,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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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릭스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보인 반응은 어땠나요?
벨릭스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두려워했지만,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사도행전 24장 강해를 통해서 당시 유대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피고였던 바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의 원고는 유대 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더둘러라는 변호사가 바울을 송사하는 사건들을 보았습니다. 벨릭스는 결론적으로 바울에게 죄로 인정할 혐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얘기했죠.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그때 판결하리라"라고 하여 이 법정의 재판을 연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을 구류해 두었지만, 오히려 벨릭스는 사람들이 왕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고, 바울을 도울 수 있도록 그렇게도 허락합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바울에게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바울을 돕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가 있었죠. 바울을 통해서 벨릭스의 마음은 돈을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원했죠. 그래서 명예를 지키고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벨릭스는 자기의 아내 유대 여자인 두루셀라와 함께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때 바울은 벨릭스 부부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때 벨릭스는 두려워합니다. 바로 이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사도행전 2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을 묵상하는데, 여기서 바울이 선포했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이 말씀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게는 거룩한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전했던 그 말씀, 벨릭스 부부를 향해서 전했던 의에 대해서, 절제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오늘 말씀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벨릭스 부부에 대한 이해
이제 우리가 벨릭스 부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말씀의 이해를 위해서요. 당시 벨릭스는 로마 총독이 임명한, 즉 로마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땅을 다스리는 총독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루셀라는 벨릭스가 얻은 세 번째 부인이었고, 다음에 나올 사도행전 25장에서 헤롯 아그리바 2세의 여동생입니다. 그녀의 오빠는 아그리빠 1세인데요. 여러분, 사도행전 12장에서 우리가 미리 봤던 인물입니다. 아그리파 1세는 12제자 중에서 야고보를 죽였던 인물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의 총독 벨릭스와 그의 아내 두루셀라, 그리고 그녀의 오빠인 헤롯 아그리빠 2세는 당대의 권력과 힘을 모두 가진 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권한이 막강했습니다. 벨릭스는 군대의 힘과 정치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바울의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두루셀라의 부친이나 오빠는 유대 왕이었기 때문에 제사장을 임명하고 성전을 관리하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왜 이 인물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냐면, 재판을 받고 있는 바울은 매우 초라한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이 없었고, 사슬에 매어 있을 수밖에 없는 죄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말씀을 전했던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었습니다. 만일 이런 그림을 오늘 무대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면, 볼품 없고 힘도 없는 제수 바울이 당시 가장 큰 권력자인 벨릭스와 두루셀라에게 의에 대해서, 절제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총독 벨릭스와 두루셀라가 매우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들이 두려워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기
이제 본문의 무대를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오늘 믿음을 갖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 우리 성도라면, 바울이 말한 의, 절제, 심판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우리 기독교 공동체가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기본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께서도 처음 공생의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첫 일성으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셨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주제가 교회나 우리들의 삶에 많이 들려지지 않고 말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가정에 매우 아끼는 보석이 있다고 합시다. 귀걸이도 좋고, 목걸이도 좋습니다. 반지도 좋겠습니다. 그걸 함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항상 보이는 곳에 두지 않고 매우 튼튼한 캐비닛에 잠가 버리고 보지 않는다면, 여러분 어떻게 될까요? 거기에 매우 소중한 보물이 담겨 있다는 것은 누구만 알까요? 자기밖에 모르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가 없죠. 바로 이것이 오늘 시대의 성도인 교회가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마치 이걸 감춰 버리고 있는 겁니다. 의에 대해서, 절제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말해야 되는데, 바울이 권력자들 앞에서 유일하게 선포했던 의와 절제와 심판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더 거룩한 부담이 되었고, 오늘 바울이 전했던 의와 절제와 심판이 무엇인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의에 대한 바울의 증언
먼저 첫 번째는 의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과 18절에서 의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은가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니." 여러분, 이 두 구절에서 17절과 18절은 서로 상호 반대적 개념의 의입니다. 17절은 믿음으로 살게 하는 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요. 18절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살리는 의가 있고 죽이는 불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의가 있고, 그 반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영원한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무엇을 믿는가입니다. 그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의에 이르는 것이고, 사는 것이며,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떤 아이러니가 있는지 아십니까? 이 단순한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인정하지 않아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로마서 1장 29절에서 31절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죄에 대해서 얘기하는데요. 제가 이걸 읽어 드리면, 여러분은 이것들이 죄라는 것을 동의하게 되실 겁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죄라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하시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이것들은 죄의 열매들입니다. 성경에서 죄를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이건 영어로 표현하면 'missing the target'입니다. 하나님께 가야 될 존재가 하나님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관역에서 벗어났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찾아야 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언급이 바로 지금 읽었던 앞 구절에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 앞에 보시면 이렇게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므로." 이것이 죄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죠. 