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억지로 가신 게 아니에요. 오히려 시험을 받으시는 것은 성령에 이끌려서 그 시험을 받으셨다라는 거죠. 우리 생각에는 우리 주님께서 금식을 하시고 40일 동안 아무것도 안 드셨기 때문에 가장 약할 때 시험을 받으신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거는 절대로 아니죠.
우리가 지난주의 말씀에서도 보았듯이 마가복음 1장 1절에 보면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복음이다라고 말씀을 했죠.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바로 복음의 시작입니다. 공생의 시작을 세례받으심으로 하셨는데, 그 세례받으신 후에 바로 예수님이 경험했던 그 은혜는 정말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시게 되죠. 그게 마가복음 1장 9절에 나오는데, "그때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에서 이런 소리까지 들리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그런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렇죠?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큰 환대를 받으셨을까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면서 시험을 받으시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배가 40일 동안 굶주리셨기 때문에 약하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떤 분들은 일부러 금식이라도 하시잖아요. 영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러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약했기 때문에 시험받으신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상태에서 시험을 받으셨어요. 왜 이 시험이 필요했던 걸까요? 왜 예수님은 이 시험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약간 신학적인 용어를 좀 쓸 필요가 있는데, 첫 번째 아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아담이 누구예요?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아담. 창세기에 나오는 그 사람이 첫 번째 아담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문제는 이 첫 번째 아담이 마귀가 주는 시험에 넘어갑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 첫 번째 아담이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시험에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원죄라는 것에 빠지게 돼요. 다 죽을 수밖에 없게 되고, 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그걸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첫 번째 아담이에요. 첫 번째 아담.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이시거든요. 그러니까 뒤집어 놓으셔야 돼요. 첫 번째 아담이 시험에서 졌잖아요. 시험에서 넘어갔기 때문에 원제가 들어오고 모든 인류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뒤집기 위해서 오시고 같은 시험을 받으시면서 오히려 승리로 뒤바꿔 놓으면서 온 인류가 구원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오신 거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이에요.
로마서 5장 12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죠." 그게 첫 번째 아담이잖아요.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또 사망도 들어왔어요.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어요." 이게 이제 첫 번째 아담이 만들어 놓은 카오스예요. 이제는 두 번째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걸 어떻게 해야 돼요? 해결해서 온 인류가 구원의 길로 가게 만드셔야 돼요. 그러면 첫 번째 아담이 망쳐 놓은 것을 똑같이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시험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승리로 바꿔 놓으셔야 되잖아요.
그래서 로마서 5장 19절에 이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이제는 반대로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아담이신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오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험을 받으시는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만약에 여기서마저 그 두 번째 아담이 넘어지면 인류는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없어요.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셔야만 오신 목적이 해결되는 거예요.
