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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하는교회 • 백승철 목사] 사도행전 강해 (59) 27:13-26 |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사모하는교회 #백승철목사 #주일예배 #주일예배설교 #사도행전 #사도행전강해

백승철 목사 · 2026-09-28
설교큐티 — 주일 설교로 하는 6일 QT
본문
사도행전 27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설교자
백승철 목사
날짜
2026-09-28
설교 길이
33 분
설교 영상 재생
요약

바울이 로마로 향하는 항해 중에 겪는 어려움과 태풍은 우리 삶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환경과 조건을 따라 베닉스로 가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미양에 머물 것을 권합니다. 결국 태풍이 닥치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통해 생명의 소망을 전하며,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진정한 소망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구절
설교 구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여정

  1. 미양과 베닉스의 선택
  2. 유라굴로의 위기
  3. 바울의 메시지
  4. 하나님에 대한 확신
  5. 믿음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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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QT

이번 주일 설교로 만든 6일 묵상입니다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이번 주 말씀사도행전 27:25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1
월요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법
오늘의 본문사도행전 27:13-15

바울은 미양 항구에 머물 것을 제안했지만, 사람들은 더 좋은 조건의 베닉스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내가 선택한 길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오늘 실천하나님께 기도하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지 점검해보자.
기도하나님, 저의 선택이 당신의 뜻에 맞기를 원합니다.
말씀 확인 퀴즈

이번 주일 말씀에서 뽑은 5문제입니다. 보기를 눌러 정답을 확인해 보세요.

  1. 바울이 미양 항구에 머물러야 한다고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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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스크립트