인간의 본성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죄들이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믿지 않아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백성들. 바로 죄의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3장 23절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사랑하는 교회 여러분, 그렇다면 의로운 백성이 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매우 쉬운 결론을 내립니다. 그건 뭐냐면 죄가 해결되면 되는 겁니다. 죄가 해결되면 의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발생하는데, 죄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드렸잖아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요. 죄를 짓는 인간이 결국 죄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롭게 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죄 없는 존재가 그 죄를 갚아 주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죄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누가 이 죄를 갚을 수 있습니까? 바로 죄가 없는 존재가 갚아야 되는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그 죄를 갚아 주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게 죄 구속의 은혜인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성경의 구원의 사건을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맞습니다. 인간이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존재가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값을 지불하시고 구원하신 바로 이 사건이 의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백성이 되는 것은 여러분, 인간의 편에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의지, 내 노력, 내 능력, 내 선함이 없습니다. 내가 선하게 살기 위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9절에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네, 맞습니다. 의로움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았다고요? 내가 이렇게 자비를 베풀었다고요? 내가 이렇게 구원받는 것이 내가 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여러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랑해도 됩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선행과 노력과 열심으로 되어지는 구원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죠. 만일 그런 구원이라면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직 구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의로움입니다. 바로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죠. 본문에서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권력자가 행사하는 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의로움을 외친다 해도,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서 부패하고 썩어서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누가 이 땅을 의롭게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를 의롭게 할 수 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이 땅의 구원이요,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의로움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로움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mindmap
root(("의와 절제와 심판을 통해 삶을 돌아보자"))
("벨릭스 부부에 대한 이해")
("사도행전 24장 24절")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기")
("마태복음 4장 17절")
("의에 대한 바울의 증언")
("로마서 1장 17절")
("절제에 대한 바울의 증언")
("갈라디아서 5장 22절")
("심판에 대한 바울의 증언")
("히브리서 9장 27절")
("기도")절제에 대한 바울의 증언
두 번째로 바울이 선포했던 것은 절제입니다. 바울은 의에 대해서 말한 다음에 절제를 얘기했는데요. 얼핏 보면 의로움과 절제가 뭐가 연결될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걸 선포한 것입니다. 왜 바울은 절제에 대해서 말했을까요? 여기서 절제라고 한다면 어떤 제한된 행동, 행동에 맞게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말할 수도 있지만,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대상이 벨릭스와 두루셀라니까 이걸 감안해서 그들이 부도덕하고 음란하고 부패하고 뇌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이걸 선포했을 거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은 여기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절제가 의를 믿음으로 의를 받아들이는 모든 성도들이 살아가야 되는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라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그리스도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받은 성도라면 구원에 합당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구원받는 성도는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서 세상을 뛰어넘어서 살아가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나아가는 성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얘기하잖아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매우 중요한 핵심이죠.
이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을 보니까, 열매 중에서 가장 마지막 열매로 절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제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여러분, 이 구절은 아는 구절이지만 한번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절제를 빼고 생각해 볼까요?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절제가 없는 사랑은 어떻게 됩니까? 방종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간음과 음란과 성적인 타락으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절제가 없는 희락은 참된 기쁨이나 감사보다는 자극과 쾌락을 쫓아 충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독이 걸리기도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를 맺게 됩니다. 절제가 없는 화평은 어떤가요? 겉으로는 평화를 추구하고 온화해 보이지만, 절제가 없는 평화는 갈등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타협하게 됩니다. 때로는 편안함의 안주에서 나태함과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절제가 없는 오래 참음은 어떨까요? 인내함이 절제를 잃어버리면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감정을 참을 수 없게 되어, 자기의 감정을 쏟아부어서 타인을 공격하는 데 쓰게 되고, 때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절제가 없는 자비는 어떻습니까? 자비가 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으로 열매를 맺기보다, 절제가 없는 자비는 타인을 동정하게 되고, 때론 자기의 시간과 건강 또한 해치고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기도 합니다. 절제가 없는 양선은 어떨까요? 의도는 순수하고 선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무절한 호의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양선을 베푸는 사람에게 의존도가 높아져서 삶이 망가지기도 하고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절제가 없는 충성은 어떻습니까? 맹목적인 집착이나 파괴적인 성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균형 잡힌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여 충성하는 대상을 신격화하게 되고, 절제가 없으면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조차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절제가 없는 온유는 어떨까요? 온유의 원래 의미가 'power on control'이거든요. 통제된 힘을 이야기합니다. 원래 온유라는 말은 절제를 잃어버리게 되면 삶이 수동적이 되어버립니다. 