그래서 먹는 것 때문에 넘어졌잖아요. 그렇죠? 먹는 것 때문에. 예, 먹지 말라는 것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예수님도 똑같은 시험을 받으세요. 먹는 걸로. 그래서 마태복음 4장 3절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와 이르되 내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이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죠. "너 배고프잖아. 먹는 거 필요하잖아. 먹어. 네가 만들어서 먹어. 너에게 능력이 있잖아." 그런데 사탄의 말대로 따르면 예수님이 지게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아시고 4장 4절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사탄의 그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십니다. 말씀으로 이기세요. 그래서 당당하게 두 번째 아담의 오신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주님은 승리하신 거예요. 승리하신 거예요. 아담 복음인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신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왜 우리는 지고 있을까요? 두 번째 아담이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승리의 본을 보여주셨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지고 있는 걸까요? 그것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왜 우리는 아직도 지고 있는 걸까? 첫 번째 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기 때문에 그래요. 오늘 말씀을 좀 자세히 볼 필요가 있어요. 4장 3절에 시험하는 자가 사탄이죠. 그렇죠?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렇죠? 우리 주님은 능력이 있어서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실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떡덩이가 되게 하라면 누가 누구 말을 듣는 거예요? 누가 누구에게 순종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사탄에게 순종하는 꼴이 되잖아요. 그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건 말이 안 돼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대답으로 말씀으로 물리치셨는데 여기 아주 중요한 뜻이 있어요. 보세요.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을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라고 정답을 얘기하면서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여기 정답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 이기느냐 하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굉장히 중요한 단어가 '모든'이에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게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답이 있다는 거예요. 모든 말씀.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할 때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앞에 나아가면 답이 있어요. 왜요? 모든 말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모든 말씀 안에서 답을 찾지 아니하고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면 내 뜻대로 뭔가를 찾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거는 타협하는 거가 돼요. 타협하는 거 같아요. 예.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 믿어야 되는 게 뭐냐면 하나님 말씀 속에 모든 답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어떤 것을 결정할 때는 모든 것에 답이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 말씀 앞에 나아가서 질문하고 거기서 답을 얻고 거기서 답을 얻은 대로 살아가야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게 된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 속에만 답이 있다라는 거죠. 그것을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야, 답 없어."라고 이야기할 때가 참 많아요. 어떻게 보면 저는 미국에 처음에 들어왔을 때 운전 면허가 없었어요. 17살 때 왔는데 18살부터 운전면허를 따야 하니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딸 자격이 주어졌죠. 그런데 문제는 영어도 못 했고, 영어로 시험을 봐야 되는데 학원 돈도 없었고, 학원에서 운전 배울 돈도 없었고, 시험지에 취험을 쳐야 되는데 뭔 소리 하는지도 몰랐고, 답이 없어요. 답이 없는 거예요. 뭐 돈도 없었고 뭐 답이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미국에 오자마자 얻은 잡이 봉제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왜 봉제 공장에서 일을 했냐면 유일하게 버스가 가는 데가 봉제 공장이에요. 차가 없으니까 볼티모어 다운타운에 봉제 공장이 있는데 유일하게 내가 차 없이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데가 거기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72시간을 하루에 12시간씩 72시간을 저를 부려먹으면서 150불을 줬어요. 그런데 영주권도 없는 사람인데 택시로 30불을 떼갔어요. 그 주인, 그 30불 어디서 썼는지 저도 몰라요. 그러니까 120불 가지고 뭐 아파트값 내고 살아야 되는데 운전은 꿈도 못 고고, 그런데 유일하게 운전을 돈을 더 벌려면 이제 차로 운전을 하고 가야 좀 그래도 페이를 초이스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저를 보면서 제 삶이 너무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저한테 그 시험지 답을 줬어요. 운전면허 통과하는 답만 줬어요.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는 얘기를 안 해 주고. 예. 시험이 다섯 가지의 유형이 있는데 세 번째 그림이 스톱 사인이면 이거 쓰고 20개의 답을 쓰고 드라는 그림이 나오면 20개의 번호를 쓰래요. 답안지 순서대로. 예. 그게 다섯 종류예요. 그림이 다섯 종류를 보여 주면서 "이럴 거니까 너는 그냥 믿고 써." 100점은 안 나온대요. 