설교자: 백승철 목사

날짜: 2026-09-28

바울이 로마로 향하는 길이 꼭 영화 '오디세이'와 같습니다. 뭐가 그렇게 막히는 게 많은가요?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재판도 2년 동안이나 진행이 됐습니다. 항해길이 심상치가 않아요. 지금 사도행전 27장 우리가 설교하려고 하는 본문의 내용 그 위치가 어디냐면 미항입니다. 그레데섬의 미양이라고 하는 작은 항구에 배가 머물러 있습니다. 그때 바울이 이런 제안을 해요. 이 미양에서 머물러야 한다고요. 이 미양이라는 항구를 떠나면 배도 손상을 입을 뿐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니 겨울철 약 세 달입니다. 그 당시에는 겨울에 배가 운항을 하지 못했어요. 항해를 하지 못했어요. 이유는 기상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배가 바다를 항해할 수 없는 그런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에 바울의 제안에 대해서 동의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 선장을 비롯해서 선주, 그 다수의 사람들이 미양이라고 한 항구에 머물지 말고 베닉스라고 하는 항구에 가서 우리가 겨울을 지내자고 의견을 일치시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베닉스 항구가 조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너무 미양이라고 하는 항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베닉스 항구가 조건과 환경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자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흐름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과 환경이 좋은 것들이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측정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을 화확인시켜 줍니다. 이런 환경을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도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의 의견을 기쁘게 듣지 않는 이유가 단 한 가지입니다. 베닉스는 미양 항구보다 조건과 환경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미양 항구를 떠나서 드디어 베닉스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배는 화물선 알렉산드리아 큰 화물선이라 그랬습니다. 약 40마일 정도 되는 거리예요. 출발을 해요. 13절 보십시오. 자, 읽어 볼까요?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다 그레데를 끼고 항해하더니." 예, 지난주 우리 기억하시죠? 미양 항구하고 베닉스의 항구는 40마일 거리입니다. 그리고 그레데 섬에 있는 항구예요. 출발을 하는데요. 이 성경을 보면서 느끼시는 게 없어요?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나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배를 밀어주지요. 그러니까 거기에 베닉스로 가자고 다수의 사람들이 의견을 일치시킨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냐면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우리 생각이 맞았다. 그리고 뒤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요? 바울을 뒷담화하겠지요. 바울이라는 인간이 무슨 미양에 머물자고 하더니, 이것 봐라. 이렇게 기상 조건도 좋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런 이야기도 했겠죠. 가장 주목해 볼 부분이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입니다. 예, 그들의 판단이 옳은 줄 알고 그들의 계획이 분명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생각하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줄 알고 다 해변을 끼고 항해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입니까?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요. 예, 이렇게 순조롭게 출발을 하는데 웬걸, 14절부터 보십시오. 기가 막힌 일들이 이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14절 읽어 보세요.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방풍이 크게 일어나니." 얼마 안 돼요. 이거요, 뭐 하루 이틀 3일 걸린 그런 시기가 아닙니다. 얼마 안 돼서요. 그렇게 잔잔하던 바다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 태풍입니다. 이 태풍 이름까지 기록해 놨어요. 다른 영어 성경은 허리케인으로 기록해 놨어요. 태풍하면 허리케인이 가장 강력한 거잖아요. 그 정도의 태풍이 불어닥친 거예요. 얼마 안 돼서. 예, 기가 막히죠. 그 짤막한 순간에 이렇게 뒤집힐 수가 있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질 수가 있습니까? 예. 얼마 안 돼서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태풍이 크게 일어나서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지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자, 15절 보면요.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태풍이 밀어붙이는 대로 가는 겁니다. 그 태풍이 밀어붙이는 곳은 어딘가요? 베닉스 쪽으로 배를 움직이게 하는 건가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태풍에 어쩔 수 없이 이 배는 밀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성도 여러분, 보세요. 이 사도행전 한국말 성경에 보면 14절을 이렇게 기록해 놨습니다. "마침내 얼마 안 돼서 섬 가운데로부터." 이렇게 기록해 놨어요. 네, 마침내. 응. 그 13절 다시 보십시오. 14절이 아닌가 13절에 보면 "마침내 남풍이 순하게 불매." 이제 출발할 때 우리 성경에는 마침내라고 하는 부사를 집어넣어 놨어요. 여기에. 이게 뭔가요? 치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그들의 뜻과 계획과 선택이 베닉스로 가는 그쪽 향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귀가 막히게. 그래서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았다라고 누가 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들의 마음 수업까지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여기랑 아주 비슷한 게 있죠. 요나서 보면 요나가 하나님한테 부름받잖아요. 그래, 다시 쓰러 도망을 갑니다. 이 하나님의 부름을 어기고 다시 쓰러 도망을 가는데 요나서에 분명히 기록해 놓기를 하나님 낯을 피하여 요바라고 하는 항구까지 내려갑니다. 비가 막히게 거기에도 마침 부사를 붙여 놨어요. 다시 쓰러 가는 배를 만났다. 다시 쓰러 가는 배를 발견했다. 그 배를 타고 도망을 갑니다. 여러분, 하나님 낯을 피하여 도망갔을 때 이 톱니 바퀴가 정확하게 맞아 돌아가는 것처럼 오늘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그들이 하 그들의 뜻을 이룬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기가 막히게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면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데 모든 게 조건이 잘 돼요. 모든 환경이 기가 막히게 잘 돼요. 마치 마침 남풍이 불어요. 마침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는데 요바라고 하는 항구에서 다시 쓰러가는 배를 만나요.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까? 예, 그 길이 하나님이 계획한 길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내포된 길입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네 뜻이 이룬 줄 알고 행복해합니다. 다시 14절 15절 보시면 얼마 안 돼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죠. 바람에 맞춰 갈 수 없는 사건이 이제 벌어집니다. 그러면 하나의 영화 장면처럼 상상을 하시면서 27장을 읽으시고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그 무슨 일을 해야 되나요? 배 있는 사람들이 이 태풍의 영향 아래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 애를 쓰고 노력하는 장면이 성경에 세세하게 기록해 놨어요. 16절을 보십시오. 이런 노력을 합니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을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태풍에 밀려서 베닉스 쪽이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어떤 섬이 보여요? 