유약해지고,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소극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제가 간략히 절제가 없는 성령의 열매들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 다가온 것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가정 속에서 내가 절제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여러분 혹시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한번 말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절제가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 구원받은 성도가 복음의 삶을 살아갈 때, 이런 절제를 통해서 열매 맺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성령의 열매 가운데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성도인 우리를 조롱하고, 세상이 성도를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비난하고 멸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우리가 절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제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내 삶에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께서 살아가신 삶을 살아가는 것, 바로 그 삶을 바울이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질문을 근본적으로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절제하며 주의 말씀을 증거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물음이 여러분에게 계속해서 던져지는 믿음의 본질을 향한 질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심판에 대한 바울의 증언
세 번째로 바울은 심판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죠.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이게 심판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죽음은 그냥 끝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보세요. 죽음 이후에 뭐가 있다?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죽으면 끝이잖아. 내가 육체가 죽으면 시체로 될 뿐인데 뭘 생각할 수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을 향하는 문이 열리는 길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 심판의 서막을 여는 길입니다. 죽음에서 끝난다면 그게 끝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러나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29절에서 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러분, 죽음 이후 영원히 사는 부활이 있는데, 부활의 삶은 둘로 나눠진다고 얘기합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오느냐 아니면 심판의 부활로 나오느냐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단지 도덕적인 착한 일을 하거나 어떤 선한 업적을 쌓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이 본문의 9절과 전체 문맥을 보면,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그리스도로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그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을 선한 일을 행하는 자라고 얘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믿음으로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의 심판 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대학생 선교회를 통해서 전국 대학생 수련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매년마다 지역을 선정해서 그 연합 수련회를 합니다. 제가 있던 기독교 단체는 CCC였고요. 그 대학생 선교에서 수련회를 마치고 한 3일 정도 그 도시에서 전도 팀을 꾸려서 전도 일정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건 자유롭게 참여해도 되고 참여 안 해도 되는데, 제가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마 안성으로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굉장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팀이 어느 마을에 갔는데, 그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더니 어느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니, 왜 지금 왔냐고. 왜 지금 오셨냐고."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기뻤죠. 그런데 우리가 또 다른 마을에 갔는데, 그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더니 어떤 한 사람이 칼을 들고 죽이려고 따라왔습니다. 이 극과 극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왜 복음이 뭔데 사람들은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일까요? 그 단순합니다. 이 복음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심을 받아들이면 영원히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복음의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 사람들은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극과 극의 반응을 보면서 저는 다시 본문에 벨릭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벨릭스는 복음을 듣고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했어요. 두려워는 하지만 복음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통해서 돈이 목적이었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벨릭스가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그가 시간이 부족했습니까? 아니요. 그가 복음의 진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러나 벨릭스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그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의 명예가 있었고, 물질이 있었고, 그가 갖고 있던 권력이 있었고, 그가 원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그가 갖고 있던 두려움은 있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전한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오늘 이 메시지가 오늘 시대에 전해진다면, 여러분 우리는 그리고 우리 공동체는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이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바울이 전한 이 메시지를 오늘 우리 삶에 두 가지의 반응으로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이 복음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여러분, 오늘 전해진 이 복음이 내일의 복음이 되지 말게 하십시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말할 때 벨릭스가 두려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그가 바울에게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지금 가라." 받아들이지 않아요. 가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연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일로 미루면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내일이 없어요. 오늘이란 시간, 지금이란 시간은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안에 복음에 대한 기쁨과 구원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고 여기신다면, 그건 여전히 내 안에 주님보다 갖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보다 내가 갖고 있는 물질이 많고, 주님보다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 많고, 주님보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차지할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은 외면하고 바울에게서 돈을 뜯으려고 했고, 바울에게서 명예를 추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예인데요. 사단이 어느 날 회의를 했습니다. 마귀들을 데리고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들을 무너뜨릴까?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들을 없앨까라는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한 마귀가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핍박을 합시다." 기독교인들에게 핍박하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동료 마귀들이 "아니, 크리스천들은 핍박을 해도 더 강하게 믿는데 소용이 없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 마귀가 또 아이디어를 올립니다. "그럼 그 기독교인들에게서 돈을 뺏읍시다. 돈이 제일 중요하니까 돈을 뺏자." 그래요. 그때 마귀들이 "돈을 뺏어도 그들은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때 미소를 띤 사단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에게 예배도 드리게 하고 기도도 하게 하고 찬양도 하게 하고 열심히 헌금도 하게 하고 봉사도 하게 해라. 그러나 내일로 미루게 해라." 이게 그들의 전략입니다. 