왜냐? 400점 맞으면 문제가 유출된 걸 알기 때문에 80 몇 점 정도 나올 건데 하여튼 그럼 통과니까 예. 그냥 그림 보고 쓰래서 저는 이렇게 손가 손에다가 그림을 스톱 사인하고는 20번호로 쭉 쓴 거예요. 그 딱 쓰고 20번 쓰고 쭉 썼어요. 그 딱 앉아가고 시험지를 주더라고요. 옛날엔 컴퓨터가 아니었으니까 시험지 딱 주니까 믿고 "어 세 번째 이거네. 그럼 이거 써야지." 하고 번호로 다 썼더니 진짜 88점인가가 나왔어요. 통과가 된 거예요. 예. 뭐 정말로 저는 감사했죠. 그 사람한테. 예. 공범이 됐지만 죄는 졌지만. 예.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나는 이거 아니면 어떻게 방법이 없어. 학원 갈 돈도 없고, 그럼 운전을 못 하면 돈도 못 더 벌 수도 없고 수입을 느릴 수도 없고 유일하게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이 금방밖에 없어 하고 세상과 타협을 한 거죠. 한마디로 말하면 죄를 진 거예요. 그 당시에는 신앙생활도 뭐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그런데 문제는 이게 공부를 안 하고 통과를 하니까 법도를 모르는 거예요. 법규를. 예. 노턴 웨드. 뭔 소린지 모르겠는 거예요. 네. 그래서 경찰한테 딱지 뛴 적도 있고. 그런데 가장 크게 딱이 뛴 게 뭐냐면 이렇게 스쿨버스가 가잖아요. 스쿨버스가 앞에 섰는데 그 스쿨버스가 딱 쓰면 스톱프 사인 카이 사인을 딱 이렇게 보내잖아요. 그러면 차가 절대로 가면 안 돼요. 스톱 사인 스쿨버스가 스톱사인 불 딱딱 들어오면서 딱 켜면 이게 접히고 스쿨버스가 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가면 안 되거든요. 몰랐어요. 저는 포웨이 스탑 사인처럼 예. 좀 기다렸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가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갈 때마다 이 스쿨버스 아저씨가 빵빡 빵빡 누르는 거예요. 저 왜 왜 왜 저런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경찰한테 된통 걸렸어요. 왜 가냐는 거예요. 그래서 얘기를 했더니 더 하단 맞았죠. "너는 어떻게 통과를 했냐고." 예. 예. 그러면서 이게 뭐 스쿨버스랑 연관돼 가지고 벌금 넘쳐 물었는데 이게 모르잖아요. 그럼 위험한 거예요. 위험한 거예요. 예. 타협을 하면 세상에 위험을 끼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뭐냐면 또 나도 잘났다고 해 가지고 그 문제를 킵해 있다가 나랑 비슷한 상황 있는 사람에게 이제 나눠 준 거예요. "아저씨 요렇게 하면 돼요." 그런데 내가 문제를 나눠 준 사람이 한 10열 명 정도 되는데 또 떨어지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희한하게. 그래서 왜 떨어졌나 봤더니 아니 어디다가 적어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걸릴까 봐 그 번호를 외워 갔네. 와 그 백문제를 어떻게 외워 가지고 그거를 골라 썼는지 모르는데 그러니까 떨어지죠. 그 와중에도 또 양심을 챙기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예.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나눠 준 분들이 다 위험에 처하도록 만든 게 또 제 장본인이잖아요. 예. 우리 교회도 그 보험하시는 분들 참 많은데 그 옛날 얘기입니다. 저 지금은 라이빙 스쿨도 많이 다니고요. 지식으로 많이 늘었기 때문에 옛날 얘기이기 때문에 예. 그런데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답이 있는데 우리는 타협하는 것을 고르다 보니까 불순종하며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거든요.
또 신앙이 좀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를 하는 따지는 분들도 꼭 있어요. "아, 예수님이 5천명을 먹이셨는데 그거는 왜 문제가 안 되냐고." 왜냐하면 사탄이 요구한 걸 들어준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죠. 하나님의 뜻을 이룬 거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 앞에 그 5천명을 먹이신 거기 있기 때문에 그건 괜찮아요. 그건 괜찮아요. 그런 거를 구분할 수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문제는 타협하면 안 되는 거예요. 타협하면 그게 죄라는 거예요. 예. 언제든지 항상 하나님 말씀 앞에서 모든 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해결해 가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또 많아요. 왜 넘어질까요? 우선순위의 문제가 그걸 무시하려고 해요. 우선순위.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1절에 보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얘기하시잖아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의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렇죠? 하나님이 아세요. 하나님 아세요. 다 알아서 주실 거예요. 우리 할 일은 그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얘기하는 거든요. 우선 순위를 따지라는 거예요. 그것도 정답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 안에 답이 있어요. 답이 있어요. 그 우선 순위대로 살아가면 돼요. 살아가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우선 순위를 자꾸 무시하려고 해요. 여러분도 솔직히 주기도문에서도 이 우선순위의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요. 이름이 거룩히 받으시는 게 먼저고요. 나라에 임하옵시는 게 먼저고 뜻이 안에서 이룬 거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게 먼저예요. 그다음에 우리에게 이러한 양식을 주옵시며." 이 한 양식은 뒤예요. 이렇게 주기도문에도 우선 순위에 대한 얘기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우리는 자꾸 우선 순위를 무시하고 하나님 주시는 모든 말씀에 안에서 답을 구하려고 하지 않아요.