가우다라는 작은 섬이 보입니다. 이 섬이 그 알렉산드리아 배에 타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생명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가우다 섬을 지나치고 나서는 이 배가 도착하는 또 하나의 섬 말고는 그 이후에는 섬이 보이지 않아요. 이 섬은 생명줄과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이 가우다라는 섬에 배가 거기에 도착을 해야 돼요. 어찌하든지 살아야 되니까. 어찌하든지 육지에 머물러야 되니까. 그런데 이 가우다라는 섬은 너무나 작은 섬입니다. 완전히 좌절하는 거예요.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겁니다. 그 희망이 보이는데 소망이 보이는데 그 섬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을 합니까?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올리고 거루가 뭡니까? 예, 구명선입니다. 작은 배예요. 이 알렉산드리아 배는 큰 화물선이라 그랬습니다. 그 맨 뒤편에 이 작은 배를 갖다가 밧줄로 묶어 가지고 끌고 갑니다. 왜냐하면 그 배가 육지에 가까워졌을 때 바다 깊이가 배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낮으면 그때를 사용하려고 하는 배입니다. 그 거루를 간신히 끌어올려서 줄을 가지고 그다음에는 선체를, 배 선체를 줄로 감는 겁니다. 태풍에 의해서 배가 파손이 되면 안 되니까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요. 스르디스가 뭔가요? 모래 언덕입니다. 바다 밑에는 이런 게 있다 그래요. 큰 배들이 막 자초하고 파손이 되고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비가 무슨 그 산처럼 배 안에 그 바다 안에 있어 가지고 거기 부닥치면 큰 배도 산 조각이 납니다. 스르디스에 걸리면 배가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꼼짝할 수가 없어요. 그 지역은 스르디스라고 하는 모래 언덕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너무나 그것을 무서운 것을 알고 있어요. 그 선장, 선원들도 알고 있고 배를 타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요. 연장을 내립니다. 바다에 던지는 겁니다.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뭐에 쫓겨가는 거예요? 태풍에 그대로 밀려가는 거예요. 꼼짝 못하는 상황입니다. 또 있어요. 자, 봅시다. 지금 태풍에 쫓겨가더니라고 하는 이 말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태풍을 피해서 가야 되는데 태풍에 맡길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 태풍에 밀려가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죽을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겁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무슨 엄청난 노력과 애를 쓰는데도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 겁니다. 17절 보십시오. 18절 보십시오. 17절. "우리가 풍으로 심히 했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자, 드디어 거루를 갖다가 배 가판 위에 올리고 또 장비 같은 것도 버리고 그랬는데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버립니다. 이 짐이 뭔가요? 응. 그 화물선에 실린 공물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화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배를 아주 가볍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바다에 그냥 버리는 거예요. 19절에 보면 사흘째가 되는 날에 그때는 무엇까지 버립니까?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지구까지 버립니다. 여기에서 지금 슬픈 단상입니다. 그들의 손으로 사공들이 화물도 버리고 배의 기구, 거기 뭐 배를 움직일 수 있는 무슨 침대 같은 것도 있을 수가 있고요. 또 의자도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배에 필요한 무게가 나가는 기구들을 다 갖다 버리는 거예요. 바다에 그냥 던지는 겁니다. 누구 손으로? 그들의 손으로. 여기 짐을 버렸다고 하는 것은 돈입니다. 그걸 따지면 다 돈이에요. 곡물도 돈이고 화물도 돈입니다. 로마까지 가면 다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바다에 그냥 던져버리는 거예요. 그냥 캐시를 갖다가 다 바다에 그냥 뿌리는 거와 같습니다. 이 장면이 끝나고 그러면 태풍을 피해갈 수 있나요?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20절 보면 그 모든 애를 사도행전 20장 27장 20절이 이렇게 정리를 해 놓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 그대로 있어 없어졌더라." 이게 결론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데요. 여러 날 동안 약 14일 동안입니다. 해도 별도 보지 못했다. 날씨가 흐려졌겠죠. 이 해와 별은 그 당시 배가 항해했을 때 GPS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해와 별이 사라졌다고 하는 건 이 배가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얼마나 큰 애를 썼습니까? 이 태풍을 막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쓰는데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까? 태풍이 잠재워야 되는데 인간의 능력으로는 태풍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예요. 별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있음에 구원의 여왕마저 없어졌더라. 이것은 NIV 성경을 보면 "We finally all hope." 모든 소망을 우리는 마침내 포기했다. 구원의 여왕마저 없어졌다. 그런 뜻이에요. 이건 우리가 예수 믿는 그런 구원을 뜻하는 게 아니고 생명을 이어갈 한 가닥 희망이 모두 없어져서 완전히 우리는 포기한 상태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방법이 없었다. 보세요. 항해하다가 배에서 바다에 던지는 짐과 물건, 기구들이 있을 때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걸는데요. 이제 20절에 와서는 그런 희망조차 완전히 사라진 겁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해결책이 있다. 이게 복음이에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여왕을 받아 없어서 이런 삶을 한 번쯤은 경험하죠. 인생 살다 보면 아주 내 그 생각조차도 공간이 완전히 비어 있을 만큼 예전히 모든 걸 포기할 만큼 그런 상황까지 벌어질 수가 있다. 이때 또 사람들은 얘기했을 거예요. 분명히 응. 뒷담했을 거예요. 맞다. 미양에 있었을 때 바울이 이야기했던 것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 왜 안 하겠어요? 미양에 그냥 머물렀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데 이제는 우리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가? 여왕마저 없어 상태였습니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합니까? 바울이 해결합니다. 바울이 해결하는 과정을 잘 보십시오. 21절 보십시오. 자, 같이 읽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에 대해서 떠나지 아니하여 타격과 선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뭐가 이상한가요? 바울이 또 한 번 등장합니다. 이게 영화로 말하면 또 다른 하나의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모든 걸 포기했을 때 바울이 일어나서 21절과 같이 또 한 번 외치는 건데 21절의 내용이 가슴을 칩니다. 여기 보면 앞문장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모두는 아니더라도 배멀리하는 사람도 있고 뭐 얼마나 출렁거리겠어요. 다친 사람도 있고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뭐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 상황에서 바울이 일어나서 하는 메시지를 보십시오. 그러면 먹을 걸 주고 위로해야지. 그런 말이 아니라 내가 내 말을 듣고서 그래 떠나지 아니하. 미양이라고 하는 항구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면 이런 손상을 너희들이 입었겠느냐? 응. 왜 내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고생하느냐? 이렇게 들릴 수 있잖아요. 내 말을 안 들어서 수고 고생을 하는 거 아니냐, 지금 힘든 거 아니냐. 