이 시대의 세상과 사단은 교묘하게 우리를 이렇게 충동합니다. "내일 해도 되지 않아? 내일도 해도 되잖아."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이 주제는 복음은 너무 불편해요. 무겁습니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목사님, 전 아직 안 돼요.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해요.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한데요." 너무나 중요한 일들이 있는데 회의도 있고, 뭔가 만나야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요.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아니에요. 아닙니다. 오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이 복음의 삶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의 진리와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을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 삶에 예수 생명의 그 사건보다 예수 그리스도 미뤄져 있는 일은 없는가? 여러분 돌아보시고요.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 미루지 아니하고 오직 구원의 복음의 복된 소식을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이 복음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반응은 예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허구나 지어진 소문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무덤이 열렸을 때 거기 있던 군인들은 빈 무덤을 보고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지키지 못했으니까 자기들이 죽을 걸 알고 제사장들에게 갑니다. 그 사건을 알려요. 아직 빌라도 총독에게 말하지 않을 때 알립니다. 그럴 때 이제 제사장들이 뭐라 그러냐면 "예수의 제자가 그 시체를 훔쳐 갔다고 소문을 내라."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소문을 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거짓으로 드러나는지는 시간 문제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거짓으로 드러나는지 아십니까? 먼저 첫 번째로 빈 무덤을 여인들이 보게 하십니다. 여러분, 로마의 법정에서 당시 유대의 법정에서는 여인들이 재판의 증인으로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믿지 못할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매님들, 용서하십시오. 여러분들은 믿을 만한 존재지만 당시 여인들은 그랬다고요. 그런데 여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만약 성경이 거짓이라면 여인들을 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더 거짓으로 자극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여인들을 고스란히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고요. 심지어 바울에게도 보이십니다. 수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 4절에 이렇게 말하잖아요. 바울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되셨다가 성경대로 살만에 다시 살아나사."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3절과 14절에 이렇게 증언하죠.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절 같이 읽을까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 맞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을 목격했던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죽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부활의 사건을 부활의 증인이 되어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2,00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이 부활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 여러분, 주 부활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은 바울이 증언한 것처럼 의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의 삶을 살아가며, 심판의 제사장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 땅 가운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게 부활의 사건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서 58절에 더욱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선포가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고 믿음의 선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 압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며 승리케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시다. 이 땅의 삶에 흔들리지 마세요. 이 땅에 복음을 방해하고 세상이 우리를 멸하려고 찾아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의 의 되심을 바라보고 그 구원의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가 날마다 절제하며 주 앞에 나아가고, 복음의 선포가 이 땅에 심판이 있을 것을 선포하며, 바로 내가, 저와 여러분이 그 심판의 사건에 부활의 증인의 사건으로 살아갈 때 이 땅은 두려워질 것이고, 이 땅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영광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의 사건이 바로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수고가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활의 사건을 여러분의 마음에 새기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 예수의 구원과 심판, 절제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우리 주 예수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진 않나요? 우리 주 예수를 믿음으로 믿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세상의 소유와 명예가 물질이 예수님의 자리에 들어와서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시간에 여러분 손을 한 손을 높이 드시고, 여러분 이제 내가 주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 주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그 마음에 기도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한 손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있지만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원에 이르는 것은 입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입으로 시인하고 주님을 만나기 원하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 다시 촉구합니다. 그 자리에 앉은 자리로 여러분 아무도 보지 않아요. 손을 들어 주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이란 시간에 결단해야 됩니다.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함께 기도할 텐데요. 손을 드신 분들은 가슴에 손을 모으시고요. 여러분, 우리 함께 우리 모든 공동체가 저를 따라서 그분들도 함께 여러분 고백할 텐데요. 여러분 모두가 다 함께 저를 따라서 이렇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저는 지금까지 제 삶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회개합니다. 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이 시간 내 마음의 문을 엽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를 주님의 뜻 가운데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 가운데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핵심 정리
- 바울은 벨릭스 부부에게 의와 절제, 심판에 대해 전하며 복음의 본질을 강조했다.
-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다.
- 절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 심판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중요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나눔 질문
- 바울이 벨릭스 부부에게 전한 의와 절제, 심판의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 우리는 일상에서 의롭고 절제된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 심판에 대한 바울의 증언이 우리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 복음의 메시지를 내일로 미루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해야 할까요?
이번 주 적용
이번 주에는 의와 절제, 심판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고, 매일의 삶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도 · 묵상
하나님, 의롭고 절제 있는 삶을 살게 하시고,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