여러분들 마태복음 6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런 얘기까지 하시거든요. "공중의 새를 봐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존재가 누구냐? 우리거든요. 그래서 우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주실 뿐이 우리 하나님이에요. 그걸 믿으세요. 예. 그러면서 30절에 그런 얘기 하잖아요. "오늘 있다가 내 아궁에 던져진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이쁘시다. 하요. 너희가 보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면 염려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를 맡기고 하나님 앞에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라고 해. 그런데 그걸 못 해요. 왠 줄 알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욕심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는요 믿어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자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요. 그리고 나를 종기하게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줄 아는데 문제는 우리 안에 이런 욕심이 있어요. 솔직히 주님 제가 염려하는 건요. 하나님이 저를 배고프게 할까 봐 염려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고기를 먹고 싶은데 고기 안 주실까 봐 만나만 칭창 주실까 봐 그래서 하나님 저는요 예, 그게 염려가 되는 거야 이런 분들 되게 많아요. 그런데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33절에 그런 얘기 하거든요. "그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를 의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 고기도 주실 거예요,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주실 거니까. 주실 거니까 우리는 우선 순위를 따져서 하나님 위해서 나오는 모든 말씀대로만 살면 우리는 순종하게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럼 더 이상 우리는 넘어지지 않아요. 넘어지지 않아요. 우선순위.
저는 여러분들이 항상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위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적용하면서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나보다 훨씬 나를 사랑하시고 아끼신 하나님이심을 의심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 두 번째 시험이 이거예요.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게 세우고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니 내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를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이 부딪히게 않게 하리로다"라고 마귀가 시험을 합니다. 높은 곳에 뛰어내리래요. 그럼 천사가 와서 받쳐 주고 지켜 줄 거니까. 예. 뭐 틀린 말 같지는 않아요. 틀린 말 같지는 않아요. 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 이야기를 하시죠. 이것도 말씀으로, 네. 하나님께 주신 모든 말씀으로 적용하면서 대답을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솔직히요. 이거 뻔히 보이는 거잖아요. 마귀가 세링한 거잖아요. 예. 그리고 솔직히 여러분들한테 성적 꼭대기에서 "야 뛰어내려. 그럼 하나님이 너를 지켜 줄 거야."라고 마귀가 시험하잖아요. 그럼 이 가운데 한 명도 뛰어내릴 사람이 없다고 제가 장담합니다. 왜냐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없거든요. 이 시험에 누가 빠지겠어요? 혹시라도 여러분들 "저 뛰어내릴 거예요. 하나님이 저를 지켜줄 줄 믿고 저는 뛰어내릴 거야" 하는 분들 있으세요? 예. 그러면 이단 교회 가세요. 예. 이거는 우리가 넘어갈 시험이 아니에요. 우리가 넘어갈 시험이 아니에요. 지금 당장 우리가 넘어갈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시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시험은 맞아요. 그게 뭐냐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위험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건지시고 계시는 것은 맞아요. 모든 시험에서. 예.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고린도서 10장 13절대로 우리 하나님께서 행해 주세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지음에 또한 피할 길을 계셔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건 지금도 우리가 당면하고 문제이고 지금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해결해 주시고 계시는 정답이에요. 우리 신앙을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지금도 하고 계세요. 그죠? 예. 히브리서 2장 18절도 마찬가지예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은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주님 시험을 당해 보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시험을 능히 도와주고 계세요. 여러분들이 알 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에 이렇게 역사하고 계시는 것 맞습니다. 맞아요. 왜요? 이것이 여러분에게 신앙이 돼서 하나님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지켜 주시는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지금도 이렇게 역사하세요.