이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 바울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레데 미양이라는 항구에서 외쳤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가 있어요.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울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지식에 기초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배 안에는 안 믿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여기에다가 설교를 한다 그러면 설교 내용도 들을 수가 없어요. 바울이 말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 말씀의 지식에 기초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기초에서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 기본이 깔린 내용을 일반 언어로 표현을 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강력하게. 그러면서 이런 얘기하지 않습니까? 22절 한 번 보십시오.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브라함겠고 오직뿐이니라." 이게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포기했습니다. 이제 죽는 길밖에 없다고 결정을 하고 있는데 바울이 안심하라 그럽니다. 이 안심하라고 하는 뜻은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배가 뒤집히는 상황인데 바울은 기뻐하라. 이 상황을 이유는 그래도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다. 이런 선포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이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이 기초가 아니면 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너희들의 생명을 살린다고 하는 선포입니다. 그 메시지를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을 한 거예요. 이것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로마로 향하는 길이 배를 타고 쉽지가 않아요. 너무 복잡하고 여러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로마로 향하는 배 향방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우리 신앙과 믿음을 되돌릴 수 있는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세 가지 소망입니다. 자, 23절 보십시오. 23절 같이 읽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 바울은 죽음 직전입니다. 이 배가 파손할 위기입니다. 폭풍이 몰아칩니다. 그때 바울이 말하는 이 소속에 대한 내용을 잘 들어 보십시오.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는 겁니까? 하나님에게 속한 자이다. 나는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나는 선장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배에 속한 것도 아니고 선주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나는 여러분에게 속한 것도 아니다. 속한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 속한 존재이다. 나는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나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예배하는 사람이다. 자기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좋은 상황에서요. 나는 믿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 소속을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드러내는 것은 분명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두 번째 24절 보십시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가사 앞에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아니하는 자를 다 내게 주셨다 하였으니." 이게 쉽지 않은 항해인데 두 번째 확인해야 될 것은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심에 대한 소명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바울은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흔들리지가 않습니다. 체포됐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재판받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태풍이 몰아쳐 바다가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가 않아요. 아예 이렇게 대놓고 얘기해요. 하나님은 나에게 나를 부르셔서 사명을 맡겨 주셨는데 어떤 사명이냐? 로마까지 가서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그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이 날 부르셨다. 사명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모하는 교회의 목회자라 부르셨으면 이런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소명이 사라지면 이 자리에서 설교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은 변하지가 않아요.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불렀으면 하나님 자녀와의 관계는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누가 훼손합니까? 우리가 훼손해요. 바울은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과 사명을 흔들리지 아니했다. 아예 그 사명을 공개해버렸습니다. 세 번째 확신입니다. 25절 보십시오. 자,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강력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나는 그대로 될 것을 믿노라. 아멘. 되는 것을 확신하노라.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나는 믿노라. 강력한 거예요. 이거보다 더 강력한 게 뭐가 있습니까? 여러분, 성경 66권이 내 삶 속에 들어와서 내 사역 속에 들어와서 내 사명 속에 들어와서 그대로 되리라는 것을 믿어야 되지 않습니까? 아멘.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도 경험하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도 경험하는 거 아닙니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바울은 자기의 신앙과 믿음을 그대로 되리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라 하더라. 이게 대단한 겁니다. 이게 도저히 끝끝이지 않을 것 같은데 대풍이 확신에 대한 소속과 그리고 부르심에 대한 소명에 대해서 또 믿음의 확신에 대해서 선포하고 난 후에 확실한 것을 말씀하는데 우리가 태풍에 밀려서 배가 항해 도중에 바닥 가운데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한 섬, 한 섬인데 어떤 섬인지 몰라요. 바울은 그러나 한 섬에 도착할 것을 확신했다. 그것이 그대로 되리라고 하는 하나님 믿음을 믿었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깊게 생각하면서 우리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라. 아멘.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그 사실을 드러내는 거, 이거는 보통 신앙과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들도요. 잘 믿지 않을 거예요. 그럼 네가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축복이라 그 말할 수가 있는데 태풍에 흘려서 죽음 직전에 있을 때 나는 그래도 나의 속한 것은 하나님이고 나는 그 하나님을 그 현장에서도 섬기고 예배하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보통 신앙의 경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이 때까지 그 방향을 잡고 걸어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부르심에 대한 소명을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또 하나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속에서 그대로 되어지는 그래서 하나님을 믿노라 고백할 수 있는 이런 사역과 믿음의 여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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