마태복음 6장 26절도 마찬가지예요. "공중에서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대. 너 하나님께서 기르시나니 너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너무 귀하게 여기셔서 다른 것보다도 귀하게 우리를 키우세요. 존귀하게 우리를 만들고 계세요. 그게 지금 우리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거예요. 예. 그래서 우리로 4장 4절처럼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여러분들은 그의 그 프로텍션 안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은 "내가 위험한 곳에 있을 때 나를 지키시고 내가 정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나는 믿습니다"라고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금까지 신앙의 훈련을 시키고 맞는 것 그렇게 이렇게 하시는 게 좀 맞아요, 여러분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번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 말씀이 배경이 그거잖아요. 신명기서 8장 3절에 예, 뒷부분에 보면 "여호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내가 알게 하십니다." 이게 신명기서 이미 나온 말씀이에요. 그죠? 정답이 나온 말씀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배경이 신명기서에 나와요. 이 말씀이. 그런데 이 말씀의 배경이 출애굽 처음 이제 하면서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키시는 거예요. 훈련을 시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만이 정답임을 알게 하려고 훈련을 시키시고 그러면서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먹이셨잖아요.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배고픈 적이 없어요. 배고픈 적이 없어요. 그렇게 40년 동안 이들을 키워 놨는데 신앙으로 키워 놨는데 이들은 가데스 바네아 앞에서 40년이 지난 후에 정탄권을 보내고 원망을 해요. 원망을 해요. 왜 우리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왔냐고. 그게 너무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뭐예요? 40년 동안 훈련해 놓은 결과가 40년 동안 훈련한 결과가 "예,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은 배고픈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배고픈 적 없잖아요. 만나를 주셨는데. 그런데 이들은 왜 원망할 거 하는 거예요? 배고플까 원망을 하는 거예요. 배고플까. 그러면서 이들이 내리는 결론은 뭐냐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하나님은 안 내가 뛰어내리면 나는 나는 안 지켜 주실 거야. 이게 이들이 내리는 결론이에요. 그게 안타까운 거예요. 하나님이 이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40년 동안이나 훈련을 시키시고 먹이시고 한 번도 배고픈 적이 없도록 만드셨는데 이들은 배고플까 봐. 죽을까 봐. 예.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라고 확신하면서 이들이 신앙생활을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 사는 것이 너무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안타.
혹시 여러분들 중에 그런 분들 없으세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많다고 생각을 해요. 예. 하나님은 잘 키워 놨는데 오해해요. 나는 안 그 가운데 나는 안 지키실 거야. 나는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는 존나 나는 그 종교함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여러분들 자식을 키우잖아요. 자식을 키워요. 애를 낳고 40년 동안 생각해 보세요. 40년 동안 이들이 신앙생활 잘하면서 잘 자라기를 바라면서 부모가 이들에게 신앙을 주고 키워요. 그런데 이들이 내린 결론이 이럴 때가 많아요.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 준 게 뭐야?" 왜? 벙지는 거죠? 왜? 아니, 내가 너를 위해서 해 준 게 없어. 그런데 이들이 내린 결론은 사랑을 받을 줄을 모르는 거예요.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원망뿐인 거예요. 원망뿐인 거예요. 예. 그리고 정말로 치사하고 안 입고 온 건 뭐냐면 "지가 돈 번다고 지가 돈 번다고 돈 내면 될 거 아니야." 지가 벌어서 얼마나 본다고. 예. 정말 그거는 욕이 나올 정도로 돈질하는 거죠. 부모 앞에서. 그렇지 않아요? 예. 다 키워놨더니 하는 결론이 그거예요. 사랑으로 키워놨더니 내린 결론이 "예. 돈 주면 될 거 아니야. 얼마면 내 이게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도 그런 성도들이 엄청 많다는 거예요. 예. 하나님이 정말로 감당한 시험만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 능히 이기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사랑으로 대하라고 하나님 얼마나 이들을 사랑하고 종교 여기는지를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데 이들은 오해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하나님 나에게 해 준 게 뭐예요?" 예. 이러면서 하나님 내 기도는 왜 안 들어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 보면 우리의 지혜가 모자른 거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왜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거 같은 줄 아세요? 하나님이 그런 대답을 하세요. 예. 그 보면 이사야서 55장으로 넘어가죠. 시간 때문에. "이는 내 생각이 너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면서 "야, 네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 그런데 내가 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거야." 하면서 9절에 이런 얘기를 하세요. "이는 하늘의 땅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다." 그러니까 하나님 생각이 더 옳다는 거죠. 그러면서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대로 대로 돌아가지 않고" 이게 무슨 얘기냐면 이제 비가 이렇게 내리잖아요. 그럼 우리 생각에는 그 비가 내 입으로 이렇게 들어가면서 시원하다, 맛있다. 이게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게 아니에요. 오히려 내 입을 적시기보다는 땅을 적셔요. 땅을 젖혀서 땅에서 소출이 나게 해서 싹이 나게 하고 파종화에서 열매를 맺게 해서 우리에게 더 좋은 아, 시원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양식을 주시는 거예요. 양식을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이 땅이 다시 베이퍼하지 된다 그러나요? 수중기가 돼서 그게 다시 물이 돼서 우리로 마시기까지 하게 하시는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인 거예요. 그런데 우리 무식한 인간들은 "예, 하나님 왜 내 입에 안 넣어 주세요? 왜 기도 응답 안 하세요?" 왜 하나님 이러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니까 이게 하나님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을 착각하면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는 뛰어내리면 하나님은 나 안 잡아 주셔"라고 착각하면서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그 안타까운 인간의 그 모습 사랑받을 줄 모르는 모습 하나님이 종귀하게 여기시는데 우리가 종개함 당할 줄을 모르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 원망하면서 시험하고 죄짓는고 있는 그 꼬락선이가 정말 하나님 얼마나 안타까운 가라는 생각을 해 보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죠.
그런데 혹시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예.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셔야 되는데 나는 아니야.라고 착각하지고 있지 않으세요? 아니에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세요. 나보다 나를 더 존귀하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만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세요. 착각하지 마세요. 오해하지 마세요. 물론 우리가 왜 그런지는 저는 알아요. 그 이유는 우리 육신의 아버지의 잘못일 때가 참 많아요.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아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 육신의 아버지의 잘못된 사랑이 우리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육신 아버지의 사랑이 이런 거예요. 예. 우리가 집에 늦게 들어오면 "너 죽을 줄 알아. 예. 집에는 왜 안 들어오고 난리야? 들어오기만 해 봐. 다리 몽둥이 부러뜨릴 때니까 빨리 들어와." 그럼 뭐 어쩌라고요? 빨리 들어가면 다리 몽둥이 부러질 건데 뭐 어쩌라는 얘기예요? 예. 그러면서 그게 사랑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게 사랑이 아니잖아요. 예. 거기는 종기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육신의 아버지의 그 아바 아버지랑 겹치는 이미지가 겹치다 보니까 사랑받을 줄 모르고 사랑받아도 이게 사랑인지를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아요. 예. 물론 그런 경우도 많다라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바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사랑하시는 분이 맞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위험한 곳에서 뛰어내리면 이미 준비하시고 받아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라는 확신을 갖는 여러분들이시길 바래요.
그래서 아하면 아로 알아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길 원해요. 정말 하박국 3장 17절에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으며 감난나무의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게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이게 사랑이에요." 예. 나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사탄도 하나님 앞에 그러잖아요. 하나님이 복 주시니까 욥이 저러는 거라고. 아니에요. 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복이에요. 하나님이 복이에요. 예.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님이에요. 바로 그러한 관계가 되어져야 돼요. 그럴 때 우리는 이 시험에 넘어가지 않는다라는 거죠.
세 번째는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우리가 시험에 빠져요. 여러분, 오늘 마귀가 세 번째 시험이 한 말 중에 이상한 말이 있어요. 마태복음 4장 8절에 보면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국과 그 영광을 보며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내게 주리라." 여러분들이 사탄의 말이 맞아요? 틀려요? 사탄이 줄 수 있어요? 없어요? 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첫 번째 아담이 뺏겼어요. 예. 죄를 짐으로 말미암아 져 가지고 뺏긴 거예요. 예수님이 이거 찾으러 온 거거든요. 이거 찾으러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마귀가 한 말은 틀리진 않아요. 주면 마귀에게는 능력이 있어요. 그걸 그 하나님의 법칙이 이거거든요. 베드로서 2장 19절에 보면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해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이게 하나님 법칙이잖아요. 첫 번째 아담이 졌어요. 할 말이 없어요. 져 가지고 다 뺏겼어요. 이제는 예수님이 이걸 이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사탄이 요구하는 게 뭐냐면 절만 하면이에요. 나에게 경배만 하면 다 죽게. 그런데 이게 뭐냐면 결과는 이룰 수 있지만 사탄이 뭘 무시하는 거냐면 과정을 무시하는 거예요. 사탄은 여러분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일을 이룰 때 결과만 중요시면 오히려 죄를 짓게 돼요. 우리에게는 과정이 중요해요. 과정이.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기기 위해서 꼭 해야 되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십자가예요. 십자가라는 과정을 져야만 이것이 인정이 돼요. 십자가라는 것을. 예.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6절에 보면 정답이 이거거든요.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십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라는 과정이 없으면 하나님과 화목도 없어요. 그러니까 데려올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과 화목이 없는 관계가 되는 완전히 잘못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결과만을 중요시면 결과는 이룰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 빠진 거는 아무런 능력도 아무런 혜택도 없어요. 우리의 특별히 우리 믿는 성도들은 십자가라는 과정이 있어야만의 정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이거를 원하지 않는 거예요. 십자가라는 과정을 지기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 우리에게 항상 얘기하잖아요. 누가복음 9장 23절에 "또 물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정을 무시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늘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가 져야 될 십자가가 날마다 져야 되는데 오늘은 내가 저에 대한 십자가를 모른다면 기도하면서 내가 저에 대한 십자가가 뭔지를 깨달아서 십자가를 질 때야만 그 과정이 완성이 되고 시험에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 결론을 내리죠. 여러분들 우리는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되고 시험을 이겨야만 합니다라고 제가 설교를 했어요. 제가 설교를 실컷했지만 기운 빠지는 얘기 하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죄를 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넘어집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제가 두 번째 아담이 아닌 게 목사지만 저는 두 번째 아담이 될 자격이 없어요. 자격이 없어요. 예. 그런데 예수님이 복음이시고 그분이 두 번째 아담이 되셔서 이겨 주셨다는 것 저는 거기에 감사가 있고 거기에 정답이 있어요.
보세요. 여러분들 제가 피아노로 베토벤의 음악을 칩니다. 여러분들 너무 의아하게 바라보시는데 저 피아노 쉴 줄 알아요. 저 10년 배웠어요. 어릴 때부터 10년 쳤는데 딱 바이엘 2권까지 끝나더라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두 손으로 못 쳐요. 한 손으로는 낙볼 보면서 칠 수 있어요. 예. 그런데 제가 베토의 음악을 쳐요. 그런데 너무 못 쳐요. 그러면 베토벤을 욕합니까? 저를 욕합니까? 예. 베토벤 잘못 있어요? 없어요. 없죠. 베토벤이 문제예요. 그걸 친다고 하는 사람이 문제인 거죠. 그렇죠? 마찬가지예요. 누군가가 예수님을 잘못 연주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원망해서는 안 돼요. 내가 부족하다고 해서 예수님이 부족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기독교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기독교는 예수님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만 바라봐야 돼요. 우리는 물론 지금도 죄를 져요. 연약하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냐면 주님 바라보는 거예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들을 욕합니다. 맞아요. 욕 먹을지 많이 해요. 아니, 목사님 저도 목사님 저도 죄를 짓는데 뭐 누구 가지고 뭐라 그러겠어요? 예. 근데 그러기에 목사님 저도 누가 필요한 거예요? 예수님이 필요한 거예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물론 저의 연주는 너무너무 심각하게 못 칠 수 있어요. 그 예수님 잘못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할 일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넘어집니다. 그러나 복음이신 예수님은 완전하세요. 완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나아가야 돼요.
여러분들 우리가 부를 찬양이 바로 그 내용이에요. 가사를 한번 볼까요? 예.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리는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이름이며 살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 우리 넘어집니다. 우리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국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과 온 땅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 오니 우린 그 길 따라 갑니다. 그날에 우리를 위해서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바로 새한 아담이신 그분이 완전하시기에 우리는 감사하며 그분만 바라보면서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분을 닮아갈 수 있는, 닮아갈 수 있는 그래서 그분에게 기쁨되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사랑과 은혜를 제대로 받을 줄 아는 우리들, 예. 하나님 위해서 모 나오는 모든 말씀이 우리 모든 문제에 답이 있음을 믿고 타협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붙가는 우리들, 주님이 십자가 지신 그 과정을 빼 넘어가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지고 주님 닮아가는 그런 삶을 통해 주님의 기쁨되는 우리 모두가 되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넘어지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당사자마저도 이 목사마저도 넘어집니다. 우리 연약합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한 것은 주님이 완전하십니다.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이 완전하시기에 우리에게는 답이 있습니다. 완전하신 그분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우리에게 답을 주시기에 우리는 타협하지 않고 그 말씀 붙들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이 뛰어내리면 붙잡아도 나는 안 붙잡으실 거라는 착각 속에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지금껏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인도하셨던 것처럼 바로 우리 주님 지금도 우리를 붙드시고 세우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주만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십자가의 과정을 무시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지고 주님을 따라가서 사탄 마귀의 괴를 물리치고 지금도 완전하신 복음 되신 바로 그 주님 붙드며 주님 닮아가며 주님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